이미 이혼했더라도 혼인을 무효로 할 수 있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이혼한 부부의 혼인을 무효로 돌릴 법률상 이익이 없다는 기존 판례를 40년 만에 바꾼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5월 23일 A씨가 이혼한 전 남편 B씨를 상대로 낸 혼인무효청구소송의 상고심(2020므15896)에서 이같이 판시, 종전 판례에 따라 A씨의 청구를 각하한 원심을 파기 · 자판하여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사건을 1심 법원으로 되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이혼으로 혼인관계가 이미 해소되었다면 기왕의 혼인관계는 과거의 법률관계가 되나, 신분관계인 혼인관계는 그것을 전제로 하여 수많은 법률관계가 형성되고 그에 관하여 일일이 효력의 확인을 구하는 절차를 반복하는 것보다 과거의 법률관계인 혼인관계 자체의 무효 확인을 구하는 편이 관련된 분쟁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유효 · 적절한 수단일 수 있으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혼인관계가 이미 해소된 이후라고 하더라도 혼인무효의 확인을 구할 이익이 인정된다고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렇게 판단하는 이유로, "무효인 혼인과 이혼은 법적 효과가 다르다. 즉 무효인 혼인은 처음부터 혼인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 반면, 혼인관계가 이혼으로 해소되었더라도 그 효력은 장래에 대해서만 발생하므로 이혼 전에 혼인을 전제로 발생한 법률관계는 여전히 유효하다"며 "따라서 이혼 이후에도 혼인관계가 무효임을 확인할 실익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혼인이 무효라면 민법 809조 2항에 규정된 인척간의 혼인금지 규정이나 형법 328조 1항에 규정된 친족상도례 규정이 적용되지 않고, 민법 832조에 규정된 일상가사채무에 대한 연대책임도 물을 수 없게 된다.
대법원은 또 "혼인무효 판결을 받은 당사자는 가족관계등록부의 정정을 요구할 수 있고, 그 방법과 절차는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제107조 등이 정한 바에 따르게 된다"며 "위와 같은 절차규정에 비추어 볼 때 이혼으로 혼인관계가 이미 해소되었을 때 그 무효 확인을 구하는 소는 혼인 전력이 잘못 기재된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요구에 필요한 객관적 증빙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서 가족관계등록부 기재사항과 밀접하게 관련된 현재의 권리 또는 법률상 지위에 대한 위험이나 불안을 제거하기 위한 유효 · 적절한 수단에 해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가족관계등록부의 잘못된 기재가 단순한 불명예이거나 간접적 · 사실상의 불이익에 불과하다고 보아 그 기재의 정정에 필요한 자료를 확보하기 위하여 기재 내용의 무효 확인을 구하는 소에서 확인의 이익을 부정한다면 혼인무효 사유의 존부에 대하여 법원의 판단을 구할 방법을 미리 막아버림으로써 국민이 온전히 권리구제를 받을 수 없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이와 달리 '단순히 여자인 청구인이 혼인하였다가 이혼한 것처럼 호적상 기재되어 있어 불명예스럽다는 사유는 청구인의 현재 법률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고, 이혼신고로써 해소된 혼인관계의 무효 확인은 과거의 법률관계에 대한 확인이어서 확인의 이익이 없다'고 본 대법원 1984. 2. 28. 선고 82므67 판결 등은 이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에서 이를 변경하기로 했다.
A와 B는 2001년 12월경 혼인신고를 했다가 약 3년 후인 2004년 10월경 이혼조정이 성립해 이혼신고를 마쳤다. 그러나 A는 혼인의사를 결정할 수 없는 극도의 혼란과 불안, 강박 상태에서 혼인에 관한 실질적 합의 없이 혼인신고를 했다고 주장하며 혼인을 무효로 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