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지인에게 차명 휴대전화 · 은신처 부탁한 마약 밀수범, 범인도피교사 무죄
[형사] 지인에게 차명 휴대전화 · 은신처 부탁한 마약 밀수범, 범인도피교사 무죄
  • 기사출고 2024.06.06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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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통상적 도피 유형…방어권 남용 아니야"

마약 밀수 혐의를 받는 피의자가 지인에게 차명 휴대전화와 은신처를 부탁했다. 범인도피교사죄에 해당할까. 대법원 제3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4월 25일 특가법 위반(향정), 범인도피교사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상고심(2024도3252)에서 특가법 위반과 범인도피교사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해 징역 8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범인도피교사 혐의는 무죄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 휴대전화와 은신처 요구가 일반적인 도피행위의 범주를 벗어나 방어권을 남용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A씨는 2021년 7월 태국에서 필로폰 약 1.5kg을 밀수입한 혐의로 같은 해 10월 18일 검찰 수사관들에게 압수수색을 받게 되자 10년 넘게 알던 지인 B씨에게 "법적으로 어지러운 일이 생겼다. 회사 대표가 구속이 되고 압수수색을 당했다, 수사관들이 머리카락을 잘라가고 소변검사도 했다, 어디 머물 곳이 있느냐, 사용할 수 있는 휴대전화 1대만 마련해 달라"고 말했다. 이에 B씨는 2021년 11월 23일경까지 A씨를 자신의 주거지인 용인시에 있는 건물에서 생활하게 하고, 지인 명의로 휴대전화를 개통한 다음 이를 A씨에게 건네주어 사용하게 했다. B씨는 또 위 건물로 찾아간 검찰 수사관들에게 "나는 A 번호도 모르고 A랑 연락하려면 다른 지인과 연락을 해야 한다"고 거짓말하기도 했다.

대법원은 범인도피교사 혐의에 대해, "피고인의 행위가 일반적인 도피행위의 범주를 벗어나 형사사법에 중대한 장해를 초래하거나 형사피의자로서 가지는 방어권을 남용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본 원심의 판단은 그대로 수긍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B는 피고인과 10년 이상의 친분관계 때문에 피고인의 부탁에 응하여 피고인을 도와준 것으로 보이고, 도피를 위한 인적 · 물적 시설을 미리 구비하거나 조직적인 범죄단체 등을 구성하여 역할을 분담한 것은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또 "피고인이 B에게 요청한 도움의 핵심은 은신처와 차명 휴대전화를 제공해 달라는 것이었고, 이에 B는 피고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주거지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다른 사람 이름으로 개통한 휴대전화를 사용하게 하였다"며 "이러한 행위는 형사사법에 중대한 장애를 초래한다고 보기 어려운 통상적인 도피의 한 유형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피고인과 B 사이에 암묵적으로 '피고인이 수사기관에 검거될 위험이 있다고 보이면 피고인의 소재에 관하여 허위로 진술함으로써 피고인을 도피시켜 달라'는 취지의 의사가 있었고 그 결과 피고인이 도피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의사나 그에 따른 도피의 결과를 형사피의자로서의 방어권 남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한편 B씨는 범인도피 혐의로 기소되어 실형이 확정되었다. 

대법원 관계자는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 또는 피고인은 자기부죄의 원칙에 따라 거짓말을 하거나 도망가더라도 처벌하지 않아야 하고, 본래 범죄로만 처벌받는 것이 원칙이나, 다른 사람을 동원하여 자신을 도피하게 하는 행위가 자신이 도피하는 것과 같은 정도를 넘어 방어권을 남용하였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범인도피교사로 처벌받을 수 있다"며 "예컨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위증하게 할 경우 방어권을 남용한 경우에 해당하여 위증교사로 처벌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사건은 피고인이 다른 사람 명의의 휴대전화를 개통하게 하고 은신처를 제공하게 하였다는 것인데, 통상적인 도피 정도에 그쳤으므로, 범인도피교사 부분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것"이라며 "범인도피본범과 범인도피교사범의 유무죄가 달라졌다고 하여 모순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나란이 A씨를 변호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