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의료지원요청에 구청 공무원이 구두로만 거부했다면 무효라는 판결이 나왔다. 긴급복지지원법은 생계곤란 등의 위기상황에 처하여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 대한 긴급지원 중 하나로 각종 검사와 치료 등 의료서비스를 지원하는 '의료지원'을 두고 있다.
서울 중구에 사는 A씨는 2023년 10월 16일 식사 중 상악전치부 보철이 파절되자 병원에 방문해 치아우식증을 병명으로 하는 진단서를 발급받았다. A씨는 다음날인 10월 17일 긴급복지지원법상 의료지원을 받기 위해 주소지 관할 주민센터를 통해 관할 행정청인 중구청에 위 진단서를 제출하며 긴급의료지원을 신청했으나, 중구청 담당 공무원이 구두로 'A씨의 치과질환은 긴급복지지원법상 의료지원의 대상이 아니며, 예외적으로 의료지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긴급한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안내하며 거부, 중구청장을 상대로 긴급의료지원거부처분은 무효임을 확인하라며 소송(2023구합81817)을 냈다. A씨는 거부행위는 위법하다며 "피고는 거부행위를 함에 있어서 원고의 거주지 등을 방문하여 위기상황을 확인하지 않았고, 적법한 내부적 의사결정 절차를 거치지 않았으며, 또한 행정청이 처분을 할 때에는 문서로 해야 하는 것이 원칙임에도 구두로 거부행위를 한 잘못이 있다"고 주장했다. 행정절차법 24조 1항은 '행정청이 처분을 할 때에는 다른 법령 등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문서로 하여야 하며, 전자문서로 하는 경우에는 당사자 등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다만 긴급히 처분을 할 필요가 있거나 사안이 경미한 경우에는 말, 전화, 문자전송 등 문서가 아닌 방법으로 처분을 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서울행정법원 제8부(재판장 이정희 부장판사) 4월 16일 A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긴급의료지원거부처분은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먼저 실체적 하자 여부와 관련, "①원고가 치과질환과 관련하여 발급받은 진단서에는 원고의 병명이 '치아우식증'으로 기재되어 있고, 관련하여 '(비실명화로 생략)'이라고 기재되어 있는 점, ②피고의 담당공무원은 위 진단서를 발급한 병원과의 통화에서 원고의 진료가 단순 충치치료를 위한 것이라는 답변을 받은 점, ③위와 같은 단순 치과진료는 보건복지부에서 긴급복지지원사업 운영을 위해 제정하여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배포한 '2023 긴급복지지원사업 안내'(이 사건 지침)상 긴급복지지원대상이 아님이 분명한 점, ④긴급지원과 같이 급부행정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수익적 행정행위는 원칙적으로 행정청의 재량행위에 속하고, 그 재량을 행사하는 데에 필요한 기준을 정하는 것도 행정청의 재량에 속하며, 위와 같이 설정된 기준이 객관적으로 합리적이 아니라거나 타당하지 않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행정청의 의사는 가능한 한 존중되어야 하는 점, ⑤이 사건 지침에서 설정한 기준이 긴급복지지원법의 목적이나 취지에 비추어 객관적으로 합리적이지 않거나 타당하지 않다고 볼 만한 다른 특별한 사정은 없는 점 등을 종합하면, 원고의 치과질환이 긴급복지지원법상 긴급지원의 대상이라고 할 수 없으므로, 이러한 전제에서 이루어진 이 사건 거부행위가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나 "긴급복지지원법에 따라 긴급지원요청을 한 원고에 대하여 피고는 처분행위에 해당하는 이 사건 거부행위를 구두로만 하였다"고 지적하고, "①행정절차법에서 행정처분을 원칙적으로 문서로 하도록 정한 것은, 당사자가 처분의 내용과 처분의 근거, 이유를 문서로 분명하게 파악하여 행정구제절차로 나아가는 데 별다른 지장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므로, 행정절차법 제24조 제1항 단서의 '사안이 경미한 경우'에 해당하지 여부는 신중히 판단할 필요가 있는 점, ②이 사건 거부행위의 경우, 그 처분의 내용, 경위 및 과정 등에 비추어 행정절차법 제24조 제1항 단서의 예외사유인 '긴급히 처분을 할 필요가 있거나 사안이 경미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운 점, ③원고로서는 거부행위의 근거법령과 이유를 구체적으로 제시받지 못함에 따라 적절한 방어권을 행사하기 어려웠을 수 있는 점, ④피고는 2023. 11. 27. 원고에게 거부행위의 처분서를 제공하였으므로 절차적 하자가 치유되었다는 취지로 주장하나, 위 처분서의 제공일시는 거부행위로부터 한 달 이상이 경과하여 원고로부터 이 사건 소장을 송달받은 이후인 데다가, 행정절차법 제24조 제1항을 위반한 처분은 하자가 중대 · 명백하여 무효이고, 무효인 행정행위의 하자 치유는 인정될 수 없으므로(대법원 1997. 5. 28. 선고 96누5308 판결 참조), 피고의 위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는 점 등을 종합하면, 거부행위에는 행정절차법 제24조 제1항을 위반한 절차적 하자가 존재한다"고 밝혔다.
피고가 긴급복지지원법과 '2023 긴급복지지원사업 안내' 지침에 근거하여 거부행위를 한 것은 정당하나, 거부행위에는 행정절차법 24조 1항을 위반한 절차상 하자가 존재하므로 무효라는 것이다.
판결문 전문은 서울행정법원 홈페이지 참조.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