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 A씨는 2023년 생후 6개월의 영아 B에게 유효기한이 하루 지난 B형간염 백신 헤파뮨 주사제를 접종했다가, 보건복지부장관으로부터 '비도덕적 진료행위를 한 경우(변질 · 오염 · 손상되었거나 유효기한 또는 사용기한이 지난 의약품을 사용한 경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3개월의 의사면허 자격정지 처분을 받자 보건복지부장관을 상대로 처분을 취소하라며 소송(2023구합73908)을 냈다. 보건복지부장관은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 제4조 [별표] 행정처분기준에 따라 처분을 했으며, 이 행정처분기준은 '유효기한이 지난 의약품을 사용한 경우'를 자격정지 3개월로 정하고 있다.
A씨는 재판에서 "보건복지부장관은 재량권을 전혀 행사하지 않은 채 처분기준을 그대로 적용함으로써 평등의 원칙을 위반했고, 주사제의 유효기한이 도과한 시간이 약 15시간에 불과한 점, 주사제는 밀봉된 채 적절하게 냉장 보관되고 있어서 품질이 변화되었을 가능성이 극히 낮은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의사면허 자격정지 처분을 통해 달성하려는 공익 목적보다 원고와 지역사회가 입게 될 불이익이 현저히 커 비례의 원칙도 위반했다"며 "처분은 재량권을 일탈 · 남용한 것으로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서울행정법원 제6부(재판장 나진이 부장판사)는 4월 12일 A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의사면허 자격정지 3개월의 처분은 이를 통하여 달성하고자하는 공익에 비하여 그로 인하여 원고가 입게 될 불이익이 지나치게 크므로 재량권을 일탈 · 남용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처분을 취소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의약품(주사제)은 유효기한이 1일 도과한 것인 점, 원고는 이 사건 의약품의 유효기한이 도과한 사실을 확인한 직후 먼저 환아의 보호자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고 추후 재접종을 안내한 것으로 보이는 점, 이 사건 위반행위로 환아에게 부작용이 발생하는 등 건강에 악영향이 초래된 사실을 확인할 만한 자료가 없는 점, 위반행위로 원고가 부당한 이득을 취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위반행위의 비난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보기는 어렵고, 의사로서 지녀야 할 도덕성과 직업윤리를 훼손하는 정도도 고의에 의한 위반행위에 비하면 경미하다"고 밝혔다.
이어 "고도의 전문지식을 갖추고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의사의 사회적 지위나 의료행위가 국민건강에 미치는 영향의 중요성에 비추어 진료행위와 관련하여 의사에게 높은 수준의 주의의무가 요구되나, 원고가 과거 의료법 등을 위반한 사실이 있었음을 확인할 만한 자료가 없고, 이 사건도 고의 또는 부당한 목적으로 유효기한이 지난 의약품을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고 지적하고, "여기에 앞서 본 사정을 보태어 보면,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 제4조 [별표] 행정처분기준에서 정한 제재기간보다 한 차례 가벼운 제재를 하더라도 비도덕적 진료행위를 불합리하게 방치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려우므로, 처분을 통하여 달성되는 공익보다 원고가 받을 불이익이 훨씬 크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법무법인 태신이 A씨를 대리했다.
판결문 전문은 서울행정법원 홈페이지 참조.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