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 Law] 국내 생산 특허침해품의 해외 판매 손해배상액 산정
[IP Law] 국내 생산 특허침해품의 해외 판매 손해배상액 산정
  • 기사출고 2024.05.09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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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법 128조 4항에 따라 약 120억원의 손해배상을 인정한 사건

특허법은 권리자가 '침해가 없었다면 판매할 수 있었던 수량', 즉 소극적 손해액을 증명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여 그 특칙으로서 특허법 제128조에서 손해배상의 추정 규정을 두었다. 이에 특허법 제128조 제2항은 '침해자의 판매수량'을 활용하도록 하고, 제4항은 '침해자가 침해로 얻은 이익'을 산정하여 각 손해를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종래 국내 법원은 특허법 제128조 제2항, 제4항 등의 추정 규정을 적용하기보다는, 제7항에 따라 재량에 의한 손해를 산정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특허권자 보호를 위한 추정 규정의 입법취지에 부합한다고 볼 수 없었다. 미국식 Discovery 제도가 도입되지 않은 국내 재판 환경에서는 침해자가 손해 산정 관련 자료의 제출을 거부하면 권리자로서도 입증자료를 취득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기에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였던 것이다.

◇김형지(좌) · 진민경 변호사
◇김형지(좌) · 진민경 변호사

한편 대법원은 2006년, 레이저 프린터의 감광드럼 관련 특허침해에 관한 이른바 '캐논 판결'에서 국내에서 생산된 침해제품을 미국에 수출하여 이익을 얻은 점에 대해 손해배상을 인정하면서, 경업관계 등으로 인하여 손해 발생의 염려 내지 개연성이 있다고 하여 현행 특허법 제128조 제4항(구 특허법 제128조 제2항)을 적용하여 손해액을 산정하였다(대법원 2006. 10. 12. 선고 2006다1831 판결).

이로부터 약 18년이 지난 시점에 이르러 다시 특허법원에서 특허를 침해하는 국내 생산 제품의 해외 양도 및 그에 대한 손해배상에 대해 특허법 제128조 제4항 등을 근거로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여 약 121억원 및 그 지연이자 상당의 손해를 인정한 사례가 있어 이를 소개한다(특허법원 2024. 1. 18. 선고 2021나1787 판결).

사안의 개요

노바티스의 특허는 리바스티그민 경피투여 용법을 제공하는 발명으로서, 이를 활용한 노바티스의 '엑셀론 패취'는 세계 최초의 패치형 알츠하이머형 치매 치료제이다. '엑셀론 패취'는 치매 환자가 정시에 정량의 약을 복용하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획기적인 의약품으로 시장에서 주목을 받아 2007년 발매 이후 전 세계적으로 대대적인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노바티스는 완전자회사인 각국 법인(한국노바티스 포함)을 통해 엑셀론 패취를 판매하였는데, 특허 존속기간 만료 전인 2012년 4월경 특허법에 따라 존속기간 연장을 신청했으나 특허청이 불승인하였고, 노바티스는 불승인 취소소송을 제기하여 2018년 10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하였다. 피고는 2008년 1월 이미 대량의 리바스티그민 원료를 수입하였고, 특허 존속기간 만료 전부터 엑셀론 패취의 제네릭 제품을 제조하여 그 중 대부분을 유럽 등 해외 각국으로 수출했다. 이에 노바티스는 이러한 피고의 고의, 과실에 의한 특허 침해행위에 대한 금지 및 손해배상 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과실 · 상당인과관계에 관한 판단

타인의 특허권을 침해한 자는 그 침해행위에 대하여 과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특허법 제130조), 이를 복멸하기 위해서는 특허권의 존재를 알지 못하였다는 점을 정당화할 수 있는 사정이 있다는 것을 침해자가 주장 · 증명하여야 한다(대법원 2006. 4. 27. 선고 2003다15006 판결). 특허법원은 피고가 특허권자로부터 내용증명을 송달받은 후에는 과실 추정이 복멸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내용증명을 침해자의 과실을 인정할 수 있는 중요한 증거로 보았다.

침해행위와 손해발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와 관련하여, 특허법원은 피고가 원고 제품의 대체품인 침해제품을 생산하여 특허를 침해하였고 침해제품을 유럽 각국으로 판매하여 원고의 유럽 판매법인들의 제품 매출이 감소하였기에, 노바티스 기업집단 지배구조 등을 고려해 볼 때 원고가 배당이익 등을 못 얻게 되는 등 손해를 입은 것이 인정되어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손해배상 추정에 관한 판단

또한 특허법원은 특허법 제128조 제4항에 따라 손해를 산정하면서 침해제품의 해외 총판매수익에서 침해제품 제조 · 판매를 위한 추가 투입비용을 공제한 공헌이익(contribution margin)을 '침해행위로 얻은 이익액'으로 산정하였다. 법원은 추가 투입비용(변동비)을 직접적인 증거에 의해 산정하기 어렵다고 하면서도, 이러한 공헌이익을 산정하는 신뢰성 있는 통계로서 국세청 법인세 신고자료에 기초하여 분석된 한국은행의 기업경영 분석 자료상 '의료용 물질 및 의약품'에 관한 변동비 대 매출액 비율을 고려하였다. 객관적인 자료에 의해 침해자 입증 공백을 보완한 것이다.

한편 제128조 제2항 적용에 있어서는 손해 산정시 '침해자의 판매수량'을 활용하지만 '단위 수량당 이익액'은 특허권자의 것을 따르게 되는데, 이 사건에서 완전자회사인 원고 판매회사의 매출 감소로 인한 손해액이 원고의 손해액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증명되지 않는다면 판매회사의 단위 수량당 이익액을 원고의 단위 수량당 이익액으로 그대로 치환할 수 없기에 해당 조항의 적용이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시사점 및 제언

이번 판결에 따르면 국내에서 생산된 특허 침해품의 전부 또는 일부가 해외로 수출되어 판매되는 경우 특허권자로서는 그러한 해외 판매로 인한 손해도 특허법 제128조 제4항에 따라 청구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모회사인 원고가 전체 지분을 보유한 완전자회사의 매출 감소로 인한 손해는 곧 원고의 손해로 평가될 수 있으므로 특허법 제128조 제2항에 근거한 손해 산정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특허법 제128조 제2항, 제4항의 손해배상 추정 규정은 특허권자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올해 8월부터 시행되는 개정 특허법은 고의적인 특허권 침해행위에 따른 징벌적 배상액 상한을 3배에서 5배로 증액하는데 이 역시 특허권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여전히 특허침해소송 실무상으로는 침해자가 자료 제출을 하지 않으면 특허권자 또는 법원이 직접 강제하여 증거를 확보하기는 쉽지 아니한바, 법원에서 문서제출명령이나 사실조회, 석명권 등을 적극적으로 실행하고, 침해자의 자료를 대신할 만한 신빙성 있는 객관적인 자료 또는 특허권자 자료에 근거하여 판단하는 등 보다 유연한 손해 산정 방식을 모색해야 하겠다.

이 사건에서 1심 판결은 특허법 제128조 제7항을 적용하여 손해액을 약 25억원으로 인정한 반면, 특허법원에서는 제128조 제4항을 적용하여 1심이 인정한 금액의 약 5배 상당의 손해배상액을 인정하였다. 이와 같이 법원에서 제2항, 제4항을 적극적으로 적용하면서 특허권자의 자료 또는 한국은행 자료 등을 기초로 손해배상액을 산정한다면 침해자로서도 자료 제출을 회피하기보다는 손해액을 줄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자료를 제출하게 되는 선순환을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김형지 · 진민경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 hyungji.kim@kimch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