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론(Solon)을 기다리며
솔론(Solon)을 기다리며
  • 기사출고 2004.08.13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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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기 변호사]
필자는 2003년 여름 미국 여행 중에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방문한 바 있다.

김관기 변호사
거대한 전시장의 첫 입구에 있는 그리스 전시관에 있는 설명판에 쓰여진 글은 파산 변호사인 필자의 눈길을 확 잡아 당겼다.

솔론의 개혁에 관한 고고학적 발굴의 성과에 대한 설명인 것이다.

B.C 6세기 동안, 아티카 지방과 그 수도인 아테네는 그리이스 본토의 가장 부유한 도시국가 중 하나로서 예술적 발전을 선도하였다.

당시 입법자(lawgiver) 솔론(Solon)은 누적된 채무를 취소하고, 억압적인 법률을 해체하고 출생에 의한 신분보다는 재산에 정치참여를 의존시키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개혁을 단행, 이런 발전의 토대를 닦았다.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었고, 외국의 장인들이 아테네에 와서 살며 일하도록 장려되었다.

이와 같은 조치들이 성공하였다는 사실은 오늘날에도 아티카 지역의 검은 색 형상 도기(black-figure pottery)를 연구함으로써 오늘날에도 증명될 수 있다.

이 도기는 B.C. 6세기의 중반에 질적으로 양적으로 급격히 발전되어 지중해 연안 어디에나 수출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솔론의 개혁에 관하여는 중학교 책에도 나오지만, 그 내용은 대학교재에도 설명되고 있지 않다.

내용은 이렇다.

솔론의 개혁조치가 있기전의 아테네 법제는 몸을 담보로 빚을 내 쓰고 이를 갚지 못한 채무자의 경우 채권자가 그를 죽이든 노예로 팔아 먹든 임의 처분을 할 수 있었으며, 이런 운명에 처한 채무자의 가족들은 채무자를 구하기 위하여 극한적인 폭력투쟁을 불사하는(독자 같으면 안 그러겠는가?) 긴장 상황이었다고 한다.

이에 사과 하나를 훔쳐도 사형에 처하는 무자비한 법을 만들어 시행하여 원성을 산 드라코가 쫓겨난 이후 부자와 빈자의 타협으로 아테네의 지도자가 된 솔론은 채무 면제 조치를 취하고 금권에 따라, 오늘로 말하면 경제력에 따라, 시민을 분류하여 정치 참여를 제도화한 게 솔론의 개혁이다.

우리는 역사에서 무엇인가 배우는 것이 있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기업은 대중의 수요를 기반으로 존속한다.

예를 들어 부자는 외제 고급 차를 사지만, 가난한 자는 할부일지언정 국산 중소형 차를 수요한다.

생계비를 제외하고는 소득을 모두 금융채무의 상환에 쓰는 말하자면 기능적으로 노예의 상태에 빠져 있는 광범위한 대중에 대하여 채무의 취소를 부여하게 되면 확실히 내수 기반이 확충될 것이다.

한편, 노예는 장래에 대한 희망을 갖지 않고 오로지 현재의 편함 만을 추구할 것이기에 적합한 경제제도가 아니라는 점은 아담 스미스도 일찍이 지적한 바와 같다.

따라서 현재 공황의 단계에 이르렀다고 많은 사람들이 평가하고 있는 우리 경제를 회복 시키기 위하여 광범위한 채무의 취소가 고려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너무 과격하다는 평을 받을 수 있겠지만 확실히 유효 적절한 대안의 하나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사실상 채무면제조치가 있었다.

8.3조치라고 불리는 것인데, 기업을 위한 것이라면서 지금도 어떤 사람은 자신의 업적이라며 자랑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아주 훌륭한 경제정책이었다고 주장한다.

다만, 이것은 기업들을 위한 것이었다.

기업이 채권자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채무에 빠진 개인을 벗어나게 해 주어야 할 필요에 관하여는 400만에 육박하는 사람에 대하여 신용불량이라고 낙인을 찍을 뿐 이것을 취소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용기를 가진 사람을 필자는 별로 보지 못한다.

채무자를 특히 보호한다고 보이지는 않지만 파산 및 화의 절차를 기술적으로 정리하고 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한 파산법 개정안은 시행될 예정이라고 공지되었던 2003년 7월을 넘긴 이 시점에도 국회 법사위에서 뭉개다 폐기되어 버렸다.

변화의 필요성을 느낀 파산법원이 기존의 파산법에 의한 구제를 확대하고 있을 뿐인 게 우리의 현실이다.

1930년대 경제위기 때 뉴욕 맨하탄의 고층 빌딩 군에서 뛰어 내리는 왕년의 재벌의 몸뚱이에 맞아 죽지 않기 위하여 행인들은 차도 쪽으로 걸었다고 한다.

뉴딜의 와중에 증권법을 제정하고, 파산법을 개정하는 노력의 저변에는 역사와 현실로부터 교훈을 얻은 위정자의 노력이 있었으리라.

개인파산 신청자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솔론과 같은 지도자를 기다리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심정은 아닐 것이다.

◇김관기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와 동대학원 법학과(법학석사)를 졸업하고, 제30호 사법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서울민사지법,수원지법, 제주지법 판사 등을 거쳐 1997년부터 변호사로할동하고 있습니다. 2001년 미국 버지니아 로스쿨에서 법학석사학위(LL.M.)를 받았으며, 개인파산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단행본으로 "늬들이 카드빚을 갚어" "개인 파산의 이해" 등이 있습니다.

본지 편집위원((sharkguar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