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이 6년의 임기를 마치고 9월 22일 퇴임했다. 김 대법원장은 퇴임사에서 "법관의 독립은 사법부의 생명과 같은 것"이라고 강조하고, "사법부의 독립된 법관들은 단호한 의지와 불굴의 용기를 가지고 자신의 재판과 사법부의 독립을 수호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취임사에서도 다짐했던 '좋은 재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사법부의 저력은 최근 사법부에 제기되고 있는 '재판 지연'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발휘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퇴임사 전문이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전국의 사법부 구성원 여러분, 그리고 내외 귀빈 여러분!
저는 오늘 6년간의 대법원장으로서의 임기를 마치고 37년간 몸담았던 법원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법원은 유일한 직장이었고, 지금까지 법관이 아닌 다른 삶을 찾아 본 일이 없었기에, 법원과의 이별이 낯설고 아직은 잘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바쁘신 가운데에도 저의 마지막 자리에 함께해 주신 대법관님들을 비롯한 내외 귀빈 여러분께 먼저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1986년 3월 1일 법관이 되어 첫 출근을 한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많은 분들로부터 도움을 받았습니다. 사실심에서 재판 업무를 담당할 때 많은 조언과 격려로 저를 이끌어주신 선 · 후배 동료 법관님들, 제가 오직 좋은 재판을 통한 정의의 실현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다해 조력해 주신 직원분들, 그리고 대법원장 재임 기간 동안 많은 어려움 속에도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정진할 수 있도록 저를 믿고 성원해 주신 모든 사법부 구성원 여러분! 그 소중하고 고마운 분들을 일일이 찾아뵙고 악수라도 나누고 싶었습니다만 여러 사정상 여의치 못하였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저를 이끌어주고 도와주신 여러분께 무한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립니다.
국민 여러분, 전국의 사법부 구성원 여러분!
6년 전 사법부와 관련된 대내외적인 여건이 그 어느 때보다 엄중했던 상황에서, 우리 국민은 31년간 오로지 재판 업무에만 전념해 오던 제게 '제16대 대법원장'의 막중한 소임을 부여하였습니다. 그것은 이미 한계를 드러낸 과거의 낡은 구조와 제도를 탈피하고 변화된 사회와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국민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법부 본연의 모습으로 거듭나라는 준엄한 명령이었습니다.

이에 저는 사법부가 추락한 신뢰를 회복하고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책임을 다하는 길은, 오직 사법의 본질적 가치인 국민을 위한 '좋은 재판'을 실현함에 있다는 굳은 신념과 절박한 사명감으로, 새로운 사법의 길을 찾아 대법원장으로서의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길이 멀고 아득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세계에서 가장 지혜롭고 창의적이며 열정이 넘치는 우리 사법부 구성원들과 함께 할 것이었기에, 어떠한 난관이 닥치더라도 능히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친애하는 사법부 구성원 여러분!
새로운 사법의 길은 그 길을 찾아가는 절차와 방식에서부터 이전과는 다른 것이어야 합니다. 저는 재임 기간 내내 우리 사법부가 과거의 수직적이고 관료적인 의사 결정 구조를 지양하고, 투명하고 민주적인 수평적 구조로 전환해야 함을 강조하였습니다. 우리 구성원은 매일의 재판 현장에서 경청과 소통, 합의의 미덕을 경험하며 체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어떠한 국가 기관과도 견줄 수 없는 우리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그리고 그 미덕은 사법부가 나아갈 방향을 정하는 과정에서도 반드시 투영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었기에, 저는 권위를 앞세우는 지도자이기보다는 누구와도 대화하고, 경청하며, 서로의 견해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수 있는 열린 동료가 되고자 하였습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사법부가 '사법부다운' 모습을 찾아 이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전국법관대표회의와 전국법원장회의, 사법행정자문회의와 그 산하의 여러 분과위원회 등 저의 재임 기간에 상설화된 여러 회의체에서 법관을 비롯한 많은 법원 구성원과 국민들이 활발히 참여하여 귀중한 지혜와 의지를 모아주셨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저는 사법부의 주요 정책들을 입안하여 추진하였고, 새로운 사법부를 건설하는 데 튼튼한 기틀이 되는 여러 값진 결실들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동안 차곡차곡 축적해 온 구성원 사이의 소통과 참여, 토론과 협력의 경험들이 사법부의 고유한 문화와 방식으로 견고히 뿌리내리고, 사법부의 발전에 든든한 동력이 될 수 있도록 여러분이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사법부 구성원 여러분, 저는 취임사에서 사법부가 국민에게 드릴 수 있는 최고의 보답은 독립된 법관이 공정하고 충실한 심리를 통하여 정의로운 결론에 이르는 '좋은 재판'이라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퇴임을 하는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변한 적이 없습니다. 그동안 사법부는 '좋은 재판'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 개선과 여건 마련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였고, 구성원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성심을 다해왔습니다. 그렇지만 '좋은 재판'을 실현하는 과정은 곳곳에 암초가 도사린 험난한 길이었습니다. 특히 2020년부터 3년간 계속된 유례없는 감염병 위기 상황으로 인해 우리는 사법 기능을 정상적으로 유지하고 수행하는 데에 큰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에서도 사법부 구성원들은 비대면 소통 방식을 개발하고, 영상 재판을 확대하여 국민의 사법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과 편의성을 크게 제고하는 등 위기의 상황을 오히려 '좋은 재판'의 지평을 넓히는 기회로 만드는 지혜를 보여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안팎의 도전을 더 높은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온 사법부의 저력은 최근 사법부에 제기되고 있는 '재판 지연'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발휘될 수 있어야 합니다. '좋은 재판'은 국민이 이를 체감하고 인정할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므로, 국민이 재판에서 지연된 정의로 고통을 받는다면 우리가 추구해온 가치들도 빛을 잃게 될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정의의 신속한 실현도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가치이지만, 충실한 심리를 통해 정의로운 결론에 이르러야 한다는 우리의 방향도 결코 되돌릴 수 없다는 점입니다. 재판의 양과 질, 사건 처리의 신속성과 충실성 중 어느 하나의 가치에만 치우치지 않고, 조화와 균형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모든 역량을 집중할 때, 비로소 우리는 '국민을 위한 좋은 재판'을 실현하여 사법부를 국민의 신뢰라는 반석 위에 굳건히 세울 수 있음을 명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법관 여러분!
법관의 독립은 사법부의 생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독립된 법관만이 사법부와 재판의 독립을 온전히 지켜낼 수 있습니다. 제가 모든 사법부 활동의 중심을 '재판'에 두고 사법행정은 오로지 '재판'을 뒷받침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함을 누차 강조해 온 것도, 지난날 사법행정이 저지른 과오가 우리 사법의 역사에서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는 굳은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그 결과 사법 행정의 재판에 대한 우위 현상은 사법부의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고, 법관의 내부적 독립도 더 한층 공고해졌습니다.
이제 사법부의 독립된 법관들은 단호한 의지와 불굴의 용기를 가지고 자신의 재판과 사법부의 독립을 수호하는 데 앞장서야 합니다. 항상 시대정신에 깨어 있으면서 정의를 발견하고 선언하는 일에는 그것이 홀로 서는 일일지라도 결코 주저함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획일화된 기준을 경계하고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수용하면서 소수자와 약자를 보호하는 최후 보루로서의 역할과 사명에 혼신을 다해야 합니다. 아울러 신독(愼獨)의 자세를 견지하고 처신과 언행을 무겁게 함으로써 공정성과 중립성의 외관이 추호도 흔들리지 않아야 함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독립된 법관에 의한 정의롭고 공정한 재판으로 우리 사회가 통합의 길로 나아가고 국민의 사랑과 신뢰로 사법부가 충만해지기를 소망합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사법부 구성원 여러분!
지난 6년간 국민으로부터 사랑과 신뢰를 받는 사법부로 거듭나고자 대법원장으로서 최선을 다하였지만, 저의 불민함과 한계로 인해 국민 여러분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다는 점을 저는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모쪼록 모든 허물은 저의 탓으로 돌려 꾸짖어 주시되, 오늘도 '좋은 재판'을 실현하기 위해 밤을 낮 삼아 열심히 일하는 사법부 구성원들에게는 따뜻한 격려와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오늘로써 '좋은 재판', '좋은 법원'을 만들기 위한 저의 여정은 끝이 났습니다. 그러나 타고 남은재가 다시 기름이 되듯이, 법원 밖에서도 저는 그칠줄을 모르고 타는 가슴으로 영원히 법원을 사랑하고 응원할 것입니다. 훌륭한 신임 대법원장님과 함께 사랑하는 법원 구성원 여러분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좋은 '재판의 길'을 실현하는 여정을 계속해 주시리라 굳게 믿습니다.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십시오!
대단히 감사합니다!
2023. 9. 22.
대법원장 김 명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