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9년간 우울증 앓다가 극단적 선택…보험금 지급해야"
[보험] "9년간 우울증 앓다가 극단적 선택…보험금 지급해야"
  • 기사출고 2023.06.06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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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가족과 통화는 자유로운 의사결정 할 수 없는 상태 이후 사정"

오랜 기간 우울증을 앓아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면 사망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5월 18일 극단적 선택을 한 A의 부모가 한화손해보험을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소송의 상고심(2022다238800)에서 이같이 판시,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되돌려보냈다. 곽한승, 이호영 변호사가 1심부터 원고들을 대리했다.

2010년경부터 9년간 우울증을 앓던 A는 2019년 11월 23일 인천 서구에 있는 건물의 1층과 2층 계단 사이에 있는 난간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원고들은 한화손해보험에 사망보험금 9,000만원을 청구했으나 거부되자 소송을 냈다. 이에 앞서 A의 부모는 2012년 2월 A를 피보험자로, 사망 시 법정상속인을 보험수익자로 정한 일반상해사망후유장해 가입금액 9,000만원의 보험계약을 한화손해보험과 체결했다. 이 보험계약의 약관에선 '피보험자(보험대상자)의 고의로 보험금 지급사유가 발생한 때'를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사유로 들고, 다만, '피보험자가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해친 경우에는 보험금을 지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A는 2010년경 우울증 진단하에 진료를 받았고, 2016년경에는 주요우울병, 상세불명의 강박장애 등의 진단을 받았는데 당시 '자살에 대한 생각도 많은 것으로 나타나므로 치료적 접근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취지의 평가를 받기도 했다. 2018년 11월경에도 우울증 등의 진단을 받았는데 A는 진료를 받으며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발언을 했다. 당시 담당의사는 A에 대해 '임상증상의 호전이 뚜렷하지 않고 병식이 부족한 상태로서 보다 집중적인 치료(입원치료 등)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소견을 밝혔다.

A는 2019년경 물품배송을 하다가 허리를 다쳐 2019년 10월 4일경까지 진료를 받았고 극단적 선택에 이르기 보름 전쯤에는 다니던 보험회사에서 퇴직했다. A는 극단적 선택 전날인 11월 22일 오후 10시쯤부터 극단적 선택 당일 오전 2시 30분쯤까지 지인 3명과 함께 소주 8병을 나누어 마시고 맥주 1캔을 마셨다. 극단적 선택 직전에는 많이 취해서 비틀대고 구토를 하기도 했다. A가 의도적으로 과도하게 음주를 했다고 볼 만한 사정은 찾기 어렵다.

1심 재판부는 한화손해보험이 원고들에게 보험금 9,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으나, 항소심 재판부가 A가 사망 직전 원고들과 누나와 통화하며 '미안하다, 죽고 싶다'는 말을 하는 등 자신의 행위가 가지는 의미를 인식하고 있었던 점, A의 극단적 선택 방식 등에 비추어 볼 때 A의 기도가 충동적이거나 돌발적이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들어 A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원고 패소 판결하자 원고들이 상고했다.

대법원은 항소심의 판단을 다시 뒤집었다.

대법원은 종전의 대법원 판결(2017다281367 등)을 인용, "정신질환 등으로 자살한 경우,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의 사망이었는지 여부는 자살자의 나이와 성행, 자살자의 신체적 · 정신적 심리상황, 그 정신질환의 발병 시기, 그 진행 경과와 정도 및 자살에 즈음한 시점에서의 구체적인 상태, 자살자를 에워싸고 있는 주위 상황과 자살 무렵 자살자의 행태, 자살행위의 시기 및 장소, 기타 자살의 동기, 경위와 방법 및 태양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전제하고, "아울러, 의사로부터 우울병 등의 진단을 받아 상당 기간 치료를 받아왔고 그 증상과 자살 사이에 관련성이 있어 보이는 경우,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였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자살 무렵의 상황을 평가할 때에는 그 상황 전체의 양상과 자살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하고 특정 시점에서의 행위를 들어 그 상황을 섣불리 평가하여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A는 극단적 선택 9년 전부터 주요우울병 등의 진단 하에 진료를 받아오다가 1년 전에는 입원치료가 필요한 상황에 이르렀고 우울증을 겪으며 반복적으로 죽음을 생각해온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고, "그런데 극단적 선택 무렵의 신체적 · 경제적 · 사회적 문제로 A를 둘러싼 상황이 지극히 나빠졌고 특히 극단적 선택 직전 술을 많이 마신 탓으로 우울증세가 급격히 악화되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에 이르렀다고 판단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또 "A가 원고들 및 누나와 통화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은 A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진 이후의 사정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하고, "그런데도 위와 같은 사정들을 면밀히 살펴보거나 심리하지 않고 A가 원고들과 누나에게 통화한 사정 내지 극단적 선택 방식과 같은 특정 시점에서의 행위를 주된 근거로 들어 A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보아 피고의 원고들에 대한 일반상해보험금 지급의무를 부정한 원심에는 보험계약 약관 면책사유의 해석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