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경쟁행위금지청구와 관련하여 실무상 가장 빈번하게 활용되는 조문은 아마도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가, 나목이 아닐까 한다. 이에 더하여, 기존에 존재하거나 상정하지 않았던 새로운 유형의 부정경쟁행위를 규율하는 일반조항(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파목)도 최근 들어 다양한 사건에서 원고의 청구권원으로서 기능하고 있고, 이에 대한 법리 및 판례도 점차 축적되어 가고 있다.
부정경쟁방지법 2조 1호 다목에 규정
미국의 희석화 이론을 바탕으로 마련된 조문이라고 논의되는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다목은 위 조문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소송에서 덜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를 추론해 보자면, ①'주지성'보다 더 높은 수준의 '저명성'을 구비한 표장이 다목의 보호 대상이므로 우선 그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표장이 많지 않다는 점, ②실제로 문제 될 만한 사례들을 보면 '부정경쟁'의 정도가 비교적 명확하거나 상대방이 영세사업자여서 오히려 소송에 이르기도 전에 당사자들간 합의의 형태로 조기에 종결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 등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명표장'으로 인정되는 일부 명품 브랜드들에 대해서는 제3자의 희석행위로 인한 부정경쟁행위의 성립이 인정된 판결들이 그간 종종 내려졌는데(예를 들어, 서울중앙지방법원 2015. 1. 16. 선고 2014가합529797 판결, 서울중앙지법법원 2016. 4. 12. 선고 2016가단6871 판결 등), 이 글에서 논의하는 "CHANEL", "샤넬" 표장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즉,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는 "샤넬" 표장을 유흥주점의 상호, 간판 등에 사용한 행위가 저명한 "샤넬" 표장의 식별력과 명성을 손상시켰다는 이유로 피고에게 그 사용을 중단하고 손해배상을 할 것을 명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2. 8. 17. 선고 2012가합33889 판결).
이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시점에 이르러 "샤넬" 표장에 대한 희석행위가 다시 문제 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역시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다목을 근거로 샤넬의 부정경쟁행위금지청구를 인용한 사례가 있어 소개한다. 판결은 2022년 9월 23일 선고되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1가합551044 판결).
사안의 개요
100년을 넘는 역사를 지닌 "샤넬" 표장이 전 세계적인 명품 패션 브랜드 중 하나임은 익히 알려진 바이다. 대법원에서도 일찍이 30년 전에 이미 "샤넬" 표장은 우리나라의 일반 수요자들에게 현저하게 인식되어 있는 상표라고 인정하였다(대법원 1986. 10. 14. 선고 83후77 판결). 그런데 최근 다수의 성형외과나 피부과 의원들이 피부 주름 개선 등을 위한 주사제(정식 명칭은 "NCTF 135 주사"라고 한다)를 홈페이지 등에 홍보하는 과정에서 이를 "샤넬주사"라고 명명하는 사례들이 발생하였다. 아마도 "샤넬" 표장이 갖고 있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피부 주름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주사제와 결부시킬 경우 상당한 마케팅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한 것일 수 있다.
부정경쟁행위 금지청구의 소 제기
샤넬은 당연히 이러한 사용을 허락한 바 없고 의료 분야에는 진출하지도 않았는데, 일부 소수 병원들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국 각지에 있는 다양한 병 · 의원들에서 "샤넬주사" 표장을 사용하는 현상이 지속되자, 이로 인한 혼란을 막고자 개별 병 · 의원들에 협조 요청서를 보내어 사용 중단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사정이 좀처럼 호전되는 기미가 보이지 않자, 샤넬은 결국 사법부의 판단을 받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판단하에 서울에 있는 한 병원을 상대로 부정경쟁행위 금지청구의 소를 제기하기에 이른다.
샤넬은 이 사건의 청구권원을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다목으로 주장하였다. 즉, 저명한 "샤넬" 표장을 그대로 포함하고 있는 "샤넬주사"라는 명칭을 피고 병원에서 자신의 상품 표지로 무단 사용함으로써 "샤넬" 표장이 갖고 있는 식별력 내지 명성을 손상시킨다는 주장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소송상 쟁점이 되었던 두 가지 사항을 간략히 살펴본다.
샤넬과 피고 병원 사이에 소위 경업 · 경합관계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다툼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법원에서는 저명표장 희석행위가 반드시 동종 · 유사 관계 또는 경쟁 관계에 있는 상품의 경우에만 성립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법리를 분명히 하였다. 뿐만 아니라 샤넬에서는 고급 화장품도 제조, 판매하고 있기 때문에, "샤넬주사" 표장을 접하는 수요자들이 샤넬에서 이제 미용 목적의 주사제까지 취급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될 가능성도 충분히 인정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성형외과 의원 등에서 합법적으로 시술되고 있는 피부 주름 개선 목적의 주사제가 저급하거나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상품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는 희석화의 두 가지 유형 중 '손상(tarnishment)'보다는 '약화(blurring)'가 주로 문제 된다고 할 수 있다. 즉, 피고 병원에서 쁘띠 성형을 위한 미용 목적 주름 개선 주사제 등과 관련하여 "샤넬주사" 표장을 사용할 경우 사람들은 "샤넬" 표장을 즉각적으로 떠올릴 것이며, 그로 인하여 "샤넬" 표장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식별력이 약화된다는 논리이다.
샤넬에서는 의사가 주사제 시술을 잘못하여 환자들이 불만을 가지거나 환자들에게 부작용이 발생하는 경우, "샤넬" 표장의 명성에 피해가 발생한다는 주장도 하였으나, 이러한 주장의 취지가 엄밀한 의미에서 '손상' 유형의 희석행위를 지적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 물론 사안에 따라서는 '손상'과 '약화' 양자가 중첩적으로 문제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다만, 법원에서는 피고 병원의 행위가 '손상' 유형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약화' 유형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이 사건 판결에서 구체적으로 설시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이 사건의 결론을 도출하는 데에 굳이 양자를 구분할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부정경쟁행위 성립 가능성' 확인
이 사건은 법리적으로 매우 새롭거나 복잡한 쟁점들이 다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저명표장의 희석행위에 따른 부정경쟁행위의 성립 가능성을 법원에서 재확인해 주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참고로 이 사건에서는 샤넬이 부정경쟁행위의 성립 여부에 대한 법원의 신속한 판단을 받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었기 때문에 손해배상청구를 소송 도중에 취하함으로써 이에 대한 법원의 심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희석행위가 문제 될 경우 원고의 손해액을 어떻게 산정할 것인가 하는 부분은 언제나 어려운 문제인데, 이에 대한 판결을 받아보는 것은 아쉽게도 다음 기회로 미루어지게 된 셈이다.
김동원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 dwkim@kimch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