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전화 안받는데 계속 걸어 '부재중 전화' 남겨도 스토킹"
[형사] "전화 안받는데 계속 걸어 '부재중 전화' 남겨도 스토킹"
  • 기사출고 2023.05.30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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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상대방에 불안감 · 공포심 야기"

피해 여성이 전화를 받지 않았더라도 가해자가 반복해 전화를 걸어 '부재중 전화' 표시를 남긴 경우도 스토킹행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A씨는 1998년경부터 B(45 · 여)씨를 알고 지내던 중, 2021년 10월 초순경 B씨에게 사업자금 1,000만원을 빌려 달라고 요구했으나 이를 거절당하였고, 자신의 연락처가 차단번호로 등록되었다. A씨는 10월 29일 오후 3시 24분쯤 B씨가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차단한 사실을 알고, 다른 사람의 휴대전화로 B씨에게 전화를 걸은 것을 비롯하여 2021년 11월 26일경까지 모두 29차례 전화하고, 3차례에 걸쳐 문자메시지를 전송한 혐의(스토킹처벌법 위반) 등으로 기소됐다. B씨는 A씨의 첫 번째 전화를 받아 약 7초간 전화통화를 했으나, 이후부터는 받지 않아 B씨의 휴대전화에 발신자 정보 없음 표시나 부재중 전화 표시가 남겨졌다. 

재판에선 A씨가 전화를 걸었으나 B씨가 받지 않아 휴대전화에 부재중 전화 문구 등이 남은 경우도 A씨의 행위를 '전화 또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글을 도달하게 한 행위'로 보아 스토킹처벌법 위반죄로 처벌할 수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 2조 1호는 "스토킹행위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 또는 그의 동거인, 가족에 대하여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 상대방에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다목에서 '우편 · 전화 · 팩스 또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물건이나 글 · 말 · 부호 · 음향 · 그림 · 영상 · 화상을 도달하게 하는 행위'를 들고 있다.

1심 재판부는 A씨가 수십 차례 전화하고 문자메시지를 보낸 행위를 모두 스토킹행위로 인정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첫 번째 전화의 경우 피고인이 단 1회 전화를 걸었을 뿐이고 그 통화 내용도 밝혀지지 않았으며, 그 이후의 전화의 경우 피고인이 전화를 걸어 피해자의 휴대전화에서 벨소리가 울렸더라도 피해자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피고인이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피해자에게 '음향'을 보냈다고 할 수 없고, 피해자의 휴대전화에 표시된 '부재중 전화' 문구는 전화기 자체의 기능에서 나오는 표시에 불과하여 피고인이 보낸 '글'이나 '부호'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A씨가 B씨에게 전화한 행위는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1, 2심 모두 징역 4월에 40시간의 스토킹 치료프로그램 이수로 형량은 똑같다. 항소심 재판부는 양형 판단에서, "이 사건 범행은 피고인과 피해자가 20년 이상 연인관계로 지내던 중 경제적 문제 등으로 피해자가 피고인과의 관계를 끊으려고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제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그러나 5월 18일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 피해자와 전화통화를 하거나 피해자의 휴대전화에 발신자 정보 없음 표시 또는 부재중 전화 표시가 남겨지도록 한 행위는 스토킹처벌법 2조 1호 다목(쟁점 조항)의 스토킹행위에 해당할 여지가 크다"며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되돌려보냈다(2022도12037).

대법원은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 무선 기지국 등에 '피고인이 피해자와 전화통화를 원한다'라는 내용이 담긴 정보의 전파를 발신, 송신하고, 그러한 정보의 전파가 기지국, 교환기 등을 거쳐 피해자의 휴대전화에 수신된 후 '피고인이 피해자와 전화통화를 원한다' 또는 '피고인이 피해자와 전화통화를 원하였다'는 내용의 정보가 벨소리, 발신번호 표시, 부재중 전화 문구 표시로 변형되어 피해자의 휴대전화에 나타났다면, 피고인이 전화 또는 정보통신망을 도구로 사용하여 피고인 전화기에서의 출발과 장소적 이동을 거친 음향(벨소리), 글(발신번호 표시, 부재중 전화 문구 표시)을 피해자의 휴대전화에 '도달'하게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스토킹처벌법의 문언, 입법목적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전화를 걸어 피해자의 휴대전화에 벨소리가 울리게 하거나 부재중 전화 문구 등이 표시되도록 하여 상대방에게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일으키는 행위는 실제 전화통화가 이루어졌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쟁점 조항이 정한 스토킹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반복적으로 전화를 거는 경우 피해자에게 유발되는 불안감 또는 공포심은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심각하고 피해자가 전화를 수신하지 않았더라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며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스토킹행위는 시간이 갈수록 그 정도가 심각해져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반복적으로 전화를 시도하는 행위로부터 피해자를 신속하고 두텁게 보호할 필요성도 크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또 "피고인이 전화를 걸어 피해자의 휴대전화에 벨소리가 울리게 하거나 부재중 전화 문구가 표시되게 하였음에도 피해자가 전화를 수신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스토킹행위에서 배제하는 것은 우연한 사정에 의하여 처벌 여부가 좌우되도록 하고 처벌 범위도 지나치게 축소시켜 부당하다"며 "피해자가 전화를 수신하여야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킨다고 볼 수 없고, 오히려 스토킹행위가 반복되어 불안감 또는 공포심이 증폭된 피해자일수록 전화를 수신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타인의 휴대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을 때 상대방의 휴대전화 상태에 따라 벨소리나 진동음이 울릴 수 있고 수신이 되지 않았을 때 발신번호나 부재중 전화 문구가 상대방의 휴대전화에 표시된다는 것은 휴대전화 사용이 일반화된 오늘날 휴대전화 사용자들 대부분이 알고 있는 휴대전화의 일반적 기능"이라며 "피고인이 피해자와 전화통화를 의욕하고 전화를 걸었거나 피해자의 휴대전화 상태나 전화수신 여부를 알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으로서는 적어도 미수신시 피해자의 휴대전화에서 벨소리나 진동음이 울리거나 부재중 전화 문구 등이 표시된다는 점을 알 수 있었고 그러한 결과의 발생을 용인하는 의사도 있었다고 볼 수 있으므로 미필적 고의는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