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 외국변호사의 기술⑦ 커뮤니케이션의 기술: 지식의 저주를 피하라
[특별연재] 외국변호사의 기술⑦ 커뮤니케이션의 기술: 지식의 저주를 피하라
  • 기사출고 2023.04.10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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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수요자 입장에서 역지사지 도움"

우리 사무실(법무법인 김장리)의 이민국적팀(Corporate Immigration Department)은 일이 많아 업무강도가 무척 세다. 다국적 기업 소속으로 한국 지사에 파견되거나 고용되는 외국인 임직원의 한국 워킹비자 신청 및 관련 자문 업무가 주업무다. 고객사들이 거의 모두 외국 기업이고, 비자 신청 대상자들도 모두 외국인이다 보니 영어에 능통한 직원들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영어와 한국어에 모두 능통한 대졸사원들을 패러리걸급(paralegal) 애널리스트(analyst)로 활용하면서 매일같이 쏟아지는 업무를 함께 처리하고 있다.

애널리스트들은 장차 미국 로스쿨 진학을 목표로 그 전에 국내 로펌 경력을 2년 정도 쌓고 싶어하는 이중언어가 가능한 대졸자들을 대상으로 선발한다. 로스쿨 진학을 목표로 하는 이들은 대개 매사에 의욕적이고 일을 배우려는 열의가 있다.

애널리스트들이 주로 하는 일은 외국회사 인사담당자나 비자신청 대상 외국인들과 이메일, 전화로 영어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실제로 가서 신청업무를 담당하는 한국 패러리걸들을 위해 고객의 영어 업무지침 전달, 외국 서류 확보, 외국인의 출입국 출석 시 일정 조율, 영문 현황보고 메일 작성 등의 연락업무를 통해 전반적인 사건 관리를 하는 것이다. 이중언어 능력, 특히 영어 능력을 활용한 각종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하면서 고숙련 외국인 인력이 한국 워킹비자를 원활히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업무의 핵심이다.

◇은정 외국변호사
◇은정 외국변호사

애널리스트 커뮤니케이션 업무의 속성은 그들이 나중에 변호사가 되어 로펌에서 일할 때, 특히 한국 로펌에서 외국변호사로 일할 때 하게 될 커뮤니케이션 업무의 속성과 유사해 2년의 애널리스트 업무 경력은 예비 로펌 변호사로서 기본기를 닦을 수 있는 좋은 트레이닝 기회이기도 하다.

애널리스트 한 사람이 동시다발적으로 돌아가는 사건을 항상 수십 건씩 들고 업무가 처음 의뢰되는 순간부터 비자, 외국인등록증 등이 발급될 때까지 외국인들과 계속 영어로 커뮤니케이션해가면서 담당 건들을 진행시켜야 하므로 하루하루의 업무를 쉴 새 없이 전투적으로 치러야 한다.

그들은 이런 치열한 업무를 효율적으로 제대로 처리하기 위해 꼭 필요한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입사 직후부터 교육받는다. 이는 내가 한국 로펌에서 외국변호사로 오래 일하면서 체화된 기술이기도 해서 몇 가지를 '외국변호사의 커뮤니케이션 기술'로 소개한다.

지식의 저주를 피하라

'지식의 저주(curse of knowledge)'란 말이 있다. 의사소통시 내가 아는 것을 다른 사람도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으로 인해 발생하는 인식적 편견이다. 일상적인 업무를 처리할 때 '지식의 저주'와 맞닥뜨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얼마 전에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비자신청 업무를 처리한 직원이 아래와 같이 업무보고 메일을 보내왔다.

"3/9 비자 발급 예정입니다."

이런 경우 정형화된 메일 서식으로 업무를 의뢰한 외국 고객에게 아래와 같이 업무 현황 보고 영문 메일이 발송되곤 했다.

"The work visa issuance is expected to be made by Mar. 9."

그런데 위와 같이 메일이 발송될 때마다 욕구불만이 항상 느껴졌다.

"업무가 완료되는 날이 3월 9일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워킹비자를 신청한 날은 언제라는 거지? 오늘 신청했다는 건가?"

이런 의문점이 꼬리를 물고 생기면 전화 또는 메일로 언제 신청했는지를 물어야 한다. 아마도 메일을 보낸 당일에 신청했다는 것 같지만 아닐 수도 있다. 짐작만으로는 업무를 진행하기가 조심스럽다. 하루에 200개가 넘는 메일을 검토해야 하는 상황에서 후속 전화나 메일로 문의해야 하는 경우가 누적되면 지치게 된다.

그래서 앞으로는 이렇게 업무 보고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3/2 비자 신청해서 3/9 발급 예정입니다."

위와 같이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알게 되면 고객에게 보내는 영문 현황 보고 메일에 더 의미 있는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We filed the visa application on Mar. 2. and the visa issuance is expected to be made by Mar. 9."

육하원칙(5Ws and 1H)에 기해 장황하게 이메일을 쓸 필요는 없지만, 메일 수신인이 알지 못하는 정보는 제대로 기재해야 메일 하나하나가 완전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어느 기관(출입국)에서 무엇(비자신청)을 어떻게 했는지 등은 이미 알고 있으므로 육하원칙의 'when', 즉 언제 신청했고 언제 완료될 예정인지만 알려주면 되는 상황이었다.

정보 수요자의 입장에서 역지사지하면 지식의 저주를 피할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내가 당연히 여기는 것을 다른 사람은 모를 수도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논리의 비약을 조심하라

하루는 애널리스트가 어느 외국인의 외국인등록 신청 일정을 제안하는 메일에 내가 cc되어서 그 메일을 읽으면서 의문이 생겼다. 회사로부터 외국인등록에 필요한 체류지 입증 서류인 임대차계약서가 확보되었는데, 3월 1일에 임대차기간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 이메일이 발송된 날은 이미 3월 1일이 지난 시점이어서 그런지 해당 외국인이 당연히 한국에 입국한 것을 전제로 외국인등록 신청 일정을 제안하는 메일을 보낸 것이었다. (지문날인이 필요한 외국인등록 신청은 해당 외국인이 입국해야 진행될 수 있다.)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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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국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먼저 확인부터 해보고 메일을 보내지"라는 생각에 좀 못마땅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그 외국인으로부터 이메일 회신이 왔는데, 아직 한국에 입국하지 않았으니 언제 이후로 외국인등록 신청 일정을 미루어 달라는 요청이었다. 임대차기간 시작일인 3월 1일은 해당 숙소를 미리 확보하는 차원의 의미가 있었을 뿐, 그 외국인의 입국일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논리의 비약'으로 인한 잘못된 판단은 'A'(임대차기간 시작일)와 'C'(외국인등록 신청일) 사이에 'B'(해당 외국인 미입국)가 있을 수도 있음을 간과해서 생긴다. 논리의 비약은 경험을 통해서 'B'가 있을 수 있음을 알면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풍부한 경험의 바탕에서 논리적인 사고를 해야 미스커뮤니케이션을 방지할 수 있다.

두괄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라

바쁜 업무환경에서 일하면서 동료와 업무상 대화를 하거나 고객에게 이메일을 보낼 때는 상대방이 쉽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커뮤니케이션해야 한다.

나는 애널리스트들이 자기 담당 사건을 나와 의논할 때 항상 고객사 이름(company name)/비자신청 대상 외국인 이름(last name)을 먼저 언급하도록 당부한다. 그래야 애널리스트가 두서없이 말하지 않고 바로 문제의 핵심에 집중할 수 있고, 나도 머릿속에 바로 그 사건이 떠오르면서 대화할 준비가 된다.

고객에게 이메일을 보낼 때도 분량이 길면 핵심주제와 결론을 먼저 쓴다.

외국 고객들에게 복잡한 한국 워킹비자 건에 대해 긴 내용의 영문 메일을 성심껏 작성해서 보내면 고마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짜증내며 "그래서 어쩌라고? So what?"라는 식의 반응을 보일 때가 종종 있었다. 그래서 내용이 복잡하고 긴 메일을 쓰더라도 핵심 내용과 결론을 맨 앞부분에 요약(executive summary)하는 버릇이 오래 전부터 생겼다.

스토리텔링을 할 때 사용하는 기승전결(起承轉結) 공식은 업무 메일을 쓸 때 유용하다. 다만, 기승전결을 위주로 한 글쓰기를 업무에 적용하면 기승전결의 마무리 부분인 '결(結)'을 앞으로 빼서 '결기승전' 순서로 요점과 결론을 일목요연하게 먼저 알려줘야 한다.

로펌에서의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결국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야 하는 업무의 효율성을 기하기 위한 수단이다. 고객과 동료의 입장을 배려해가면서 정교하고 치밀하게 해야 한다.

은정 외국변호사(법무법인 김장리, jun@kimchanglee.com)

◇은정 외국변호사는 누구=한국에서 활동하는 외국변호사 중 한 명인 은정 외국변호사는 USC 로스쿨(JD)을 나와 1996년 캘리포니아주 변호사가 되었으며, 1998년부터 김장리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민 · 국적 업무에 탁월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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