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동지역이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옴시티 프로젝트'를 필두로 '제2의 중동붐'이라고 불릴 정도로 각광받고 있다. 국내 다수의 기업이 중동에서의 다양한 비즈니스 기회를 모색하고 있는 가운데 법무법인 세종과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이 2월 23일 "중동지역 투자 진출(Doing Business in Middle East)"을 주제로 공동 세미나를 개최했다. 국토교통부와 해외건설협회가 후원하고, 중동 투자는 물론 법무와 세무, 분쟁해결 전문가가 총출동한 이번 세미나에서, 딜로이트 안진의 위기관리부문 분쟁지원그룹 그룹장을 맡고 있는 이재성 파트너는 '중동지역 위기관리 및 분쟁지원 서비스'를 주제로 발표했다.
8년간 중동 근무
이 그룹장은 과거 현대건설에 근무하면서 약 8년간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 현지에 머물며 프로젝트를 직접 관리했던 주인공으로, 당시 한국기업들이 프로젝트가 지연되고 추가공사비를 받지 못해 고통 받는 모습을 수없이 지켜봤다고 말했다. 소송이나 중재 등 분쟁해결 과정에 대한 경험도 많다.
이 그룹장은 이날 발표에서 증거확보의 중요성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한국기업들이 클레임이나 분쟁요소를 사전에 식별하고 이를 예방하기 위한 체계를 구축해 운영하려고 하는 것도 그 목적은 다름 아닌 증거확보에 있다고 갈파했다.
"클레임이나 분쟁해결 과정에서 핵심이 되는 부분은 증거입니다. 클레임이나 분쟁해결 절차로 진행되기 전에 증거력 있는 기록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성패를 좌우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미나가 끝난 후 이 그룹장을 다시 만나 발제 내용을 토대로 추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Q: 분쟁해결 과정에서 고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A: 2019년 영국 로펌 Pinsent Masons의 조사결과를 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장 큰 사유는 방대한 자료의 양(43%), 그 뒤를 이어 복잡한 사실관계(37%) 및 다수의 클레임이 하나의 중재로 진행되는 것(30%) 때문에 고객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복잡한 사실관계는 클레임/분쟁해결의 DNA와 같은 것인데 개선될 수 있는 분야가 아닙니다. 저의 경험과 마찬가지로 방대한 자료와 다수의 클레임이 개선할 수 있는 영역일 것입니다. 이는 코로나19로 인해 변경된 업무환경 즉, 개인 PC와 공용서버를 위주로 증거가 생산되다가 Cloud 환경으로 변경됨에 따라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최근 분쟁해결 과정에서는 EDMS (Electronic Document Management Software)의 활용이 필수적입니다. GAR가 낸 보고서 "The Guide to Construction Arbitration"에 따르면 EDMS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이 빠지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분쟁해결 과정에서 EDMS를 활용해 예상하지 못한 돌발증거(Surprising Evidence)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흩어지고 방대한 양의 증거를 효율적으로 활용해 법률전문가인 변호사들이 Entitlement(보상권한)를 더욱 강화할 수 있습니다. 같은 시스템을 활용해 Expert들도 보상권한에 따른 피해금액/시간을 효율적이고 경제적으로 검증할 수 있습니다.
"분쟁해결의 최고봉은 합의"
Q: 소송/중재가 최선책은 아니지 않은가요? 이를 예방할 수는 없나요?
A: 분쟁해결의 최고봉은 당사자간의 합의일 겁니다. 이 경우 서로 의사결정이 가능한 수준까지의 의견교환이 있어야 합니다. 중재/소송에서도 동일하지만, 당사자간의 합의에서도 (심지어 판정부도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증거가 충분하고 구현이 올바르게 되었다면 변호사들의 주장, 논리에서 합의를 도출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집니다. 충분한 증거가 확보되고 구현이 구체적이고 합리적이면 보상권한이 더욱 더 강화되기 때문에 합의가 수월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전에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고 분쟁해결에 활용할 수 있도록 증거화하는 과정이 진정한 예방법무라고 생각합니다.
Q: 예방법무를 언급하셨는데, 지금은 기록 관리에 모두들 신경 쓰고 있지 않는가요?
A: 프로젝트 관리 목적의 기록은 매우 잘 관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을 클레임/분쟁해결을 목적으로 증거화하는 것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저의 경험적 지식입니다. 실례로 중재/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미리 식별되지 않았던 불리한 증거가 상대방의 증거 즉, Surprising Evidence(돌발증거)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록의 증거화가 진정한 증거관리"
회사라는 조직은 1원을 사용해도 전표나 지출결의서와 같은 서류를 작성해야 합니다. 이러한 서류는 기록입니다. 이러한 기록이 증거화될 수 있어야 진정한 증거관리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Q: 그럼 예방법무를 위한 구체적인 증거관리의 방법은 무엇인가요?
A: 신규사업을 하기 위해 기업들은 Feasibility Study(FS)를 수행합니다. 해당 사업의 SWOT 분석, 시장분석, Commercial 분석, Legal 분석 등을 모두 포괄합니다. 분쟁해결은 하나의 사업입니다. 따라서 FS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구체적인 방법으로 Evidence Due Diligence(DD)가 있습니다. 이 Evidence DD를 통해 모든 기록을 확인하고, Legal DD를 통해 보상권한에 대한 강점과 약점을 식별합니다. 이 과정이 선행되어야 무분별한 소송/중재를 사전에 예방하고 발생하지 않아도 될 소송/중재비용을 아낄 수 있습니다.
"불리한 점 먼저 파악해야"
Q: Evidence DD를 통한 이점은 무엇인가요?
A: 지금까지 많은 사건에서 선별적인 증거를 활용해 Legal 자문을 받고 중재/소송을 진행하는 경우를 목격했습니다. 그런데 전체적인, 특히 불리한 점을 먼저 파악해야 변호사들이 보상권한에 대한 진단이 가능하고, 불리한 사안을 방어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Expert들이 참여해 피해금액/비용/시간을 산정하게 되는데, 양 Expert간의 Expert Evidence가 반대의 의견이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중재는 양 당사자가 각각 Expert를 선임합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중재에서는 Common Data Set을 우선 정하고, 같은 출발선에서 분석하도록 유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같은 증거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증거가 충분하다면 양쪽 Expert Evidence가 다르게 나올 경우를 현저하게 줄여줄 수 있습니다.
요약하면, Data 기반의 Legal 및 Expert의 정교한 분석이 가능하고, 그 결과는 재현성을 확보해 어느 Expert가 참여하더라도 같은 결과를 도출하게 만듭니다. 분쟁은 양 당사자간의 '이견' 때문에 발생하는데 분쟁해결에 참여하는 전문가들이 이견이 없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은 Evidence DD를 통한 충분한 증거의 우선 확보입니다.
Q: 지금까지는 충분한 증거가 확보되지 않았다는 얘기인가요?
A: 많은 사건 중 생산성 저하 혹은 Disruption Claim의 사례를 보면 충분한 증거의 확보가 쉽지 않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Disruption Claim은 프로젝트 방해로 인해 불필요한 추가비용이 발생하는 사안에 대해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클레임입니다. Disruption Claim은 구현이 어렵다는 이유로 보상받기 어렵다는 클레임으로 악명 높습니다.
앞에 설명한 것처럼 프로젝트에서는 1원도 기록 없이 지출될 수 없습니다. Disruption Claim은 근로자들의 생산성을 대상으로 하는데 해당 근로자들이 작성하는 Daily Report(일일보고)를 모두 모아 위치별, 시점별 Mapping을 한다면 분석할 수 있는 기초를 만들 수 있습니다. 단, 매일매일 기록해야 하는 일일보고를 모두 모아서 본다는 것이 사뭇 불가능해 보일 수 있습니다.
자료의 연속성, 불일치성 등이 넘어야 할 산입니다. 현재 기술적으로 Data 분석기술(Data Analytics)을 활용하면 이러한 Big Data를 일거에 모아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기술적으로 이젠 구현이 가능한 시대인 것입니다.
이재성 그룹장은 끝으로 "Data 분석은 흔히 디지털 포렌식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데, 디지털 정보를 분석하는 기술을 말한다"며 "형사사건에서는 특정 범죄의 단서를 찾기 위해 사용되지만, 분쟁해결 절차와 접목되면서 그 활용도가 매우 높아졌다"고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의 Data 분석기술은 매우 높은 수준으로 발달해 있다고 한다. 관련업계에서 경험을 쌓은 전문가들까지 포진해 Forensic Accounting에서부터 Quantum/Delay까지 서비스하고 있으며, 이미 15년 전에 eDiscovery절차에 Data 분석기술을 활용해 미국 소송이나 중재에 활용하고 있다.
리걸타임즈 이은재 기자(eunjae@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