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 외국변호사의 기술⑤ 외국변호사의 소프트 스킬
[특별연재] 외국변호사의 기술⑤ 외국변호사의 소프트 스킬
  • 기사출고 2023.01.2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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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 감각, 끼, 강단 살려 고객 마음 사로잡아야"

앞선 칼럼들에서 분석한 영어 리걸라이팅 및 영문계약 실무능력, 법률번역 기술, 한국법 노하우 등이 한국 로펌의 외국변호사가 실제로 업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구체적인 핵심기술인 '하드 스킬'(직무 기술)이라면, 다른 한편으로 외국변호사가 또 갖춰야 하는 역량이 있다. 타인, 특히 외국인과의 상호 작용 능력을 일컫는 '소프트 스킬'(대인 관계 기술)이다.

하드 스킬은 체계적인 훈련에 의해 향상시킬 수 있고 정량적 평가를 할 수 있지만, 소프트 스킬은 단순히 훈련에 의해서만 향상시키기는 어려운 능력이라 정량적 평가를 하기 어렵다.

훈련만으로 향상 어려워

기업체에서 임직원이 갖춰야 하는 대표적인 소프트 스킬은 리더십, 소통 능력, 시간관리 능력, 업무 위임 능력, 팀워크, 창의성, 문제해결 능력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일반적인 설명만으로는 한국 로펌의 외국변호사가 그 직무의 특성상 갖춰야 하는 구체적인 소프트 스킬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은정 외국변호사
◇은정 외국변호사

내 경험상 한국 로펌의 외국변호사가 꼭 갖춰야 하는 소프트 스킬로는 유머 감각과 끼, 그리고 강단을 꼽고 싶다.

특히 유머 감각을 적재적소에 잘 발휘하면 외국 고객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10여 년 전 우리 사무실이 외국 고객사를 대리해 한국 대기업과 제법 큰 합작투자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필자가 고객사 실무 담당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맡은 적이 있다.

한국에 이제 막 합작사를 설립해서 사업을 시작하려던 차에 합작사가 사용하려고 계획했던, 고객사의 유명 상표에 기반한 인터넷 도메인 이름을 미리 선점해둔 사람이 있어서 문제가 되었다. 일단 큰 외국 회사가 해당 도메인 이름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 가격을 올릴까봐 고객사의 신원을 밝히지 않은 채 도메인 이름 등록자로부터 도메인 이름을 넘겨 받기 위한 협상을 시작했다. 마침 그 즈음 유럽에서 고객사 담당자 여러 명이 한국에 출장 와 있었고, 합작 프로젝트의 여러 현안을 같이 논의하자고 해 강남의 한 호텔에서 그들을 만났다.

외국 회사들과 일하다 보면 성격이 까다로운 외국인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이 합작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고객사의 담당 임원 역시 처음 만날 때부터 좀 까칠했고 매사에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휘하의 각 분야 실무 책임자 서너 명도 쉬운 사람들은 아니었다. 한국 쪽 합작 파트너가 까다롭게 군다면서 한국 비즈니스맨들의 사고방식과 문화적인 특성에 대해 관심을 보이기도 하고 투덜대기도 했다. 유럽 각국에서 온 이 쉽지 않은 중년의 남성들과 이런저런 현안을 하나둘씩 정리한 후 문제의 인터넷 도메인 이름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고객사의 기본적인 입장은 과도하지 않은 금액이라면 해당 도메인 이름을 매수하자는 것이었고, 매수 금액 상한선을 정해주면서 일정 금액에 도달하면 바로 합의해주지 말고 고객사 담당자의 사전 승인을 받아 달라고 했다. 그 지침을 듣고 "Okay, I'll tell him I need my wife's permission to pay him what he wants since she controls all the money.(네, 저희 와이프가 돈관리를 다 해서 원하는 금액을 주려면 와이프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하겠습니다.)"라고 진지한 표정으로 능청스럽게 말했다. 다들 부인에게 꽉 잡혀 사는 공처가(혹은 애처가)였는지 그 말을 하자마자 그때까지 근엄한 표정을 짓던 고객사 임직원들이 박장대소를 하면서 회의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사고방식은 달라도 마음에 흐르는 기본적인 정서는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느낀 순간이었다.

외국변호사에게 '추임새 역할' 기대

한국 로펌들은 외국 고객들과 일할 때 마치 판소리의 장단을 맞출 때 소리의 끝 구절마다 흥을 돋우려고 넣는 추임새와 같이 외국변호사들이 한국변호사와 외국인들 사이의 문화적, 정서적 간극을 메우는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 한국변호사들이 외국인들과 소통할 때 교감하기 어려운 부분을 외국변호사들이 담당해주면 외국인들의 마음을 얻고 함께 일하기가 훨씬 편해진다. 어색하고 딱딱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서구적인 유머 감각과 가벼운 대화(small talk) 기술은 정량화하기 어려운 중요한 소프트 스킬이다.

소프트 스킬에 능하기 위해서 꼭 사교적일 필요는 없다. 내성적인 성격이더라도 외국변호사로 오랫동안 일하다 보면 내재된 끼가 필요할 때 발현되면서 상황을 매끄럽게 장악하는 능력이 생겨 높은 수준의 영어 의사소통능력이 필요한 어려운 업무에 자주 투입될 수 있다. 필자 역시 기업 법무를 주로 처리하던 주니어 변호사 시절 까다로운 외국 고객과의 미팅이나 컨퍼런스 콜(전화회의)에 투입된 적이 굉장히 많다.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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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분야가 외국인 전문인력의 한국 워킹 비자를 취득해주는 이민 · 국적 업무로 바뀐 지금도 다국적기업의 본사 또는 한국 지사의 인사담당자 등 주요 이해관계자들과 영어 컨퍼런스 콜을 하는 게 일상이다.

워킹 비자 없이는 한국에서 일을 못하니 비자는 외국인의 국내 파견근무의 시발점이 된다. 워킹 비자 취득과정이 원활치 않으면 임원 부임이나 프로젝트 추진 등이 악영향을 받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서 책임문제가 생길 수 있는 외국 본사의 인사담당자들이 영어 컨퍼런스 콜을 소집해 비자 업무에 관해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며 까칠하게 따지고 드는 경우가 많다.

이런 영어 컨퍼런스 콜은 보통 워킹 비자를 받아야 할 대상자가 고위 임원이어 특별히 신경 쓸 사안이 있거나 뭔가 특이한 쟁점이 있는 경우에 소집된다. 그런 만큼 영어 컨퍼런스 콜은 중요한 문제가 많이 다루어지는, 국제 업무를 처리하는 변호사로서 때로는 부담스럽고 어려운 업무 중 하나이다.

이메일 교환만으로 업무 진척이 더디어지면 시도 때도 없이 각국의 이해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영어 컨퍼런스 콜을 바로 소집하는 게 외국계 기업의 생리라 외국계 기업 관련 업무를 하는 변호사는 여러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영어 컨퍼런스 콜을 강단 있게 잘 처리해야 한다.

"영어 컨퍼런스 콜 강단 있게 잘 처리해야"

컨퍼런스 콜을 주도해야 하는 상황인 경우, 변호사가 의제를 정하고 쟁점을 파악하여 해법과 대안을 군더더기 없이 영어로 잘 설명해야 하는데, 여러 이해관계자를 휘어잡고 미팅을 주도해야 하므로 그들보다도 기가 더 세야 한다. "이건 왜 그러냐?"고 누가 따지면 잘 방어해야 하고, 때로는 자기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공세적으로 나가야 한다.

영어 컨퍼런스 콜을 잘 하기 위해서는 일단 콜의 대상이 되는 업무에 해박해야 함은 물론이고 영어를 기본적으로 잘해야 한다. 예리한 질문에 순발력 있게 잘 대답해야 하고 모든 참석자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이해하기 쉽게, 그리고 자신감 있게 피력해야 한다. 이러기 위해선 일종의 쇼맨십과 끼가 필요하다.

영어 컨퍼런스 콜에서 변호사가 좋은 '퍼포먼스'로 각국의 참석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하면 인정을 받기 어렵다. 반면에 까다로운 질문이 퍼부어지는 가운데 퍼포먼스를 잘하면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신뢰감이 생기고 자신의 리더십 하에서 사람들이 따라오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영어 컨퍼런스 콜이 일상화되어 수없이 많은 컨퍼런스 콜에 임해보니, 로펌 변호사든 사내변호사든 업무적으로 공격적인 성향(sharp elbows)의 임직원이 많은 외국계 기업을 고객으로 상대하며 일할 때 이해관계자들의 서로 다른 입장을 조율하고 주도적으로 업무를 장악하려면 성격이 좀 드셀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한국 로펌의 외국변호사가 일을 잘하려면 하드 스킬 외에도 유머감각, 끼, 강단 등 플러스 알파적인 소프트 스킬을 적절히 잘 구사할 필요가 있다. 이런 소프트 스킬은 단순 훈련으로 향상시키기 어려운 능력이지만 신명 나게 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발현될 수 있다. 필자도 그랬다.

은정 외국변호사(법무법인 김장리, jun@kimchanglee.com)

◇은정 외국변호사는 누구=한국에서 활동하는 외국변호사 중 한 명인 은정 외국변호사는 USC 로스쿨(JD)을 나와 1996년 캘리포니아주 변호사가 되었으며, 1998년부터 김장리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민 · 국적 업무에 탁월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