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차 하도급 관계에서 임금체불을 당한 하청근로자들이 원청으로부터 체불임금을 지급받고 처벌을 희망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했다면 직상수급인과 하수급인도 처벌할 수 없다는 첫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원청인 상위 수급인에 대한 처불불원 의사표시에는 직상수급인과 하수급인에 대한 처벌불원 의사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상 임금체불은 반의사불벌죄이다.
김해시 한림면에 있는 플랜트제조업체 사업장에서 닥트공사와 사일로 제작 등의 시설공사를 재하도급받아 수행한 개인사업주 A씨는, 2014년 4월 10일경부터 7월 24일경까지 닥트공사와 사일로 제작과 관련하여 생산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퇴직한 근로자의 2014년 5월분 임금 438만원, 6월분 임금 372만원, 7월분 임금 348만원 등 합계 1,158만원을 지급하지 않은 것을 비롯하여 자신의 소속 근로자 17명의 임금 합계 7,230여만원을 지급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
A가 맡은 닥트공사와 사일로 공사는 아 플랜트제조업체의 대표인 C씨가 B씨에게 도급을 주었고, B가 다시 A에게 재도급한 것이다. 검찰은 C는 상위 수급인으로서 도급계약에 의한 위 공사의 하도급대금을 정당한 사유 없이 B에게 지급하지 않았고, B는 직상 수급인으로서 하도급대금을 정당한 사유 없이 A에게 지급하지 않아 A가 근로자 17명에 대한 임금 7,230여만원을 지급하지 않게 했다며 B, C를 A와 함께 기소했다. 근로기준법 36조는 "사용자는 근로자가 사망 또는 퇴직한 경우에는 그 지급 사유가 발생한 때부터 14일 이내에 임금, 보상금, 그 밖의 모든 금품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같은법 44조(도급 사업에 대한 임금 지급) 1항은 "사업이 한 차례 이상의 도급에 따라 행하여지는 경우에 하수급인(도급이 한 차례에 걸쳐 행하여진 경우에는 수급인을 말한다)이 직상 수급인(도급이 한 차례에 걸쳐 행하여진 경우에는 도급인을 말한다)의 귀책사유로 근로자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못한 경우에는 그 직상 수급인은 그 하수급인과 연대하여 책임을 진다. 다만, 직상 수급인의 귀책사유가 그 상위 수급인의 귀책사유에 의하여 발생한 경우에는 그 상위 수급인도 연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근로자 17명 중 13명은 C 측과의 민사사건에서 조정된 바에 따라 체불임금을 지급받았고, 이에 이 근로자 13명은 형사 1심판결 선고 전인 2017년 6월 C에 대한 고소취하서를 제출하고 C에 대한 처벌을 희망하지 아니하는 의사를 표시했다. 근로기준법 109조 2항에 따르면, 36조, 44조 등을 위반한 자에 대하여는 피해자의 명시적인 의사와 다르게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1심 재판부는 근로자 17명에 대한 임금체불 혐의를 인정, A와 B에게 각 벌금 300만원을 선고하고, C에 대해선 근로자 13명에 대한 임금체불 부분에 대한 공소는 기각하고 나머지 4명에 대한 임금체불과 다른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 등만 유죄를 인정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가 근로자 13명의 C에 대한 처벌불원 의사표시에는 A, B에 대한 처벌불원 의사표시도 포함되어 있다고 보아 A, B의 이 부분 혐의에 대한 공소를 기각하고, 나머지 근로자 4명에 대한 임금체불 혐의만 인정, A와 B에게 각 벌금 100만원을 선고하자 검사가 상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 재판부가 C에 대해 공소를 기각한 부분에 대해선 그대로 유지했다.
대법원 제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12월 29일 원심의 판단을 수긍,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2018도2720).
대법원은 "근로기준법 제44조, 제109조의 입법 목적과 규정 취지에 비추어 보면, 임금 미지급에 귀책사유가 있는 상위 수급인은 하수급인의 근로자에 대한 관계에서 근로계약의 당사자는 아니지만 임금 미지급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그 책임이 하수급인 또는 그 직상 수급인보다 가볍다고 볼 수 없고, 상위 수급인이 하수급인의 근로자에게 임금지급의무를 이행하면 하수급인과 직상 수급인의 임금지급의무도 함께 소멸하게 된다"고 밝혔다. 이어 "하수급인의 근로자가 일반적으로 하수급인보다 자력이 더 나은 상위 수급인을 상대로 직접 임금을 청구하거나 형사고소 등의 법적 조치를 취할 여지가 많다 보니, 그 과정에서 상위 수급인이 근로자와 임금 지급에 관한 합의를 원만하게 이루고 근로자의 의사표시로 처벌을 면할 수 있는 경우에도 합의 과정에 참여하지 못한 하수급인이나 직상 수급인에 대하여는 처벌을 희망하지 아니하는 근로자의 의사표시가 명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지적하고, "이러한 경우에도 귀책사유가 있는 상위 수급인으로부터 임금을 지급받는 등으로 그와 합의한 근로자가 하수급인이나 직상 수급인만 따로 처벌받기를 원하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 것"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근로자가 상위 수급인의 처벌을 희망하지 아니하거나 처벌을 희망하는 의사를 철회하는 의사표시를 하는 경우에는, 근로자가 임금을 직접 청구하거나 형사고소 등의 법적 조치를 취한 대상이 누구인지, 상위 수급인과 합의에 이르게 된 과정 및 근로자가 처벌을 희망하지 아니하거나 처벌을 희망하는 의사를 철회하게 된 경위, 근로자가 그러한 의사표시에서 하수급인이나 직상 수급인을 명시적으로 제외하고 있는지, 상위 수급인의 변제 등을 통하여 근로자에 대한 임금지급채무가 어느 정도 이행되었는지 등의 여러 사정을 참작하여 여기에 하수급인 또는 그 직상 수급인의 처벌을 희망하지 아니하는 의사표시도 포함되어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하고, 하수급인과 직상 수급인을 배제한 채 오로지 상위 수급인에 대하여만 처벌을 희망하지 아니하는 의사표시를 하였다고 쉽게 단정하여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원심은 근로자 14명이 상위 수급인 C에 대하여 처벌을 희망하지 아니하는 의사를 표시한 데에는 하수급인인 A, 직상 수급인인 B에 대한 처벌을 희망하지 아니하는 의사표시도 포함되어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한 다음, 공소사실 중 판시 피고인들(A, B)의 근로기준법 위반 부분은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사건에 대하여 제1심판결 선고 전에 처벌을 희망하지 아니하는 의사표시가 있는 때에 해당한다고 보아 형사소송법 제327조 제6호에 따라 공소를 기각하였다"며 "원심의 판단에 상위 수급인에 대한 처벌을 희망하지 아니하는 의사표시의 해석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특정 사업주에 대한 처벌불원의 의사표시가 있는 경우, 그것이 특정 사업주에 대해서만 처벌을 불원한다는 의사임이 명확하지 않은 이상 다른 사업주에 대한 처벌불원 의사가 포함되지 않았다고 판단하는 데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취지"라며 "순차 하도급 관계에 있는 여러 사업주의 임금 등 미지급으로 인한 근로기준법 위반 여부가 문제되는 사건과 관련하여, 특정 사업주에 대한 처벌불원의 의사표시가 있는 경우 그 법률효과가 인정되는 범위를 판단하는 기준을 명확히 제시한 판결"이라고 말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