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 기업의 공정거래법 위반과 이사의 책임
[공정거래] 기업의 공정거래법 위반과 이사의 책임
  • 기사출고 2023.01.09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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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법원은 기업의 공정거래법 위반과 관련하여 이사가 위법행위를 지시하거나 관여하였다고 인정되지 않는 경우에도, 임직원의 위법행위를 방지하기 위하여 합리적인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거나 그 시스템을 구축하고도 이를 이용하여 회사 업무 전반에 대한 감시 · 감독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이사의 감시의무 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고 하면서, 대표이사뿐만 아니라 사외이사를 포함한 전체 이사에 대해 감시의무 해태를 인정하는 취지로 판단하여 주목을 끌고 있다.

◇정영식(좌) · 진상훈 변호사
◇정영식(좌) · 진상훈 변호사

주주대표소송에서 책임 인정

대법원(2022. 5. 12. 선고 2021다279347 판결, 이하 '대상 판결')은, 경제개혁연대 등 건설회사 주주들이 건설회사의 4대강사업 입찰담합에 대하여 부과된 공정위 과징금(총 280억여원) 상당의 손해에 관하여 당시 대표이사 및 다수의 평이사들(사외이사 포함)에게 이를 배상할 것을 청구한 주주대표소송에서, 모든 이사는 적어도 회사의 목적이나 규모, 영업의 성격 및 법령의 규제 등에 비추어 높은 법적 위험이 예상되는 업무와 관련해서는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하여 작동되도록 하는 방식으로 감시의무를 이행하여야 하며, 회사의 업무집행을 담당하지 않는 사외이사 등은 내부통제시스템이 전혀 구축되어 있지 않는데도 내부통제시스템 구축을 촉구하는 등의 노력을 하지 않거나 내부통제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더라도 제대로 운영되고 있지 않다고 의심할 만한 사유가 있는데도 이를 외면하고 방치하는 등의 경우에 감시의무 위반으로 인정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감시의무 폭넓게 인정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이사의 감시의무 인정 범위를 폭넓게 보아 개별입찰업무에 관여하거나 보고받은 사실이 없어 입찰담합에 대해 알지 못하였고 알 수도 없었다고 하더라도 이사는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하면서, ①회사가 제정한 윤리강령, 기업행동강령과 회사가 시행한 공정거래법 교육, 윤리경영교육 등은 임직원의 직무수행에 관한 추상적이고 포괄적 지침 또는 사전교육에 불과한 점, ②담당 본부장의 책임 아래 입찰담합이 진행되었다는 것은 이사들로부터 아무런 제지나 견제를 받지 않은 것과 다름없고, 담합 관여자들에 대한 조사절차 또는 징계절차도 전혀 운용하지 않았으며, 입찰담합을 주도한 직원이 오히려 임원으로 승진하기도 하였던 점, ③해당 건설회사는 입찰담합과 관련하여 수십여회 과징금 처분을 받았고, 그 대부분은 피고들이 이사로 재직하던 기간 동안 일어난 일이었으며, 대규모 공사의 경우 대형 건설회사 사이의 입찰담합의 가능성이 상시 존재함에도, 임직원의 입찰담합 시도를 방지, 차단하기 위한 어떠한 보고 또는 조치도 요구하지 않았고, 내부통제시스템의 구축 또는 운용에 관하여도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점, ④대법원은 이미 2008년에 대규모 주식회사의 이사에 대하여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하고 제대로 작동하도록 배려할 의무가 있다고 선언하였을 뿐만 아니라, 준법 관련 업무를 전담하는 컴플라이언스팀은 다수의 입찰담합 적발 이후에야 신설된 것인 점, ⑤피고들이 이사회에 상정된 의안에만 관여하였을 뿐 내부통제시스템의 구축 및 운용 관련 어떠한 보고나 조치를 요구하였음을 인정할 증거는 전혀 없다는 점을 근거로, 대표이사와 이사 및 사외이사들의 감시의무 위반 책임을 인정한 원심이 정당하다고 판시하였다.

대상 판결은 주식회사 이사의 '합리적인 정보 및 보고시스템과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하고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배려할 의무'에 관한 대법원의 기존 법리가 발전되어 온 것이다. 위 법리는 대법원 2008. 9. 11. 선고 2006다68636 판결 등으로 인정되어 왔는데, 대법원 2021. 11. 11. 선고 2017다222368 판결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①위법행위를 몰랐거나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은 대표이사의 책임을 인정하였고, ②담합행위에 따른 공정위 과징금도 손해에 해당된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으며, ③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상의 내부회계관리제도 등만으로는 내부통제시스템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구체적인 판단을 하였다. 대상 판결은 대표이사에 대한 책임을 인정한 위 대법원 판결의 법리가 사외이사를 포함한 전체 이사에 적용된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사 책임, 전체 이사로 확대

이사의 감시의무에 관하여 미국에서는 주로 델라웨어주 판결을 중심으로 판례가 축적되었고, 일본에서는 '건전한 회사 경영을 위해서는 사업의 규모, 특성 등에 따라 발생하는 각종 리스크, 예컨대 신용, 시장, 유동성, 사무, 시스템의 각 리스크 상황을 파악하고 적절한 제어를 위한 리스크 관리체제를 구축해야 하고, 대표이사 및 업무담당이사는 이러한 리스크 관리시스템 구축과 그 시스템의 이행을 감시할 의무가 있다'고 한 다이와은행 판결 이후 담합과 관련한 대표소송이 다수 진행되었다.

기업의 내부통제는 기업업무의 효율성 및 법령 준수를 확보함으로써 기업가치의 유지 · 향상에 기여하고, 사회구성원으로서 존립의 기반이 된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국민연금공단도 2020년 연차보고서에서 수탁자책임활동과 관련해 ESG(환경 · 사회 · 지배구조) 투자와 함께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겠다고 밝히면서 그 수단 중 하나로 주주대표소송 제기 실행 추진을 언급한 바 있다. 따라서 국민연금을 비롯하여 주주대표소송의 원고적격이 있는 사람 또는 단체는 대상판결을 계기로 회사의 공정거래법 위반행위에 대해 이사들의 감시 소홀에 따른 책임을 추궁하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소송을 제기당하는 이사들의 경우 단순히 공정거래법 위반행위에 관여하거나 보고받은 사실이 없어 이에 대해 알지 못하였다는 주장만으로는 책임을 면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강화 예고

대표이사나 업무담당이사의 경우에는 위법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합리적인 보고시스템과 내부통제시스템을 갖추도록 하였다는 점, 그리고 이를 이용하여 회사 업무 전반에 대한 감시 · 감독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였다는 점을 증명할 부담을 지게 될 것으로 보이고, 사외이사 등의 경우에도 내부통제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 않거나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고 의심할 사유가 있다면 내부통제시스템 구축이나 운영을 촉구하는 등의 노력을 하였다는 점을 증명할 부담을 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유형의 주주대표소송에서는 담합행위 등 공정거래법 위반행위의 기간이 얼마나 장기인지 여부, 법령준수교육 외에 위법행위가 의심되는 경우의 신고절차 및 신고자에 대한 보호 내지 보상 등 위법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절차의 구비 여부, 위법행위 관여자들에 대한 조사 및 징계절차의 구비 및 그 이행 여부, 그밖에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 등이 일반적인 쟁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문제된 위법행위의 행위자, 위법행위 자체의 특성에 비추어볼 때 이사가 위와 같은 노력을 하였다면 위법행위를 적발하여 시정할 수 있었을지의 여부 등 개별적인 사안의 특성에 따른 쟁점들도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과 경영진의 입장에서는 이와 같은 주주대표소송의 추이를 잘 파악하여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대비를 해둘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정영식 · 진상훈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 youngshik.jung@kimch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