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 외국변호사의 기술③ 영문계약 실무
[특별연재] 외국변호사의 기술③ 영문계약 실무
  • 기사출고 2022.12.09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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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 차이 해결하고 영문 문서화하는 외국변호사 업무의 꽃"

지난 1, 2회 칼럼에서는 외국변호사의 업무 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법률번역을 주로 다뤘다. 국내 로펌 소속의 외국변호사는 한국변호사들을 지원하는 대안적 법률 커리어(alternative legal career) 직역의 특성상 법률번역이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외국변호사가 너무 번역업무에만 소모적으로 매몰되면 변호사로서의 정체성을 잃은 채 커리어에 대한 보람을 찾지 못하고 욕구불만을 느낄 수밖에 없다. 국내 로펌에서 활동하는 외국변호사가 지향해야 할 길은 정교한 법률번역 기술(craft)을 보유한 국제법무 전문가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 법률번역만 하는 '무늬만 변호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법률번역만 하는 '무늬만 변호사'는 곤란

이때 외국변호사의 정체성을 유지시키는 업무는 다름 아닌 영문계약 실무이다. 국제 영문계약 실무는 상대방 변호사와 치열한 공방을 벌이며 계약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쟁점에 관한 입장 차이를 해결할 수 있는 타협안을 제시하여 교착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을 마련하고 이를 정확히 영문으로 문서화하는 업무이다. 영문계약 실무는 국제업무를 하는 변호사가 처리하는 업무의 꽃이다.

◇은정 외국변호사
◇은정 외국변호사

필자는 국내 로펌에 입사한 후 10년의 어소 변호사 생활 동안 영문 리걸라이팅(legal writing) 능력이 탁월한 파트너 변호사 밑에서 영문계약 실무에 관한 도제식 교육을 혹독하게 받았다. 그분은 사법연수원을 수석으로 수료하고 판사로 재직한 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하버드대, 뉴욕대 로스쿨에서 LLM 및 JD 학위를 취득하고 로스쿨의 로리뷰(Law Review)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그 후 미국 로펌에서 영문계약 실무 등 다양한 업무 경험을 많이 쌓은 후 귀국하여 여러 M&A 거래에서 활약하는 국내 최고의 M&A 전문가 중 한 명이다.

다른 해석 가능성 없어야

그분으로부터 변호사는 협상을 통해 이뤄진 합의내용을 정확하게 문서화할 수 있어야 하지만, 문서화 작업은 합의내용을 그대로 기재하기만 하면 되는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복잡한 거래내용에 대해 나중에 다른 해석의 가능성이 제기되지 않도록 합의내용을 확실하게 문서화하려면 관련 법률에 관한 심도 있는 이해와 숙련된 언어구사력이 필수적임이 늘 강조됐다.

그런 훌륭한 분 밑에서 일을 배워 그런지 필자는 미국 로스쿨을 졸업한 후 미국 로펌에서 수련할 기회가 없었음에도 어소 변호사 시절 영문계약 실무에 능하다는 평을 자주 들었다. 어소 변호사 시절 동료 한국변호사들과 함께 외국 기업을 대리해 참여한 어떤 합작투자계약 협상 과정에서 필자가 영문 합작투자계약서를 수정하여 합작 파트너인 국내 기업을 대리하는 상대방 로펌에 제시한 적이 있는데, 이때 그쪽 파트너변호사가 필자의 수정사항(drafting)이 깔끔한 걸 눈여겨 봤다면서 미국 어느 로펌 출신이냐고 묻길래 흐뭇한 마음으로 그냥 웃어넘긴 적이 있다.

마침 필자가 국내 로펌에서 일하기 시작한 1998년은 IMF 외환위기가 시작된 직후로 외국에서 한국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각종 크로스보더 거래를 규율하는 관련 법규 및 다양한 유형의 국제 영문계약 실무를 익힐 수 있는 좋은 시절이기도 했다.

필자가 어소 변호사 시절 일반 기업법무(general corporate/commercial law) 분야에서 집중 · 반복하여 처리한 기본적인 국제 영문계약서들은 다음과 같다. 다른 유형의 계약서들도 많지만 그 구조와 쟁점들은 기본적인 계약서들에서 파생되는 부분이 많다.

1. 물품매매계약서(Purchase and Sale Agreement)
2. 공급계약서(Supply Agreement)
3. 대리상계약서(Sales Representative Agreement)
4. 총판계약서(Distribution Agreement)
5. 라이선스계약서/기술이전계약서(License Agreement/Technology Transfer Agreement)
6. 연구개발계약서(Research and Development Agreement)
7. 대출계약서(Loan Agreement)
8. 합작투자계약서(Joint Venture Agreement)
9. 주식매수계약서(Stock Purchase Agreement)
10. 자산인수계약서(Asset Purchase Agreement)
11. 영업양수도계약서(Business Transfer Agreement)

위 계약서들은 단순 매매거래에서 복잡한 M&A 거래까지, 외국 기업들이 국내에 진출하는 각 사업 단계별로 사용하는 주요 계약서들이기도 하다.

양보할 쟁점 · 쟁취할 쟁점 터득

필자는 경험이 많은 파트너 변호사들과 함께 위와 같이 다양한 유형의 영문계약서를 검토, 협상, 작성하면서 배운 것이 많다. 또 수련하는 마음으로 영문계약 실무 교육과정도 많이 찾아다니면서 강의를 듣기도 했고, 수많은 영문계약 실무서를 사 모으면서 틈틈이 밑줄을 쳐가며 공부하기도 했다. 실제 거래에서 사용된 다양한 유형의 계약서들을 면밀히 검토하면서 협상 단계별로 계약 당사자들이 서로 제시한 수정안들을 비교해 보며 입장 차이를 좁혀가는 과정을 연구하기도 했다. 이렇게 치열하게 영문계약 실무에 관하여 차곡차곡 내공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어떤 쟁점은 양보해도 되고 어떤 쟁점은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지를 터득해 가면서 영문계약 실무를 보는 관점이 생겼다.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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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계약 실무 경험이 쌓이면서 나중에는 여러 기업체에 강사로 초빙되어 영문계약 실무를 강의하기도 했고, 사무실 내에서 한국 어소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영문계약 실무 연구회 세미나를 갖기도 했다. 오랜 기간에 걸쳐 축적된 좋은 계약 서식들이 많아 사무실 동료 변호사들이 특정 거래에 관한 영문계약 서식이 필요하면 필자에게 문의하는 일도 많았다. 이런 폭넓은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대학원의 금융법학 석사과정에 진학해 M&A 계약의 쟁점을 주제로 석사학위 논문을 써서 영문계약 실무 경험을 뒷받침하는 이론적인 틀도 세우려고 노력했다.

강사로 초빙되어 영문계약 실무 강의

영문계약 실무는 해도 해도 더 공부하고 연구할 게 많은 매력적이고 지적인 업무이다. 필자는 어소 변호사 시절 법률번역을 통해 터득한 정교한 언어구사력을 영문계약 실무의 문서화 기술에 적용하면서 두 개의 다른 업무영역에서 업무능력이 배가되는 상승효과를 얻기도 했다.

국내 로펌에서 일하는 외국변호사들이 자격국의 정통 변호사 업무에서 벗어난 업무를 하다 보면 변호사로서의 정체성이 희석될 수 있다. 그러나 법률번역 등 보조적인 업무를 하더라도 외국변호사의 본질적인 업무인 영문계약 실무에 꾸준히 정진하다 보면 정체성을 잃지 않고 국내에서 외국변호사로 의미 있는 대안적 법률 커리어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지금은 외국 기업인의 한국 워킹비자 관련 이민 · 국적 업무가 필자의 전문분야가 되었지만, 필자가 다년간 쌓은 영문계약 실무 경험은 외국변호사로 국내 로펌에서 의미 있는 커리어를 구축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다. 일반 기업법무를 더 이상 많이 처리하지 않아 오랫동안 모은 국제 기업법무 실무서를 후배 변호사들에게 많이 나눠줬지만 기본적인 영문 계약실무서들은 아직도 필자의 사무실 책장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필자에게 영문계약 실무는 특히 애착이 가는 업무분야이다.

은정 외국변호사(법무법인 김장리, jun@kimchanglee.com)

◇은정 외국변호사는 누구=한국에서 활동하는 외국변호사 중 한 명인 은정 외국변호사는 USC 로스쿨(JD)을 나와 1996년 캘리포니아주 변호사가 되었으며, 1998년부터 김장리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민 · 국적 업무에 탁월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