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아버지 돈 몰래 빼쓰고 '성명불상자' 고소했어도 무고죄 불성립"
[형사] "아버지 돈 몰래 빼쓰고 '성명불상자' 고소했어도 무고죄 불성립"
  • 기사출고 2022.11.02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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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피무고자 해할 수 없어"

대법원이 특정되지 않은 성명불상자에 대한 무고죄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기존 대법원 판례를 재확인했다. 대법원 제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9월 29일 무고 혐의로 기소된 A(27)씨에 대한 상고심(2020도11754)에서 이같이 판시,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되돌려보냈다.

A씨의 아버지는 골프연습장을 운영하며 A씨 명의의 농협은행 계좌를 사용하고 있는데, A씨는 2018년 11월 무렵 위 계좌와 연결된 통장을 재발급받아 2018년 11월 29일부터 2019년 2월 1일까지 합계 1,865만원을 몰래 인출해 유흥비 등으로 사용했다. A씨는 2019년 2월 8일 아버지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의정부시에 있는 의정부경찰서 민원실에서 '농협은행 계좌에서 본인도 모르는 출금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2018년 11월 29일부터 의심됩니다. 본인의 통장은 아버지와 회사 관리부장 외에는 접근이 불가능한 통장입니다. 두 분 다 모르는 상태에서 계속 간헐적인 출금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 2019년 2월 1일에도 출금이 이루어진 듯합니다. 본인의 예금거래 내역서와 함께 제출하오니 출금자의 신원을 밝혀주세요'라고 기재한 고소장을 제출하고, 같은날 참고인조사를 받으며 같은 취지로 진술하여 수사를 요청했다. 그러나 사실 A씨가 위 계좌에서 예금을 인출한 것이므로 다른 사람이 위 계좌에서 예금을 인출한 사실이 없었다. 검찰은 특정되지 않은 '성명불상자'를 무고한 것만으로도 무고죄가 성립한다고 보아 A씨를 무고 혐의로 기소했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가 모두 무고 유죄를 인정해 A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하자 A씨가 상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무단 출금자의 신원을 밝혀 달라는 취지로 자신의 주거지와 멀리 떨어진 의정부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하면서, 위 경찰서 관할지역 회사에서 계좌 관리를 하는 관리부장에게 의심이 가도록 진술도 하였고, 피고인의 고소 보충 진술에 따라 위 관리부장을 비롯한 다른 사람이 자칫 용의선상에 오를 수 있었다"며 "사정이 이와 같다면, 피고인의 신고로 수사권이 발동함으로써 장래에 신고행위의 피무고자가 특정될 수도 있고, 그 결과 피고인의 신고로 인하여 부당하게 수사절차의 대상이 되지 않을 법적 이익을 침해받는 사람이 존재하게 되므로, 이를 자기무고나 허무인에 대한 신고라고 할 수는 없다. 피고인에게 적어도 타인이 형사처분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결과의 발생에 대한 목적과 미필적인 인식이 있었다고 볼 것"이라고 유죄판결 이유를 밝혔다.

대법원은 그러나 종전의 대법원 판결(2009도5073)을 인용, "특정되지 않은 성명불상자에 대한 무고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공무원에게 무익한 수고를 끼치는 일은 있어도 심판 자체를 그르치게 할 염려가 없으며 피무고자를 해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원심은 피고인이 제출한 고소장 기재 내용과 고소 보충 진술을 통해 피무고자가 '관리부장 등'으로 특정되었다고 보았는데, 이는 공소사실에 포함되지 아니한 사실을 인정하거나 공소사실에 적시된 바 없는 사실을 일부 추가하여 인정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그런데 이와 같이 유죄판결의 이유로서 명시되어야 하는 범죄사실이 공소사실에 기재되지 아니한 새로운 사실을 인정하거나 행위의 내용과 태양을 달리하는 것이 분명하다면, 비록 그에 대하여 공판절차에서 어느 정도 심리가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부분을 유죄로 인정하기 위하여는 공소장변경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특정되지 아니한 '성명불상자'에 대한 무고죄는 성립하지 아니하므로 '관리부장 등'에 대한 무고행위와 그 행위의 내용과 태양이 서로 달라서 그에 대응할 피고인의 방어행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결국 원심이 공소장변경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채 쟁점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것은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실질적 불이익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할 것이므로, 위와 같은 원심의 조치에는 공소장변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함으로써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법무법인 대륙아주가 A씨를 변호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