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이 형사재판을 받던 중 국외로 도피했어도 재판시효가 정지되지 않는다는 첫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9월 29일 특경가법상 사기 혐의로 기소된 주류도매업자 A씨에 대한 상고심(2020도13547)에서 이같이 판시하고, 검사의 상고를 기각, 재판시효 15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면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유흥주점 인수대금 등을 마련하기 위해 피해자들을 속여 6회에 걸쳐 총 5억 6,000만원을 편취한 혐의로 1997년 8월 21일 기소됐다. 1997년 11월 7일경 1회 공판기일이 진행되었으나, A씨가 1998년 4월 미국으로 출국해 다시 입국하지 않음에 따라 A씨에 대한 소환이 되지 않은 채 공판이 진행되지 못하게 되었다. 피고인에 대한 소환불능 시 법정형 장기 10년 이하의 사건에 대해서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23조를 근거로 공시송달에 의한 피고인 불출석 상태에서 공판기일 진행이 가능하나, 법정형이 장기 10년을 초과하는 사건에 대해서는 면소나 공소기각 사유가 있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공판기일 진행이 불가능하다.
1심 법원은 공소제기일로부터 15년이 지난 시점인 2020년 3월 20일, 면소 판결이 명백한 경우 피고인 출석 없이 공판을 진행할 수 있도록 규정한 형사소송법 277조 2호를 근거로 피고인의 출석 없이 공판기일을 다시 진행했다.
재판에선 국외 도피로 인한 공소시효 정지를 규정한 형사소송법 253조 3항이 형사소송법 249조 2항의 시효(재판시효)에도 적용되는지가 쟁점이었다. A씨에게 적용된 구 형사소송법 249조 2항은 "공소가 제기된 범죄는 판결의 확정이 없이 공소를 제기한 때로부터 15년을 경과하면 공소시효가 완성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는 형사소송법 253조 3항은 이미 재판 중인 피고인에게 적용할 수 없어 공소시효가 완성되었다고 보고 A씨에게 면소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대법원은 종전의 대법원 판결(2008도4101)을 인용, "형사소송법 제253조 제3항은 '범인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 그 기간 동안 공소시효는 정지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위 조항의 입법 취지는 범인이 우리나라의 사법권이 실질적으로 미치지 못하는 국외에 체류한 것이 도피의 수단으로 이용된 경우에 그 체류기간 동안은 공소시효가 진행되는 것을 저지하여 범인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하여 형벌권을 적정하게 실현하고자 하는 데 있다"고 전제하고, "위와 같은 법 문언과 취지 등을 종합하면, 형사소송법 제253조 제3항에서 정지의 대상으로 규정한 '공소시효'는 범죄행위가 종료한 때로부터 진행하고 공소의 제기로 정지되는 형사소송법 제249조 제1항의 시효를 뜻하고, 그 시효와 별개로 공소를 제기한 때로부터 일정 기간이 경과하면 공소시효가 완성된 것으로 간주된다고 규정한 형사소송법 제249조 제2항에서 말하는 '공소시효'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따라서 공소제기 후 피고인이 처벌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에도, 그 기간 동안 형사소송법 249조 2항에서 정한 기간(재판시효)의 진행이 정지되지는 않는다는 것.
대법원은 "원심이 같은 취지에서 이 사건 공소사실 범죄에 대하여 판결의 확정 없이 공소가 제기된 때로부터 15년이 경과하여 형사소송법 제249조 제2항에서 정한 시효가 완성되었다는 이유로 피고인에 대하여 면소를 선고한 제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한 것은 정당하고, 원심판결에 형사소송법 제253조 제3항의 적용 범위에 관한 법리 등을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
2007. 12. 21. 형사소송법 249조 2항(재판시효)의 시효기간을 15년에서 25년으로 연장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이 이루어져 시행되었으나, 법 개정 전에 범행한 A씨에게는 15년의 재판시효가 적용되었다. 개정법 부칙 3조는 개정법 시행 전에 범한 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에 관한 '종전의 규정'을 적용한다는 취지의 규정을 두고 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