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동구까지 진출
안동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동구까지 진출
  • 기사출고 2007.12.17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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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한 대표 "'기업 동반자' 역할이 로펌 존재이유"
아주의 설립자인 김진한 대표는 로펌 대표로서는 이력이 특이한 변호사다. 스스로 '법조계의 이단아'라고 부를 정도다.

◇김진한 변호사
우선 그가 사법시험에 합격하기까지의 사연이 간단치 않다. 그는 그의 나이 34살 때인 1990년에 치러진 제3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3년 후인 93년 제22기로 사법연수원을 마쳤다. 그의 나이 37세 때로 법조인으로서의 출발은 상대적으로 늦었던 셈이다. 사시 공부를 오래해서가 아니다. 뒤늦게 대학에 진학했고, 사법시험 준비 자체가 늦었다.

국민대 법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한 게 27살 때인 1983년. 고향인 경북 안동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고등학교를 마치고 군대까지 갔다 온 후 뒤늦게 대학입시에 뜻을 두고 노력한 결과다. 26살 때인가 고향 친구 2명과 함께 경북 봉화의 일월산 기슭에서 행정고시에 도전해 1차시험에 합격한 이야기며, 서울에 올라와 신문사 보급소에서 먹고 자며 주경야독(晝耕夜讀)했던 사연 등 그가 대학에 입학하기까지의 어려움은 사시 수험생활에 비할 바가 아니다.



대학 3학년 때 결혼한 그는 87년 대학을 졸업하고, 독일에 유학해 교수가 될 생각으로 서울대 보건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시 응시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대학원에 다니면서 진로를 수정, 결국 법조인이 됐다.

93년 연수원 동기인 정은섭, 전병서 변호사와 함께 서울 역삼동에서 아주종합법률사무소를 시작한 그는 비상한 경영 능력으로 아주를 유라시아 지역에 이름을 떨치는 유명 로펌으로 발전시켜 가고 있다. 전 변호사는 지금 아주를 나와 중앙대 교수로 있다. 김 변호사는 아주를 성공적으로 발전시켜 온 비결을 묻는 질문에 "오직 성실하게 노력했다는 것 외엔 달리 얘기할 게 없다"며, "고객을 한 번 잡으면, 모든 노력을 다해 일해서 그의 만족을 사려 했다"고 대답했다.

아주가 해외시장 개척으로 눈을 돌리게 된 데도 그에게는 간단치 않은 고민이 있었다. 그것은 로펌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였다고 한다. 그는 "2~3년 전부터 로펌을 왜 하는지, 왜 돈을 벌려고 하는지 여러 의문이 들었다"며, "나라와 사회에 기여하는 제대로 된 로펌을 만들어 후배들에게 물려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런 고민을 돌파할 수 있었다"고 해외시장 개척에 나서게 된 개인적인 동기를 털어 놓았다. 그는 이어 "우리 기업이 가는 곳이면 세계 어디든지 따라 나서 '기업의 진정한 동반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라며, "그것이 로펌의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아니냐"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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