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배] "숭례문 복원하며 약속과 달리 화학 안료 섞어 쓴 단청장, 국가에 재시공 비용의 80% 배상하라"
[손배] "숭례문 복원하며 약속과 달리 화학 안료 섞어 쓴 단청장, 국가에 재시공 비용의 80% 배상하라"
  • 기사출고 2022.09.09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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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지법] "전통 재료 사용해 시공할 의무 위반"

2008년 화재로 소실된 숭례문 단청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천연 안료 대신 값싼 화학 안료와 교착제를 섞어 쓴 홍창원 단청장과 제자가 거액의 손해배상금을 물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9부(재판장 이민수 부장판사)는 8월 10일 국가가 "화학 안료와 교착제를 섞어 단청 작업을 하였고, 이후 단청의 균열과 박락이 다수 발생하였다"며 홍 단청장과 제자 한 모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2017가합520326)에서 피고들의 불법행위 책임을 80% 인정, "피고들은 연대하여 9억 4,5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정주교 변호사가 국가를 대리했다.

숭례문이 2008년 2월 방화로 인해 마루부터 지붕의 적심까지 타서 2층 주요 부재의 90% 가량이 소실되자, 문화재청은 숭례문을 복구하기로 하고, 이듬해 12월 공사에 참여할 장인으로 홍 단청장을 선정했다. 홍 단청장은 2012년 8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숭례문 단청 복구공사를 맡아 진행했다. 그는 전통 안료와 아교만을 사용해 단청공사를 시공하기로 문화재청 등과 합의했으나, 단청공사 시공 중 백색 수간분채인 연백이 마감재를 바르면 누렇게 변하는 문제가 발생하자 연백에 색이 잘 나는 화학 안료인 지당을 혼합해 사용했다. 또 2012년 9월 말경 날씨가 서늘해지고 아교가 굳는 문제로 채색에 장시간이 소요되고 채색한 부분이 두꺼워져 탈락되는 현상이 발생하자 아교만으로 계속해 시공할 경우 공사기간이 늘어나고 수개월 내에 단청이 박락될 것으로 예상, 지당과 화학 교착제인 아크릴에멀젼을 혼합한 재료를 사용해 단청공사를 시공했다. 

그러나 단청공사가 마무리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13년 3월경부터 숭례문 곳곳에 단청의 박락, 들뜸 또는 변색 등의 하자가 계속 발생, 부실시공 논란에 휩싸였다. 이에 국가가 홍 단청장 등을 상대로 숭례문 단청 재시공 비용인 11억 8,10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

문화재청은 전통기법에 따른 품셈조사 결과 단청공사의 공사비용으로 화학 안료 및 교착제를 사용하는 표준 품셈에 비하여 약 3억 원이 증가된 돈을 책정하였고, 숭례문 단청공사 하도급계약에도 위와 같이 증가된 공사비가 반영되었다.

재판부는 "숭례문 복구 기본 계획에는 기본 원칙으로 '전통기법과 도구를 사용하여 복구'라고 기재하고, 단청공사 특기시방서에도 '안료 및 아교는 전통방법에 의해 생산된 안료를 사용한다'(제2조 가항)라고 기재하며, 단청공사 하도급계약에는 '재료는 설계도서 및 시방서에 따른다'(제7조 제5항)라고 기재하여, 피고들은 문화재청과 협의하여 결정한 전통 재료인 수간분채 및 아교를 사용하여 단청공사를 시공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하고, "피고들은 수간분채 및 아교에 화학 재료인 지당 및 아크릴에멀젼을 혼합하여 단청공사를 진행함으로써 원고와 협의하였던 방식에 반하여 숭례문 단청을 시공하는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원고는 숭례문을 전통기법대로 복원하기로 한 것이기 때문에 화학 재료를 혼합하여 시공된 단청은 위와 같은 원고의 단청 시공 목적에 반하여 아무런 가치가 없다"며 숭례문 단청의 전면 재시공에 필요한 1,181,880,000원을 원고가 입은 손해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다만, ①숭례문 단청을 전면 재시공하는 범위에는 피고들이 전통 재료인 수간분채와 아교를 사용하여 시공한 것으로 보이는 품셈조사 구간 등이 일부 포함되어 있는 점, ②숭례문 단청의 재시공 필요성은 준공 무렵 발생한 단청 박락을 주요 문제점으로 하여 불거졌는데, 전통 재료로 시공된 것으로 보이는 위 품셈조사 구간에서도 단청의 박락이 발생한 점, ③홍 단청장이 단청 관련 회의나 준비절차에서 화학 재료 사용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였던 점, 원고는 홍 단청장이 전통재료만을 사용하여 단청을 시공한 경험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점, 원고는 빠른 공사 완성을 위해 홍 단청장에게 2012. 12.경까지 단청 시공을 완료할 것을 요구하였고, 홍 단청장은 아교가 굳는 문제로 늘어난 작업시간을 줄이기 위해 아크릴에멀젼을 아교에 혼합하여 사용하였던 점 등을 고려해 피고들의 책임을 80%로 제한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