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타인간 대화 자연스레 들리면 몰래 녹음해도 무죄"
[형사] "타인간 대화 자연스레 들리면 몰래 녹음해도 무죄"
  • 기사출고 2022.07.08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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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지법] "통신비밀보호법상 '공개되지 아니한 대화' 아니야"

누구에게나 들릴 정도의 가청(可聽) 거리에서 이루어진 대화는 제3자가 몰래 녹음하더라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아니라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 성북구에 있는 학원에서 학원생 관리와 경리 등 업무를 담당하던 A(56 · 여)씨는 2018년 11월 27일 오후 8시쯤 이 학원 데스크에서 C씨와 이 학원 운영을 동업하는 B씨와 학원생들이 C씨의 학원 운영에 대한 불만 등을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자신의 휴대전화로 위 대화 내용을 몰래 녹음한 후 2020년 3월 17일경 서울 도봉경찰서에서, C씨가 B씨를 상대로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한 사건을 수사 중인 담당 경찰관에게 위 녹음 파일을 증거로 제출한 혐의(통신비밀보호법 위반)로 기소됐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재판에서 서울북부지법 형사13부(재판장 오권철 부장판사)는 6월 28일 "피고인이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하고, 이를 누설하였다는 점이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2021고합396).

통신비밀보호법 3조 1항은 "누구든지 이 법과 형사소송법 또는 군사법원법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우편물의 검열 · 전기통신의 감청 또는 통신사실확인자료의 제공을 하거나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16조 1항에서는 위 규정을 위반하여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한 자와 위와 같이 알게 된 대화 내용을 공개하거나 누설한 자를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재판부는 "위 규정들의 문언, 내용, 체계와 입법취지 등을 고려하여 보면 대화자들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들리는 경우, 즉 대화자들로부터 가청 거리에 있는 사람이 청취하거나 녹음한 대화는 위 대화자들이 가청 거리에 타인이 있음을 알지 못하였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제1항 본문이 규정한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는바, 일반적으로 가청 거리 내에 사람이 있는 경우, 대화자들로서는 자신들의 대화가 타인에게도 들리기 마련이라는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에서 공연히 이루어진 대화 역시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제1항에서 정한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석함이 타당한바,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에서 공연히 이루어진 대화는 타인이 이를 쉽게 들을 수 있다는 점에 관하여 대화자들의 감수 내지 용인의 의사가 있다고 보아야 하므로 대화자들에게 이러한 대화를 타인에게 공개하지 않겠다거나 비밀로 하겠다는 의사를 인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B 등 대화자들로부터 가청 거리에 있다가 이들의 대화를 휴대전화기로 녹음하였을 뿐 아니라, B 등의 대화는 피고인을 포함하여 그 주변의 다른 이들도 충분히 들을 수 있었고 B는 이러한 사정을 알 수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공소사실 기재 일시 · 장소에서 이루어진 대화는 대화자들로부터 가청 거리에 있는 사람이 청취하거나 녹음한 대화로 봄이 상당하고, 위 대화가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제1항에서 정한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에 해당된다고 보기 어려우며 달리 위 대화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에 해당된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에 따르면, B는 2018. 11. 27. 20:00경 원장실에서 학원생들과 대화하였고, 피고인은 B가 있던 원장실 출입문에서 약 1m 떨어진 데스크에 앉아 있었다. 당시 피고인은 B가 말하는 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었는데, 이는 당시 B의 동업자였던 C의 학원 운영에 대한 불만 등을 욕설을 섞어가며 말한 것이었다. 한편 B는 당시 C와 학원 동업에 관한 분쟁으로 갈등 관계에 있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위 대화가 이루어지는 원장실 밖에서도 대화가 모두 들렸고 그 내용이 학원생들 앞에서 말하기 부적절한 것이라고 판단하여 이를 녹음하였다는 것인데, 피고인이 녹음한 파일에 B와 학원생들 간의 대화 내용이 대부분 녹음된 것에 비추어 보면, 당시 피고인은 물론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 모두 위 대화를 들을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고, "이처럼 피고인은 당시 가청 거리에서 B와 학원생들 간의 대화를 듣고 있었고, B의 목소리 크기, 대화의 주된 내용 및 의도, 원장실 및 데스크의 구조 등의 여러 정황을 고려하면, B와 학원생들은 자신들의 대화를 다른 사람들도 들을 수 있는 거리에 있다는 점을 알고 있어 그 대화 내용을 듣는 것을 용인하고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한 배심원 7명도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을 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