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타임즈 커버스토리] 한국 경제 발전 뒷받침한 'K-Law'의 창업자들(1)
[리걸타임즈 커버스토리] 한국 경제 발전 뒷받침한 'K-Law'의 창업자들(1)
  • 기사출고 2022.07.07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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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만 1,407곳, 개업변호사 절반 이상 로펌서 활동

1958년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김흥한 변호사가 얼마 안 지나 한국 최초의 로펌인 김장리 법률사무소로 발전한 법률사무소를 연 이래 한국 로펌업계가 60년을 넘기며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올 5월 15일 기준 전국에 설립되어 운영 중인 법무법인은 1,407곳. 4월 말 기준 전국의 개업변호사 2만 6,453명 중 절반이 넘는 1만 3,613명이 법무법인 등 로펌에서 활동할 정도로 로펌의 위상과 외연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한국 로펌, 특히 기업법무에 특화한 로펌들은 국내 송사의 해결은 물론 세계 10위권으로 도약한 한국 경제의 발전을 이끈 숨은 공신들이라고 할 수 있으며, 최근 붐을 이루고 있는 벤처, K-스타트업들도 해당 분야에 높은 전문성을 갖춘 크고 작은 로펌들의 손을 거쳐 성공의 토대를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로펌업계의 이러한 발전과 성공이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전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는 한국 변호사들의 탁월한 역량과 노력을 빼놓을 수 없지만, 리걸타임즈가 이번호에 조명하려는 것은 영미식의 로펌 시스템을 들여다가 법률사무소의 조직화 · 전문화 · 대형화를 추구하며 아시아권에선 중국, 일본 등을 능가하는 한국 로펌업계 발전의 토대를 놓은 로펌 창업자들(law firm founders)의 이야기다. 이들 창업자들의 과감한 도전이 있었기에 영미 로펌들에게도 크게 밀리지 않는 한국 로펌업계의 토대가 구축될 수 있었고, 한국 경제, 한국기업의 발전을 뒷받침하는 'K-Law'의 굳건한 기반이 형성되었다.

60년 전 1세대 이어 부티크 러시

홀로 또는 동료 파트너와 함께 법률사무소를 열어 어소시에이트(associate) 변호사를 채용해 가며 로펌을 발전시킨 그들은 탁월한 프런티어 정신의 소유자들로, 요즘으로 치면 변호사업계의 벤처, 스타트업 주자들이었던 셈이다.

한국 로펌 초기의 1세대 창업자들에 이어 또 기존 로펌에서 경험을 쌓은 2세대 주자들의 활발한 차세대 로펌 설립이 이어졌고, 얼마 전부터는 '로펌 붐'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특정 업무분야에 특화한 부티크 펌들이 경쟁적으로 문을 열어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한국 로펌업계에 창업 바람이 이어지고 있다.

◇'국제변호사 1호' 김흥한 변호사=지금은 고인(故人)이 된 '한국 1호 로펌' 김장리의 설립자, 김흥한 변호사는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조선변시 3회 출신으로 6.25 와중인 1951년 서울지법 판사로 임용되었다. 그러나 나중에 장인이 된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정일형 박사의 주선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라 조지워싱턴대 로스쿨에서 비교법학석사(MCL), 법학석사(LLM) 학위를 받고 도미 약 5년 만인 1958년 5월 귀국해 그해 9월 광화문에서 한국 최초의 여성변호사이자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창설자이기도 한 이태영 변호사와 함께 '이&김'이란 영어식 간판을 내걸고 법률사무소를 열었는데, 이것이 한국 최초의 로펌 '김장리'의 시작이다.

◇한국 최초의 로펌, 김장리를 설립한 고(故) 김흥한 변호사
◇한국 최초의 로펌, 김장리를 설립한 고(故) 김흥한 변호사

김흥한 변호사에 따르면, 박사학위 취득에 필요한 학점까지 이수했으나 박사학위 취득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신청 자체가 봉쇄되었고, 미국변호사시험을 보아 미국변호사가 되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고 한다.

걸프오일이 첫 고객

첫 고객은 글로벌 석유회사인 미국의 걸프오일. 5.16 이후 군사정부가 경제개방정책을 취하면서 외국인들의 국내 투자가 쏟아져 들어왔고, 유창한 영어실력에 미국법과 국제법에 능통한 김 변호사 사무실이 물 만난 물고기처럼 많은 사건을 도맡아 처리했다. 김 변호사는 "상담을 해주고도 시간으로 환산해 상담료를 청구할 시간이 없어 차일피일 미루다가 끝내 돈을 받지 못한 경우도 허다했다"고 회상한 적이 있다. 김흥한 변호사는 대법관과 검찰총장을 지낸 김익진씨의 아들로, 서울법대 학장을 역임한 한국 민법학계의 태두(泰斗) 김증한 교수가 그의 친형이다.

◇'김신유'를 세운 김진억 변호사=김흥한 변호사에 이어 두 번째로 국제변호사 사무실을 연 사람은 4년반 동안 서울민 · 형사지법 판사를 역임한 김진억 변호사다. 사법연수원의 전신인 사법대학원 교수요원에 선발되어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고 미국으로 건너가 미시간 로스쿨에서 LLM 학위를 받고 귀국한 김 변호사는 사법대학원에서 6개월쯤 교수로 재직하다가 사법대학원의 소속이 서울대에서 대법원으로 바뀌게 되자 1967년 10월 교수직을 사퇴하고 국제변호사 일을 시작했다.

◇김신유의 설립자인 김진억 변호사
◇김신유의 설립자인 김진억 변호사

몇 년 후 김앤장이 문을 열어 본격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때까지 김장리와 쌍벽을 이루며 국내 로펌업계를 선도한 '김신유'가 출범한 것으로, 김진억 변호사는 "이해관계충돌(Conflict of Interests) 때문에 김흥한 변호사가 맡지 못하는 것을 내가 하고, 내가 못하는 것을 김 변호사가 하는 식으로 바쁘게 업무를 수행했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김흥한 변호사와 사건 양분

첫 고객이 된 '뱅크 오브 아메리카(Bank of America, BOA)'도 김장리가 이미 체이스맨해튼은행을 대리하고 있어 김장리가 BOA까지 맡을 경우 두 은행 사이에 이해관계가 충돌하게 돼 김신유의 차지가 되었다. 유럽계 회사들을 고객 기업으로 많이 확보하고 있었던 점 등이 강점으로 꼽혔던 김신유는 2006년 1월 법무법인 화우와 합병했다.

◇'IP 전문' 중앙국제 이병호 변호사=이병호 변호사는 1968년 김창규 변리사와 함께 IP 전문의 중앙국제법률사무소를 연 주인공이다. 고등고시 사법과 6회에 합격해 판사로 임용된 그는 1962년 미 남감리교대(SMU) 유학에서 돌아와 IP 전문을 지향했다. 당시 정부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과 맞물려 외국의 기술과 자본이 유입되면서 특허 · 상표의 출원, 라이선스 계약, 특허 관련 소송 등 수많은 사건을 처리하며 한때 직원이 350여명에 이를 만큼 전성기를 구가했다.

수출 드라이브 정책과 맞물려 특수

요즘으로 치면 일종의 IP 전문 법률사무소(부티크)로 시작한 셈인데, 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특허 등 지식재산권 분야를 기반으로 국내 로펌업계를 주름잡은 굴지의 법률회사였다. 그러나 많은 변호사들이 떠나면서 중소 로펌 규모로 위상이 축소된 가운데 법무법인 센트럴로 IP 분야의 전문성이 이어지고 있다. 주요 로펌과 특허법률사무소에서 활약하고 있는 특허 전문 변호사와 내로라하는 변리사의 상당수가 한때 중앙국제에 몸담은 적이 있다는 사실이 중앙국제의 화려했던 과거를 말해준다.

◇'한국 로펌의 프런티어' 김영무 변호사=전 세계 로펌 중 매출기준 50위권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김앤장은 1973년 문을 열었다. 한국변호사이자 하버드 로스쿨 JD 출신으로 한국인 최초의 미국변호사이기도 한 김영무 변호사가 주춧돌을 놓고, 그해 말 김 변호사의 서울법대 동기이자 고등고시 사법과 16회에 최연소 합격한 장수길 변호사가 판사직을 사임하고 합류하면서 '김앤장'이란 이름이 만들어졌다.

◇1973년 김앤장을 설립한 김영무 변호사
◇1973년 김앤장을 설립한 김영무 변호사

설립 순서로 따지면 김장리, 김신유에 이어 세 번째로 출범한 후발주자이지만, 김앤장은 80년 전후 씨티은행을 시작으로 체이스맨해튼, BOA, 도쿄은행 등 외국계 은행에 대한 자문을 맡으며 업계 1위로 올라섰고, 전문화 · 대형화로 압축되는 한국 로펌의 성장전략을 선도하며 글로벌 로펌으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창의적인 법률서비스 강조

김영무 변호사는 후배들에게 높은 전문성과 최고의 서비스를 주문하고, 창의적인 법률서비스를 강조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김 변호사는 1964년에 치러진 사법시험 2회에 차석합격했으나 판, 검사 임관 대신 사법대학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을 정도로 투철한 프런티어, 벤처정신의 소유자로, 한국 로펌업계의 초기 주자 대부분이 얼마간 판사 근무를 거쳐 국제법무, 기업법무를 시작한 재조 출신 변호사들인 것과도 차이가 없지 않다.

50년의 역사가 쌓인 김앤장은 지금도 지속적인 혁신을 통한 최고의 법률서비스 제공을 가장 큰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

◇'남산합동' 설립 임동진 변호사=임동진 변호사는 1980년 문을 연 법무법인 남산을 설립했다. 남산은 대형화보다는 양보다 질을 강조하는 강소 로펌 전략을 채택, 설립 후 40년이 더 흘렀음에도 변호사 20명 남짓한 중소 로펌 규모이지만, 김장리를 거쳐 법무법인 충정을 설립한 황주명 변호사, 세종의 설립자인 신영무 변호사, 김평우 전 대한변협 회장 등이 한때 남산에 몸담았을 만큼 설립 초기 주목을 받았던 로펌이다.

◇법무법인 남산을 설립한 임동진 변호사
◇법무법인 남산을 설립한 임동진 변호사

2007년 초 대한변협 회장에 출마해 변호사들 사이에 새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던 임동진 변호사는 후배들에게 모든 권한을 이양하고 현재는 법무법인 남산의 고문변호사로 재직 중이다.

"보통법", "형평법" 원서 번역

영어, 독일어 등 외국어에 능통한 임 변호사는 홈즈 전 대법관이 쓴 "보통법(The Common Law)"과 런던 정경대 교수 새라 워딩턴(Sarah Worthington)이 쓴 "형평법(Equity)" 등 외국 법서 여러 권을 번역, 출간한 것으로 유명하다.

리걸타임즈 김진원 기자(jwkim@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