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정년 그대로 임금 깎는 임금피크제, 합리성 없으면 무효"
[노동] "정년 그대로 임금 깎는 임금피크제, 합리성 없으면 무효"
  • 기사출고 2022.05.31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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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전자기술연구원 성과연급제 무효 확정

한국전자기술연구원이 정년을 그대로 유지한 채 55세 이상 정규직을 상대로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를 시행했다가 합리적 이유가 없다는 이유로 무효 판결을 받았다. 많은 기업에서 일정 연령 이상 직원의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가 시행되고 있는 가운데 나온 정년 유지 임금피크제에 관한 대법원의 첫 판결이다. 

대법원 제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5월 26일 1991년 한국전자기술연구원(옛 전자부품연구원)에 입사해 2014년 9월 명예퇴직한 A씨가 "임금피크제는 무효이니 임금피크제를 적용하지 않은 취업규칙에 따른 임금과의 차액을 지급하라"며 연구원을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2017다292343)에서 이같이 판시, 연구원의 상고를 기각하고, "피고는 원고에게 1억 3,7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법무법인 산경이 1심부터 A씨를 대리했다.

한국전자기술연구원은 노사합의를 통해 2009년 1월부터 기존의 정년 61세를 그대로 유지하며 만 55세 이상 정규직 직원의 임금을 조정하는 임금피크제(성과연급제)를 시행했다. 성과연급제는 정년 61세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55세 이상의 근로자를 대상으로 임금을 대폭 삭감하는 내용인데, 경영혁신과 경영효율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되었다. 성과연급제 당시 54세였던 A씨는 성과 평가 결과 최고 등급일 경우 월 급여가 약 93만원, 최저 등급일 경우에는 월 급여가 약 283만원 감소하게 되자 퇴직 후 "임금피크제는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에 위반되어 무효"라는 등의 주장을 하며 소송을 냈다.

사건의 쟁점은 전자기술연구원의 임금피크제가 고령자고용법 4조의4 1항 2호에서 금지하고 있는 연령을 이유로 한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에 해당하는지 여부.

대법원은 먼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근로자 또는 근로자가 되려는 자를 차별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한 고령자고용법 제4조의4 제1항은 강행규정에 해당한다"며 "따라서 단체협약, 취업규칙 또는 근로계약에서 이에 반하는 내용을 정한 조항은 무효"라고 밝혔다. 이어"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고령자고용법 제4조의4 제1항에서 말하는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경우란 연령에 따라 근로자를 다르게 처우할 필요성이 인정되지 아니하거나 달리 처우하는 경우에도 그 방법 · 정도 등이 적정하지 아니한 경우를 말한다"며 "사업주가 근로자의 정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임금을 정년 전까지 일정 기간 삭감하는 형태의 이른바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는 경우 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에 합리적인 이유가 없어 그 조치가 무효인지 여부는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 임금 삭감에 대한 대상 조치의 도입 여부 및 그 적정성, 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재원이 임금피크제 도입의 본래 목적을 위하여 사용되었는지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 사건 성과연급제는 피고의 인건비 부담을 완화하고 실적 달성률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된 것으로 보이고, 피고의 주장에 따르더라도 51세 이상 55세 미만 정규직 직원들의 수주 목표 대비 실적 달성률이 55세 이상 정규직 직원들에 비하여 떨어진다는 것이어서, 위와 같은 목적을 55세 이상 정규직 직원들만을 대상으로 한 임금 삭감 조치를 정당화할 만한 사유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이 사건 성과연급제는 연령을 이유로 임금 분야에서 원고를 차별하는 것으로 그 차별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같은 취지의 원심 판단은 정당하고, 연령차별의 합리적인 이유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이 인용한 원심 판결에 따르면, 원고의 경우 수석 20 역량 등급이었다가 만 55세가 된 다음해인 2011년 4월부터 성과연급제를 적용받게 되면서 역량등급만을 기준으로 보면 약 50 등급이 일시에 하락한 것과 같은 결과가 되었다. 또 성과연급제 시행에 따라 피고의 55세 이상 근로자의 업무 내용이 변경되지는 않았으며, 연구직의 경우 임금피크제 시행에 따라 피고가 실제로 성과연급제 대상 근로자의 목표 수준을 낮게 설정하고 그에 따라 평가를 하였는지에 관하여 이를 확인할 만한 자료가 없다. 원고와 같은 행정직도 임금피크제 시행에 따라 구체적으로 목표 수준이 어떻게 낮게 설정되어 업무량이 감소한다는 것인지를 알 수 있는 자료가 없다.

대법원은 "성과연급제를 전후하여 원고에게 부여된 목표 수준이나 업무의 내용에 차이가 있었다고 보이지 아니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성과연급제로 인하여 원고는 임금이 일시에 대폭 하락하는 불이익을 입었고, 그 불이익에 대한 대상조치가 강구되지 않았다"며 "피고가 대상조치라고 주장하는 명예퇴직제도는 근로자의 조기 퇴직을 장려하는 것으로서 근로를 계속하는 근로자에 대하여는 불이익을 보전하는 대상조치로 볼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정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일정 연령 이상 근로자의 임금을 정년 전까지 일정 기간 삭감하는 형태의 임금피크제 효력에 관한 판단기준을 최초로 제시한 판결"이라며 "현재 다른 기업에서 시행 중인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나 하급심에 진행 중인 사건 관련 개별 기업들이 시행하는 임금피크제의 효력의 인정 여부는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정당성과 필요성, 실질적 임금 삭감의 폭이나 기간, 임금 삭감에 준하는 업무량 또는 업무강도의 저감이 있었는지 등 대상조치의 적정성(임금삭감에 준하는 업무량 또는 업무강도의 저감이 있었는지), 감액된 재원이 도입 목적을 위해 사용되었는지 등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