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운행 테스트 위해 버스 운전하다가 사고 당한 견습기사도 근로자"
[노동] "운행 테스트 위해 버스 운전하다가 사고 당한 견습기사도 근로자"
  • 기사출고 2022.05.10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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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시용 근로계약 성립"

정식 근로계약을 맺기 전 운행 테스트를 위해 버스 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당한 버스회사 견습기사도 근로자로 보아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4월 14일 A버스회사가 "견습기사 B씨에 대한 요양승인처분을 취소하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2019두55859)에서 이같이 판시, A사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확정했다. 

B씨는 A사 견습기사로서 마지막 운행 테스트를 위해 감독관의 지시를 받으며 버스를 운행하던 2015년 9월 25일 오전 10시 40분쯤 급커브 구간에서 버스가 추락하는 사고를 당해 '제2요추 방출성 골절상'을 입었다. 이에 B씨가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 근로복지공단이 B씨에게 요양승인처분을 내리자 A사가 B씨는 자신의 근로자가 아니라며 소송을 냈다.

쟁점은 A사와 B씨 사이에 근로계약관계가 성립하여 B씨가 A사의 근로자로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른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는지 여부.

1심과 항소심 재판부는 "B가 사고 당시 근로자였음을 전제로 한 요양승인처분은 적법하다"며 A사의 청구를 기각하자 A사가 상고했다.

대법원도 "원고와 B 사이에 시용 근로계약이 성립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B씨를 근로자로 인정했다.

대법원은 "근로계약은 근로자가 사용자에게 종속적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하고 사용자는 이에 대하여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체결된 계약으로서, 제공하는 근로 내용에 특별한 제한이 없고 명시적 약정이 있어야만 성립하는 것은 아니며 묵시적 약정으로 성립할 수도 있다"고 전제하고, "시용이란 근로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해당 근로자의 직업적 능력, 자질, 인품, 성실성 등 업무적격성을 관찰 · 판단하고 평가하기 위해 일정기간 시험적으로 고용하는 것을 말하며(대법원 2022. 2. 17. 선고 2021다218083 판결 등 참조), 시용기간 중에 있는 근로자의 경우에도 사용자의 해약권이 유보되어 있다는 사정만 다를 뿐 그 기간 중에 확정적 근로관계는 존재한다(대법원 2004. 7. 8. 선고 2004도2045 판결 등 참조)"고 밝혔다.

대법원은 또 "업무적격성 평가와 해약권 유보라는 시용의 목적에 따라 시용기간 중 제공된 근로 내용이 정규 근로자의 근로 내용과 차이가 있는 경우에도 종속적 관계에서 사용자를 위해 근로가 제공된 이상 시용 근로계약은 성립한다고 보아야 하고, 제공된 근로 내용이 업무 수행에 필요한 교육 · 훈련의 성격을 겸하고 있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라며 "시용기간 중의 임금 등 근로조건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사용자가 자신의 의사대로 정할 여지가 있으므로 종속적 관계에서 사용자를 위해 근로가 제공된 이상, 시용기간 중의 임금 등을 정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시용 근로계약의 성립을 쉽게 부정해서는 안 되고, 단순히 근로계약 체결 과정 중에 있다고 볼 수도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이 인용한 원심 판결에 따르면, B는 2015년 8월 중순 지인의 소개로 원고에 차량 종업원으로 입사하기 위해 이력서, 운전면허증, 운전경력증명서 등을 제출하였고, 사고 당시 이미 서류심사를 통과한 다음 면접을 마친 상태였다. 원고 회사에선 서류심사에 통과한 차량종업원 지원자가 운행 테스트를 받기 전에 통상 1개월 정도 시내버스 노선을 숙지하고 운행을 연습하는 기간을 거치도록 하는데, B도 이와 같이 하기로 원고와 약정했다. 이에 따라 B는 본기사(각 차량마다 정해진 고정기사)의 지시를 받으며 약 2주 동안 84∼86개 정도의 노선에 대해 숙지하고, 이후 약 3주 동안 본기사를 태우고 다른 근로자의 근로 제공 방식과 동일하게 승객이 탑승한 상태에서 노선을 따라 운행 연습을 했다. 이 기간 동안 B는 원고 소속 본기사로부터 '내일은 몇 번 버스를 타고 몇 시까지 나오라'는 지시를 받아, 대략 05:30경까지 원고의 사무실에 출근하여 본기사의 지시에 따라 정해진 차량을 타고 노선 숙지와 운행 연습을 했으며, 원고가 지정한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였고 그날의 노선 운행을 마치고 퇴근했다. B는 견습을 시작한 지 한 달쯤 지난 2015년 9월 25일 10:40경 운행 테스트를 위해 원고 소유 버스를 운전하던 중 사고를 당하였는데, 당시에도 본기사로부터 운전업무에 대한 지시를 받았다. B는 원고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원고로부터 임금을 지급받은 사실은 없다.

대법원은 "이러한 사실을 위에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고와 B 사이에 2015. 8. 중순 시용 근로계약이 성립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B가 노선 숙지만 하고 직접 운전하지 않은 경우도 있으나, 이는 원고의 이익을 위한 교육 · 훈련이거나 적어도 피교육자이자 근로자라는 지위를 겸한 채 이루어진 것으로서 그러한 지위에 따라 본기사의 근로 내용과 차이가 생긴 것"이라며 "이러한 교육 · 훈련이 종속적 관계에서 이루어지고 유보된 해약권의 행사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수단이 되는 이상, 시용기간 중에 원고를 위하여 근로를 제공한 것으로 볼 수 있고, B가 원고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원고로부터 임금을 지급받지 않았으나, 이것은 모두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사용자가 시용기간 중의 근로자에 대하여 자신의 의사대로 정할 여지가 큰 사항"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사정만을 이유로 시용 근로계약의 성립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