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범이 피해자로부터 받은 주민등록증 사진 등을 이용해 피해자 명의로 휴대폰을 개설하고, 공인인증서를 발급받아 저축은행에서 비대면으로 500만원을 대출받았다. 법원은 대출은 무효라며 피해자는 빚을 갚을 의무가 없다고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법 김상근 판사는 최근 보이스피싱 피해자 A(46 · 여)씨가 OK저축은행을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확인소송(2021가단5084719)에서 이같이 판시, "원고와 피고 사이의 대출금 500만원과 이에 대한 이자 및 지연손해금 등의 채무는 존재하지 아니함을 확인한다"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원, 피고가 항소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A씨는 2020년 11월 27일 오전 11시 59분쯤 본인이 사용하는 휴대폰으로 국민은행 직원을 가장한 보이스피싱 범인으로부터 '코로나로 전국민이 힘든 시기라 서민대출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고객님의 대출 가능 여부를 알아봐 드리겠습니다'는 서민대출 안내 명목의 전화를 받고, 서민대출 가능 여부와 대출한도를 알아보는 데 필요하다는 거짓말에 속아 자신의 주민등록증 사진, 농협 신용카드 앞면 사진을 전송해주었다. 보이스피싱 범인은 A씨로부터 받은 신분증 사진 등의 자료를 활용해 KT 모바일앱을 이용하여 A씨 명의의 휴대폰을 신규로 개설하고, 이를 이용하여 코스콤으로부터 A씨 명의의 공인인증서를 발급받은 다음, 비대면 전자금융거래 방식으로 OK저축은행과 삼호저축은행에 A씨 명의의 예금거래 계좌를 개설해 12월 4일 오후 8시 43분쯤 OK저축은행에 A씨 명의로 비대면 전자금융거래 방식으로 500만원의 온라인 신용대출을 신청했다. 10여분 지난 같은 날 오후 8시 57분쯤 A씨 명의의 공인인증서에 기초한 전자서명이 이루어졌다.
OK저축은행은 주민등록증을 촬영한 사진을 제공받았고, 휴대폰 본인인증을 통한 본인확인을 거쳐 A씨 명의의 비대면 전자금융거래 대출신청을 승인한 후, 12월 4일 오후 9시 1분쯤 A씨 명의의 삼호저축은행 계좌로 대출금 500만원을 송금했다. 그러나 대출금은 보이스피싱 범인에 의하여 같은 날 오후 9시 14분쯤 1회분 이자 용도의 13만원을 남겨두고 487만원이 다른 사람 명의의 미래에셋대우 계좌로 송금되었다가 곧바로 인출됐다.
A씨는 2021년 1월 22일경 자동차할부금을 납부하는 과정에서 위와 같이 자신 명의로 대출이 이루어진 사실을 알고, 즉시 경찰서에 피해사실을 신고하고, "대출은 무효"라며 OK저축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OK저축은행은 재판에서 "주민등록증 사본, 공인인증서와 휴대폰 본인인증을 이용하여 본인 여부를 확인하는 등 비대면 전자금융거래시 금융회사가 해야 할 비대면 본인확인의무를 다 이행하였다"며 "따라서 대출약정은 전자문서 및 전자거래 기본법(전자문서법) 7조 2항 2호에 따라 '수신된 전자문서가 작성자 또는 그 대리인의 의사에 기한 것이라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는 자에 의하여 송신된 경우'에 해당하고, 이 경우 위 전자문서에 의한 거래에 따른 법률효과는 그 명의인에게 유효하게 귀속된다"고 주장했다. 전자문서법 7조 2항 2호는 "전자문서의 수신자는 '수신된 전자문서가 작성자 또는 그 대리인과의 관계에 의하여 수신자가 그것이 작성자 또는 그 대리인의 의사에 기한 것이라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는 자에 의하여 송신된 경우'에는 전자문서에 포함된 의사표시를 작성자의 것으로 보아 행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그러나 "구 전자서명법 제2조 제3호에 의하면, 공인전자서명은 '전자서명생성정보가 가입자에게 유일하게 속할 것(가목), 서명 당시 가입자가 전자서명생성정보를 지배 · 관리하고 있을 것(나목)의 요건을 갖추고 공인인증서에 기초한 전자서명을 한 것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이에 의하면 구 전자서명법상의 공인전자서명은 기본적으로 가입 명의자의 의사에 기하여 정상적으로 발급된 공인인증서 등의 전자서명생성정보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것을 의미하고, 권한 없는 제3자가 가입 명의자 몰래 명의를 도용하여 부정하게 발급받은 공인인증서 등의 전자서명생성정보에 기초하여 전자서명이 이루어진 것은 구 전자서명법에 따른 공인전자서명에 포함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비대면 전자금융방식으로 이루어진 이 사건 대출약정과 관련하여 피고가 수신한 전자문서가 작성자 또는 그 대리인의 의사에 기한 것이라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는 자에 의하여 송신된 경우에 해당한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밝혔다. 전자문서법 7조 2항 2호에 따라 대출약정에 따른 효과는 그 명의자인 원고에게 귀속된다는 피고의 주장은 이유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피고가 주장하는 본인확인절차 중 휴대폰 인증과 공인인증서를 통한 확인은 필수적인 본인확인절차가 아니고 은행연합회와 금융투자협회가 제시한 비대면 전자금융거래가 이루어지는 경우의 '비대면 실명확인 관련 구체적 적용방안'의 권고사항 중 '타 기관 확인결과 활용’에 해당할 뿐이므로, 이러한 절차를 거쳤다고 하여 비대면 실명확인절차를 제대로 거쳤다고 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OK저축은행은 또 "대출약정이 유효하게 성립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원고는 성명불상자에게 원고 본인 명의를 이용하도록 기본대리권을 수여하였고, 피고로서는 원고가 대출약정을 체결하는 것으로 믿을 수밖에 없었으므로 민법 126조의 표현대리 법리를 유추적용하여 성명불상자의 행위에 대하여 원고는 표현대리 책임을 부담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서도, "피고가 비대면 대출약정이 원고 본인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으로 믿었다고 하더라고, 이는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가 비대면 전자금융거래에 있어서 이행하여야 할 실명확인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아니한 것에 따른 결과일 뿐이므로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할 수 없고, 더욱이 대출은 피고와 전혀 금융거래가 없던 원고 명의로 금융기관의 주간 영업시간이 종료된 이후인 야간에 비대면 전자금융거래 방식으로 대출신청 및 약정이 이루어진 것인 점, 대출금도 피고에게 개설된 금융계좌가 아니라 같은 날 개설된 다른 금융기관 계좌로 곧바로 이체가 되는 점, 대출금이 입금되는 금융기관의 명칭이 '삼호저축은행'임에도 대출약정서에는 그 명칭이 '상호저축은행'으로 잘못 기재되어 있는 점 등을 인정할 수 있는바, 이러한 점에 비추어도 비대면 대출약정이 원고 본인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으로 믿은 데에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결국 대출약정은 원고에 대하여 효력이 없고, 피고가 대출약정이 유효하다고 주장하며 원고 채무의 존부를 다투는 이상 원고는 대출약정에 따른 채무의 부존재확인을 구할 이익이 있다"고 판시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