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상사와 다툰 직후 뇌출혈로 숨진 공사장 안전유도원…산재
[노동] 상사와 다툰 직후 뇌출혈로 숨진 공사장 안전유도원…산재
  • 기사출고 2022.01.06 18:1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행법] "스트레스로 갑자기 혈압 상승 가능성"

근무 도중 상사와 다툰 직후 뇌출혈로 쓰러져 숨진 공사현장 안전유도원에게 업무상 재해가 인정됐다. 

서울행정법원 제8부(재판장 이종환 부장판사)는 11월 2일 상사와 다툰 직후 뇌출혈로 쓰러져 숨진 안전유도원 A(여 · 사망 당시 46세)씨의 남편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2020구합5379)에서 "유족급여와 장의비 부지급처분을 취소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황순일 변호사가 원고를 대리했다.

A씨는, B사가 다른 회사로부터 도급받아 시공하는 경기도에 있는 공사현장에서 2019년 6월 13일부터 안전유도원으로 근무하며 트레일러 등 대형 자재차량이 안전하게 현장에 진입 · 진출하도록 유도하는 업무 등을 담당했다. A씨는 상위 관리직급인 B사 공사팀장의 지시를 받아 근무하였는데, 2월 13일 오후 1시 30분쯤 이 공사팀장으로부터 자재차량이 자재를 하역할 수 있도록 공사현장으로 유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A씨가 팀장에게 '공사현장에 하역장소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아 하역작업이 어렵다'고 보고하자, 팀장은 바리케이트 위치를 이동하여 하역장소를 확보하려고 했다. 그러나 종전에 원청 측으로부터 '원청의 사전 동의 없이 바리케이트 위치를 이동해서는 안 된다. 만약 바리케이트를 무단으로 이동시킬 경우 공사현장에서 안전유도원으로 근무할 수 있는 자격을 박탈시킬 수 있다'는 안전교육과 경고를 받은 바 있었던 A씨는 원청의 사전 동의 없이 바리케이트를 이동해서는 안 된다고 하며 팀장과 다투었다. 

A씨와 팀장은 다툼 끝에 일단 위 자재차량의 하역작업을 유도하지 않기로 하였고, A씨는 현장에 들어온 자재차량이 다시 공사현장 입구로 회차하도록 유도했다. A씨는 그 직후인 오후 2시 30분쯤 동료에게 가서 "언니 나 거부권 썼다"고 말하며 팀장과 다툰 일을 이야기하던 도중 갑자기 어지럽다고 말하며 땅에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A씨는 곧바로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몇 시간 후 숨졌다. A씨의 사인은 뇌지주막하 출혈. A씨의 남편은 업무상 재해라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으나 거부되자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A의 업무내용과 전반적인 업무환경, 특히 A가 사망 직전 팀장과 심한 갈등상황을 겪었던 것이 A의 신체적인 소인과 겹쳐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뇌지주막하 출혈을 발생하게 하였다고 추단할 수 있으므로, A는 업무상 사유로 인하여 사망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A는 2019년 6월경부터 2020년 2월 사망할 때까지 B사에서 1개월 단위로 근로기간을 연장하는 방식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하면서 단기계약직으로 근무하였고, 상위 관리직급인 B사 공사팀장으로부터 업무상 지시를 받아 왔다"고 지적하고, "이러한 A의 고용특성에 비추어 A는 팀장의 업무상 지시를 거부하기가 적잖이 어려운 입장이었을 것임에도, 사망 직전에 팀장과 바리케이트의 이동 문제로 이견을 표출하며 공개적으로 다투었고, A는 팀장의 행동을 제지하기 위해 제3자까지 불러 오는 등 외부에 드러난 다툼의 정도도 일시적인 충돌 정도로 치부할 상황은 아니었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A는 이로 인하여 흥분과 불안 등이 교차하는 심리상태를 겪었을 것이고 순간적으로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며 "A가 팀장과의 다툼이 끝나고 거의 곧바로 쓰러졌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한 점 등 다툼과 사망 사이의 시간적 근접성, 다툼의 정도 등에 비추어 보면, A와 팀장 사이의 업무상 다툼은 A의 갑작스러운 사망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추단된다"고 밝혔다. 의학적으로 스트레스는 교감신경계를 항진시켜 심장과 혈관에 부담을 가중키시고, 뇌동맥류 파열과 그로 인한 뇌지주막하 출혈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재판부는 "A가 사망 무렵 혈압 수치가 다소 높은 상태였으나 이것만으로 뇌출혈 등을 일으켜 사망에 이르게 할 수준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고, A는 사망 직전 업무상의 문제로 상급자인 팀장과 공개적으로 이견을 표출하며 다투었고, A의 계약직 신분 등에 비추어 보면 A가 그 다툼으로 인해 상당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 보이는 점, A는 한겨울 동안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실외에서 근무하는 과정에서 온도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혈압이 상승하였을 가능성도 높은 점 등에 비추어 보면 A는 업무환경과 사망 직전의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하여 갑자기 혈압이 상승하면서 뇌동맥류가 파열되어 지주막하출혈이 발생하였을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