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배] "공인 아닌데 강제로 포토라인 세워…국가가 배상해야"
[손배] "공인 아닌데 강제로 포토라인 세워…국가가 배상해야"
  • 기사출고 2021.12.21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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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명예 · 초상권 침해"

검찰이 공인이 아닌 일반인에게 영장실질심사를 위한 구인영장을 집행하며 강제로 포토라인에 세웠다면 국가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검찰이 구속 피의자에 대한 보호의무를 위반하여 명예와 초상권을 침해했다는 취지다.

대법원 제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7월 23일 사업가 A씨가 "검찰이 강제로 포토라인에 세워 초상권을 침해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의 상고심(2021다265119)에서 이같이 판시, 국가의 상고를 기각하고, "국가가 A씨에게 위자료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A씨는 2016년 8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와 횡령 등의 혐의로 구인을 위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도주한 뒤, 언론사 기자를 만나 자신과 한 부장검사와의 유착관계를 제보하며 검찰이 이 부장검사의 비위를 은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A씨와 이 부장검사의 유착관계에 관한 기사는 같은 해 9월 5일 최초로 보도됐다.

A씨는 9월 5일 원주에서 검찰수사관 2명에 체포되어 서울서부지법으로 호송됐다. A씨는 호송차량 안에서 수사관들로부터 법원에 도착하면 포토라인에 서야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이를 거부하는 의사를 표시하는 한편 얼굴과 수갑을 가릴 수 있는 물품을 달라고 요청했으나 이를 제공받지 못했다. A씨를 태운 호송차량이 서울서부지법에 도착하여 정문 앞에서 정차하였고, A씨는 양손에 채워진 수갑을 자신의 가방에 소지하고 있던 흰 수건으로 가리고 양팔을 수사관들에게 붙잡힌 채 하차했다. A씨는 법정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얼굴이 노출된 채로 호송 차량에서 내리는 모습과 수갑을 흰 수건으로 가리고 서서 기자들의 취재에 응하는 모습 등이 촬영됐다. 그 중 A씨가 하차하는 장면이 촬영된 사진 등은 A씨의 얼굴 윤곽선이 잘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비식별화 처리가 되어 보도되었으나, A씨가 인터뷰에 응하고 건물로 들어가는 장면의 사진들 중 일부는 비록 모자이크 처리가 되기는 했으나 A씨의 얼굴 윤곽과 이목구비가 대략적으로 드러나 A씨를 어느 정도 식별할 수 있는 상태로 보도됐다. 이에 A씨가 초상권이 침해됐다며 국가, 자신을 수사한 주임검사와 부장검사, 체포 · 호송한 검찰수사관 2명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원고가 초상의 촬영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 검찰수사관들에게 명백하게 인식되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A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원고는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사업가로서 어떠한 의미에서도 '공인' 또는 '공적 인물'이라고 볼 수 없고,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 제17조 제2항에 열거된 공적 인물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것도 분명하다"며 "나아가 특정강력범죄나 성폭력범죄를 저질러 재범 방지 및 범죄예방을 위해 신상을 공개할 필요가 있는 경우도 아니고, 이미 이 사건 구속영장이 집행되어 공개수배 및 검거를 위해 신상을 공개할 필요가 있는 경우도 아니어서, 신원공개가 허용되는 어떠한 예외사유에도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원고의 신원 및 초상 공개를 정당화할 사유가 없으므로, 원고는 사진 및 동영상 촬영으로 위법하게 초상권을 침해당한 것"이라며 "피고 대한민국 소속 공무원들은 구속된 피의자인 원고에 대한 보호의무를 위반하여 위법한 일련의 작위 및 부작위를 통해 원고의 명예와 초상권을 침해하였다고 인정되므로, 피고 대한민국은 원고에게 그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원고에 대한 구속영장이 집행되고 언론사 기자들에 의한 촬영 및 녹화 등으로 초상권이 침해되기에 이른 경위, 침해의 정도, 원고의 직업, 사회적 지위 등 변론에 나타난 제반사정들을 참작해 원고의 초상권 침해로 인한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를 1,000만원으로 정했다.

두 명의 검사와 수사관 2명에 대한 청구는 기각했다. 재판부는 "검찰수사관들이 차폐의무를 다하지 아니한 데 중과실이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A씨에 대한 구속영장 집행 당시 시행되고 있던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은 사건관계인을 공개하는 경우 원칙적으로 익명으로 할 것(16조), 수사과정에서 사건관계인에 대한 촬영을 원칙적으로 불허하고, 언론의 접촉을 유도하지 않을 것(22조) 등을 정하고 있었다. 이후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이 2019. 10. 30. 제정되어 2019. 12. 1.부터 시행됨에 따라 공보준칙은 2019. 12. 1.자로 폐지되었으나, 공보준칙의 주요 내용은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에 포함되어 있다.

이에 국가가 상고했으나, 대법원도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대법원은 "원심은, 피의자인 원고가 자신에 대하여 피의자 심문구인용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도주하였다가 체포되어 심문을 위해 인치장소인 법원에 인치되는 과정에서 법원 건물 현관에서 대기 중이던 언론사 기자들의 촬영 등에 얼굴이 노출된 사실, 그에 앞서 원고가 체포된 직후 관할 검찰청 차장검사가 다수의 언론사 기자들에게 그 체포사실을 미리 알려준 사실, 원고는 호송차량 안에서 수사관들로부터 법원에 도착하면 포토라인에 서야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이를 거부하는 의사를 표시하는 한편 얼굴과 수갑을 가릴 수 있는 물품을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이를 제공받지 못한 사실, 원고를 호송한 수사관들은 당시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이 원고 주위로 몰려나오자 이를 제지하는 대신 오히려 원고의 팔짱을 푼 채 기자들이 원고의 주위를 둘러싸고 촬영 및 질문을 할 수 있도록 뒤쪽으로 물러난 사실, 당시 촬영한 사진들 중 일부를 보면 원고의 얼굴 윤곽과 이목구비가 대략적으로 드러나 원고를 어느 정도 식별할 수 있는 상태로 보도된 사실 등을 인정한 후, 체포 · 구속으로 피의자의 신병을 확보하고 있는 수사기관은 원하지 않는 촬영이나 녹화를 당할 절박한 상황에 놓인 피의자에 대하여 호송 · 계호 등의 업무에 중대한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얼굴을 가리거나 제3자의 접촉을 차단하는 등 초상권을 방어할 수 있도록 보호할 의무가 있는바, 위 피의자 심문구인용 구속영장 집행 사실을 확인한 언론사 기자들이 원고가 도착할 무렵 건물 현관에 대기하고 있었고, 수사기관 공무원들은 호송차량에서 내리기 전에 이러한 상황을 파악하였음에도 원고의 얼굴을 가릴 수 있도록 하여 주는 등의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채 원고에 대한 촬영, 녹화, 인터뷰가 가능하도록 방치하는 등 구속 피의자인 원고에 대한 보호의무를 위반하여 원고의 명예와 초상권을 침해하였다고 판단하였다"며 "원심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수사기관의 공보행위, 보호의무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