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어피니티 vs 신창재 교보 회장' ICC 중재판정의 의미와 전망
[Focus] '어피니티 vs 신창재 교보 회장' ICC 중재판정의 의미와 전망
  • 기사출고 2021.10.06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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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옵션 유효하지만, 2조원에 살 의무는 없다"

"중재판정부는 신창재 회장이 어피니티 컨소시엄이 제출한 40만 9,000원이라는 가격에 풋옵션을 매수하거나 이에 대한 이자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다. 신 회장이 승소한 것이다."

"중재판정부는 풋옵션은 유효하며, 신창재 회장의 계약 위반을 인정했다. 중재판정문에 신 회장이 패소 당사자(losing party)로 명시되어 있다."

2년 6개월을 끈 어피니티 컨소시엄 대 교보생명 신창재 회장의 국제상업회의소(ICC) 중재판정이 난 9월 6일 교보생명과 어피니티 측이 이메일로 보내온 판정 결과에 대한 해석은 이렇게 정반대로 갈렸다. 과연 누가 이긴 것인가? 이후에도 양측은 판정문 내용을 발췌해 인용하며 여러 차례 보도참고자료 또는 입장문을 내놓아 중재절차 못지않게 중재 판정 이후의 홍보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양상. 리걸타임즈가 양측의 설명과 중재판정문의 구체적인 표현을 토대로 중재판정의 정확한 내용과 이러한 판정이 나오게 된 이유를 면밀하게 추적했다.

청구금액이 2조원이 넘는 이 중재사건은 보험업계는 물론 국제중재를 수행하는 국내외 로펌들 사이에서도 높은 관심을 끌었다. 또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화상중재(virtual hearing)로 진행되어 판정이 난 한국기업 또는 기업인이 관련된 최대 사건이란 의미도 있다.

김앤장 · HSF vs 광장 · QE

어피니트 측 대리인은 김앤장과 서울에도 사무소가 있는 허버트 스미스 프리힐즈(Herbert Smith Freehills). 허버트 스미스 프리힐즈는 특히 Simon Chapman 영국변호사 등 홍콩사무소팀이 주로 참여했다. 신 회장 측은 법무법인 광장과 존 리(John Rhie) 등이 포진한 퀸 엠마누엘(Quinn Emanuel)이 대리했다.

분쟁의 발단은 어피니티 컨소시엄(어피니티 에쿼티 파트너스, IMM PE, 베어링PE, 싱가포르투자청)이 대우인터내셔널로부터 교보생명 지분 24%를 주당 24만 5,000원(1조 2,000억원 규모)에 매입한 9년 전의 201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어피니티 컨소시엄이 신 회장과 맺은 주주간 계약의 풋옵션 조항에 따르면, 2015년 9월 말까지 교보생명의 IPO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투자자들은 풋옵션을 행사하여 자신들이 매입한 지분을 신 회장 또는 신 회장이 지정하는 제3자에게 매도할 수 있다고 정했는데, 교보생명의 IPO가 불발되면서 청구금액 2조원대의 대형 국제중재 분쟁으로 비화된 것이다.

교보생명은 신창재 회장의 부친이 설립한 한국에서 3번째로 큰 생명보험회사로, 신 회장이 가지고 있는 교보생명 지분은 33.78%다.

◇교보생명 본사가 입주해 있는 광화문 교보빌딩(교보빌딩 홈페이지)
◇교보생명 본사가 입주해 있는 광화문 교보빌딩(교보빌딩 홈페이지)

교보생명은 IPO를 추진했지만, 저금리와 규제 강화로 약속된 2015년 9월 말 기한을 넘겼고, 어피니티가 추가로 3년을 제시했지만 마찬가지로 IPO에 실패했다. 이에 어피니티 컨소시엄이 2018년 10월 풋옵션을 행사하고 감정평가기관으로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을 선임, 주당 40만 9,000원(정확하게는 409,912원)으로 풋옵션 주식의 적정시장가치(FMV, Fair Market Value)를 산정해 가치평가보고서를 제출했으나, 신 회장이 풋옵션 조항이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어피니티 측의 풋옵션 행사에 응하지 않고 평가기관을 선임하지 않자 어피니티 측은 2019년 3월 신창재 회장은 딜로이트 안진의 평가가격인 주당 409,912원에 어피니티 컨소시엄의 교보생명 풋옵션 주식을 매수하라며 ICC에 중재를 제기했다.

풋옵션 조항에 따르면, 풋옵션이 행사될 경우 투자자들과 최대주주는 각각 감정평가기관 1곳을 선임하여 30일 내에 가치평가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며, 만약 두 감정평가기관이 산정한 풋 가격의 차이가 10% 미만일 경우에는 그 평균이 풋 가격이 되고, 10% 이상일 경우에는 투자자 측에서 제공하는 세 곳의 감정평가기관 중 한 곳을 최대주주가 선택하는 방법으로 새로운 감정평가기관을 선임하여 그 가치평가보고서를 기준으로 풋 가격이 결정된다. 다만, 이 사건에서처럼 당사자 일방이 평가기관을 선임하지 않을 경우, 어떤 방식으로 적정시장가치를 정할 수 있는가에 대해 규정이 없어 이 부분이 ICC 중재에서 핵심 쟁점 중 하나가 되었다.

◇신청인 측 청구 기각=중재판정부는 신창재 회장이 어피니티 컨소시엄이 제시한 주당 40만 9,000원에 풋옵션 주식을 매수하거나 이자를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판정했다. 2조원이 넘는 어피니티 측의 청구를 기각한 것으로, 중재판정부가 신 회장을 패소 당사자로 명시하며 어피니티 측이 부담해야 할 중재비용 전부와 변호사비용의 절반을 신 회장에게 지급하라고 명했음에도 신 회장이 실질적으로 승소했다는 해석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피니티 측은 중재절차에서 신 회장이 적정시장가격을 제출하지 않았으므로 딜로이트 안진의 감정 결과에 따라 풋옵션 가격이 정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중재판정부가 직접 적정한 풋옵션 가격을 정해 신 회장으로 하여금 중재판정부가 정한 그 가격에 주식을 매수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그러나 "풋옵션 조항이 유효하다(The Put Option contained in Article 7 of the Shareholders Agreement dated 17 September 2012 was at all material times valid and capable of being validly exercised by the Claimants)"고 하면서도, 신 회장이 어피니티 측이 제출한 40만 9,000원에 풋 주식을 매수할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There has been no valid determination of an FMV or Put Price pursuant to Article 7.3 of the Shareholders Agreement dated 17 September 2012, and the Respondent has no obligation to purchase the Claimants' shares. The Respondent was not obliged to purchase the Put Shares from the Claimants at a Put Price based on Deloitte's FMV or any other Put Price). 주주간 계약에 일방 당사자가 감정평가법인을 선임하지 않을 경우 어떻게 풋옵션 가격을 정하는지 규정하고 있지 않으므로 딜로이트 안진의 감정평가보고서만을 토대로 풋옵션 가격을 산정할 수 없어 이렇게 판단한 것으로 이해된다.

준거법은 한국법

중재판정부는 특히 계약 문언과 달리 중재판정부가 직접 적정시장가치를 산정하는 것은 계약을 다시 쓰는 것에 해당하여 허용될 수 없다(Where a supplementary interpretation of the SHA is not warranted, the Tribunal sees no basis to rewrite the SHA and determine the FMV by itself)고 밝혀 주목된다. 중재판정부가 직접 적정한 풋옵션 가격을 정해 신 회장에게 그 가격에 주식을 매수하도록 해야 한다는 어피니티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올 1월 대법원이 두산인프라코어 사건에서 재무적 투자자들의 동반매도요구권(drag-along right) 행사와 관련해 제시한 법리와 같은 취지로 결론을 내린 셈이다. 이번 ICC 중재는 한국법이 준거법이고, 중재지(seat)가 서울이어 절차법 등도 한국법이 적용되었다.

이와 관련, 신 회장 측 대리인으로서 2년 반이 걸린 중재재판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법무법인 광장의 임성우 변호사는 "당초 지난해 9월 중재심리가 열릴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연기된 후 올 초 두산인프라코어소송의 상고심에서 주목할 만한 법리가 선고되어 그 내용을 상세히 분석해 중재판정부에 제출했다"며 "그런 점에서 피신청인 측 입장에선 운도 따랐던 셈"이라고 말했다.

"협조의무 어겼지만 매매 의제 불가"

두산인프라코어 사건은 두산인프라코어의 중국 자회사인 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DICC)의 중국 증시 상장이 무산되자 재무적 투자자들이 DICC의 지분 80%를 보유한 두산인프라코어를 상대로 동반매도요구권을 행사한 데 이어 매각이 불발되자 두산인프라코어를 상대로 투자자들이 보유한 DICC 지분 매매에 따른 매매대금 지급을 청구한 지연이자 포함 1조원대 소송이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대주주인 두산인프라코어에 자료 미제공 등 협조의무 위반을 인정하면서도 투자자들의 지분에 대한 매매계약 체결을 의제할 것은 아니라고 판시, 재무적 투자자들의 청구를 기각하는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다.

◇풋옵션 자체는 유효=어피니티 컨소시엄과 신창재 회장이 맞붙은 이번 중재판정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또 하나의 대목은 중재판정부가 인정한, 풋옵션 조항이 유효하다는 것과 신 회장의 주주간 계약 위반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이다.

신창재 회장은 주주간계약의 풋옵션 조항이 2012년 자본시장법 및 2005년 옵션부투자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위반하고, 주주평등의 원칙에 반한다는 이유로 풋옵션 조항이 무효라고 주장하고, 이에 따라 투자자들의 풋옵션 행사 및 이에 따른 풋 가격 산정절차를 따를 필요가 없고 아무런 법적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으나, 중재판정부는 풋옵션 조항이 위 법률과 가이드라인 및 주주평등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며 풋옵션 조항이 유효하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중재판정부는 이와 관련, "최대주주 측이 풋옵션 조항을 작성한 당사자인데다가 주주간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해당 풋옵션을 한국은행에 보고한 바 있고, 당시 관련 기관 및 최대주주 모두 풋옵션 조항의 유효성을 다투지 않았으며, 최대주주조차 풋옵션 조항이 무효라는 점을 풋옵션이 행사된 이후에야 주장하였다"며 "최대주주의 주장이 놀랄만하다(striking)"고 언급했다(At the outset, the Tribunal notes that it is striking that the Respondent has advanced the submissions that the Put Option breaches the 2012 Korean Capital Market Act and/or the 2005 Option Guidelines. It was the Respondent who drafted the Put Option in light of Affinity’s request. Moreover, the Respondent informed the Bank of Korea of the inclusion of the Put Option before the SHA was executed. At this stage neither the Respondent nor the authorities in Korea argued that the Put Option was invalid. Importantly the Respondent raised the argument that the Put Option was invalid only after the Claimants decided to exercise the Put Option).

◇최근 어피니티 컨소시엄과의 ICC 중재에서 사실상 승소한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최근 어피니티 컨소시엄과의 ICC 중재에서 사실상 승소한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중재판정부가 인정한 신 회장의 구체적인 계약 위반 내용은 풋옵션 행사일로부터 30일 이내에 당사자들이 평가기관을 선정하고 각 당사자가 선정한 평가기관이 가치평가보고서를 제출할 의무를 위반하여 풋 가격 결정 절차를 방해하고, 이로 인하여 투자자들이 투자를 회수할 수 있는 시기가 현저히 늦춰졌는바, 이는 주주간 계약상 투자자들의 권리 또는 이익을 침해하거나 부정적 영향을 주는 행위를 하지 않을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반면 신 회장이 2015년 9월 30일까지 IPO를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어피니티 측의 주장은 그에 관한 입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배척되었다. 신 회장이 딜로이트 이메일 등이 사건 중재 관련 자료를 교보생명 등에 유출하여 비밀유지의무를 위반하였다는 신청인 측의 주장도 입증 부족을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어피니티 측에선 유효한 풋옵션에 기반하여 그리고 신 회장의 계약 위반을 토대로 풋옵션의 이행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구체적인 수단을 동원할 수 있을까.

구체적 손해액 청구 안 해

리걸타임즈 취재에 따르면, 신창재 회장의 주주간 계약 위반에 따라 어피니티 등 투자자들에게 손해배상청구권이 인정된다는 것이 중재판정부의 판단이나, 어피니티 측은 계약 위반에 대한 확인만 구하고 구체적인 손해액을 청구하지 않았다. 이에 따른 중재판정부의 판정 결과는 청구금액이 없으므로 신 회장이 손해배상금을 지급할 의무도 없다는 것.

중재판정부는 판정문에서 "신청인들은 계약의 이행책임과 손해를 나누어 중재판정부에 요청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신청인들은 계약 위반으로부터 이행청구나 손해배상 청구를 요청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The Claimants could have requested the Tribunal to bifurcate liability and damages. However, the Claimants chose not to do so. The Claimants could have requested specific performance and/or damages arising from this breach in these proceedings but they chose not to do so)"고 분명하게 밝혔다.

어피니티 측은 "풋옵션 조항이 유효하므로 투자자들은 최대주주가 지체없이 감정평가기관을 선임하여 가치평가보고서를 제출하는 등 풋 가격 결정 절차를 밟아 나가도록 계약 이행을 촉구할 예정"이라며 "최대주주가 계약 위반을 지속하고 풋 가격 결정 절차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중재판정에 따라 즉시 준비된 법적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중재판정에 따라 최대 주주의 계약 위반이 확정되었으므로, 위반 상태가 계속된다면 투자자들이 손해배상금을 산정하여 청구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강조했다.

어피니티가 취할 구제수단 주목

그러나 중재는 단 한 번의 판정으로 분쟁을 종결짓는 이른바 'One Shot, One Kill'이 적용되는 제도로, 중재판정엔 대법원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이 있어 추가 중재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하고, 분쟁해결 조항에서 중재로 해결하기로 한 이상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분쟁해결 조항 위반이어 각하 사유이기 때문에 과연 어피니티 측에 어떠한 법적 구제수단이 있을지 주목된다.

중재판정부도 신청인들은 피신청인측의 계약 위반으로 인한 손해의 양정을 미래의 클레임으로 연기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피신청인측이 제출한 한국법에 의해서도 그렇고, 당사자들의 분쟁에 관련된 모든 사항은 같은 중재절차에서 결정되어야 한다는 사법경제의 원리에 기반해서도 그렇다는 것이다(The Tribunal considers that the Claimants were not entitled to defer quantification of damages caused by the Respondent’s breaches to a future claim. This is based not only on the Respondent's submissions on Korean law, which were not refuted by the Claimants, but also on the basis of the principle of judicial economy which recommends that all of the elements of the Parties' dispute should be determined in the same arbirtation).

◇비용 분담=이러한 실질적인 판정에도 불구하고 소송비용 분담에선 어피니티 측이 상당한 승소 결과를 거두었다. 중재판정부는 패소 당사자가 모든 중재비용을 물어야 한다며 교보생명의 신 회장 측에 본인의 중재비용은 물론 신청인측의 중재비용과 제반 비용을 부담하고, 아울러 신청인 측 변호사비용(legal fees)의 50%를 부담하라고 명했다. 비용 부담 결정에 따라 신 회장이 신청인 측에게 지급해야 할 변호사비용과 중재비용 등이 모두 187억원이 넘는 상당한 금액이다.

변호사비용 등 187억 지급 명령

결국 이번 사건은 어피니티 컨소시엄과 신창재 회장이 맺은 풋옵션은 유효하고 신 회장이 풋 주식의 평가기관을 선임하지 않은 것은 주주간 계약 위반이지만, 어피니티의 풋 행사에 따른 일방적인 매매청구는 인정될 수 없다는 결론으로 이해된다.

어느 일방이 평가기관을 선임하지 않을 경우, 어떤 방식으로 풋 주식의 적정시장가치를 정할 것인가에 대해 정하지 않은 것이 결과적으로 어피니티 측의 풋 주식 매각을 미완에 그치게 한 크나큰 실수로, 이러한 중재판정 결과를 본 관련 업계 등에서 문제의 주주간 계약이 투자자들에겐 '반쪽자리 계약'에 불과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리걸타임즈 김진원 기자(jwkim@lega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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