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타임즈 IP Law] 영업비밀 분쟁에서의 정직하지 못한 행동
[리걸타임즈 IP Law] 영업비밀 분쟁에서의 정직하지 못한 행동
  • 기사출고 2021.10.07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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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고등법원 결정을 중심으로

화해로 종결되었지만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간의 배터리 영업비밀 분쟁과 관련하여 지난 5월 미국 무역위원회는 SK이노베이션의 문서 삭제행위와 이것이 정기적 관행이라는 변명, 문서 삭제행위의 은폐 시도가 '노골적 악의'에 따른 것이라며 LG에너지솔루션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이렇듯 영업비밀 분쟁에서 정직하지 못한 당사자의 행동은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있는데, 이와 유사한 사례가 작년 영국에서도 있었다.

가처분 결정 확정

2020년 7월, 영국 고등법원은 배터리 분리막 제조업체인 셀가드 엘엘씨(이하 "셀가드")와 센젠 시니어 테크놀로지 머티리얼 컴퍼니(이하 "시니어") 간의 영업비밀 침해소송에서, 시니어가 셀가드의 영업비밀을 부당 취득한 혐의를 인정하여 수입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시니어는 항소했지만 2020년 10월 항소는 기각되고 가처분 결정은 확정되었다. 본 사건은 영업비밀의 부당 취득에 관한 새로운 법률(2018년도 영업비밀 시행규칙)에 따라 제기된 리딩 케이스 중 하나이다.

◇Dr Joanna Thurston(좌) · 김성은 변리사
◇Dr Joanna Thurston(좌) · 김성은 변리사

배터리 분리막은 리튬 이온 배터리의 전극 사이에 위치하며, 전극 사이에 이온은 통과시키지만 전극 간의 직접적인 접촉을 방지하여 배터리의 성능을 향상시키고 안전성을 높이는 핵심적 역할을 하는 소재로, 셀가드와 시니어는 배터리 분리막 분야의 주요 제조회사들이다.

셀가드 떠나 시니어에 합류

본 사건은 셀가드의 핵심 연구인력인 샤오민 챙 박사가 셀가드를 떠나 시니어에 최고 기술 책임자로 합류하면서 촉발되었다.

셀가드는 챙 박사가 자사의 기밀 정보를 시니어에게 제공하였고, 이를 통해 비용 측면에서 크게 개선된 제품을 만드는 것이 가능해졌으며, 시니어가 확보한 가격 경쟁력은 셀가드의 영국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낮추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근거로 셀가드는 글로벌 EV 시장에 공급하는 주요 배터리 제조업체의 영국 사업부(이하 "영국 고객")와 논의 중이던 계약을 들었다. 셀가드는 해당 계약에 대한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갈 때만 해도 영국 고객과의 공급 계약 체결을 낙관했는데, 협상을 진행하면서 영국 고객이 시니어의 제품에 대해서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가명으로 시니어에 입사

법원은 제너럴 일렉트릭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 후 셀가드를 떠난 챙 박사를 시니어가 고용하는 과정에 주목하였다. 실제로 챙 박사는 제너럴 일렉트릭으로 가지 않고 중국으로 돌아가 '빈 왕'이라는 가명으로 시니어로 이직하였다. 시니어는 챙 박사의 이직 사실을 셀가드가 알지 못하도록 챙 박사에게 가명으로 일할 것을 요청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셀가드가 부당하게 소송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악명 높기 때문에, 챙 박사를 고용한 것을 알게 된 셀가드가 부당하게 소송을 제기할 것이 두려워 챙 박사에게 가명을 사용하게 할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셀가드가 다른 회사들보다 부당하게 소송을 더 많이 제기한다는 점을 뒷받침할 수 있는 명확한 증거를 시니어가 제시하지 못하면서 이러한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파나소닉 임원진과 사진 촬영

시니어는 셀가드가 챙 박사의 시니어 합류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챙 박사가 배터리 분리막이 아닌 역삼투압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시니어를 방문한 파나소닉의 임원진과 함께 찍은 챙 박사의 사진이 공개되면서 위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법원은 재판 초기 단계에 시니어가 영국 고객에게 제품을 송달할 때까지 절차를 고의로 지연하였고, 제품 송달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법원에 알리지 않은 채 영국에 시니어 제품이 송달되는 등 가처분 결정이 시의적절하게 이루어지지 못한 측면이 있다.

이러한 행동은 시니어의 사업 수행방식의 적절성에 대한 의구심을 자아내면서, 사건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한편 영국에서 가처분 신청은 아래 세 가지 질문을 따져보고 결정하게 된다(American Cyanamid v Ethicon, 1975).

1. 재판을 해야 할 만큼 심각한 문제가 있는가?

2. 손해배상이 재판의 당사자들에게 적절한 구제책이 될 수 있는가?

3. 편의성의 균형은 어디에 있는가?

재판을 해야 할 만큼 심각한 문제가 있는가?

셀가드는 시니어가 제조 공정에 대한 정보를 충분하게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니어가 셀가드의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줄 수 없었다고 주장한 반면, 시니어는 셀가드가 도용되었다고 주장하는 영업비밀을 적절히 특정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챙 박사가 가져간 것 중 어느 것이 영업비밀이고, 어느 것이 셀가드가 영업비밀로 보호할 수 없는 본인의 일반적인 전문 지식 또는 습득한 지식인지를 구별하는 것은 답하기 매우 어려운 질문"이라고 하면서도, "그러나 셀가드의 영업비밀이 도용되어 개발된 기술이 포함된 제품이 영국 고객에게 송달된 이상, 영국 법률 및 영업비밀 시행규칙에 따른 형평성에 비추어 보면 명백한 위반이 있을 수 있다"고 판시하여 재판을 해야 할 만큼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였다.

셀가드가 주장하는 영업비밀에는 세라믹 코팅 공정 중 슬러리용 바인더와 바인더를 제품에 도입하는 방법이 포함된다. 법원이 재판을 해야 할 만큼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는 데 있어, 시니어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바인더가 챙 박사가 이직하기 전에 사용하던 것과는 다르고 셀가드의 바인더와 비슷하다는 점이 적극적으로 고려되었다. 챙 박사는 셀가드에서 분리막 제품에 사용되는 수지 개발을 담당했기 때문에 셀가드의 영업비밀을 이용하여 새로운 조성의 바인더를 용이하게 제조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손해배상이 재판의 당사자들에게 적절한 구제책이 될 수 있는가?

영국에서는,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면 당사자에게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손해배상이 적절한 구제책이 아닐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인용하고 있다.

가처분 신청이 잘못 인용되거나 기각될 경우 각 당사자가 입을 수 있는 손해의 정도에 대해, 법원은 영국 고객과의 계약을 체결하지 못했을 경우 입을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손실은 두 당사자가 동등하다고 판단하였다. 법원은 또한 위 손실은 계약의 가치와 동일하기 때문에, 두 경우 모두 그러한 손실을 추정하기가 비교적 간단할 것이라고 하면서도, 이와 함께 고려해야 할 추가적인 정량화가 불가능한 손해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만약 시니어가 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허가된다면, 시니어가 훨씬 낮은 가격에 분리막을 제공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격 하락이 시작되어 셀가드가 영국을 포함하여 글로벌하게 가격을 인하하도록 압박하였을 것이므로, 궁극적으로 시니어가 영업비밀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되어 영국에서 분리막의 판매가 금지되더라도 가격을 현재 수준으로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영업비밀을 부당하게 취득한 시니어가 셀가드에게 정량화할 수 없을 정도의 불이익을 주게 될 것으로 판단했다.

법원은 가격 하락으로 인한 셀가드가 입게 될 잠재적 손실은, 특히 현재 EV 시장의 급속한 성장을 감안할 때, 사실상 정량화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어 손해배상이 적절한 구제책이 될 수 없다고 보았다.

편의성의 균형은 어디에 있는가?

손해배상 평가의 어려움에 대한 결론을 감안할 때, 법원은 편의성의 균형이 가처분 신청의 인용에 있다고 판단하였다. 편의성의 균형을 판단할 때 법원은 셀가드가 가처분 신청을 하는 데 있어 과도한 지연을 행사했는지 여부를 고려했다. 과도한 지연은 없다고 보면서도, 설령 있다고 해도 시니어의 부적절한 행동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였다.

본 사건은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어야 하는지 여부에 대한 평가뿐만 아니라, 당사자의 정직하지 못한 행동에 대해 법원이 취한 견해와 관련하여서 흥미로운 사례이다. 편의성의 균형이 어디에 있는지 결정함에 있어 소송 당사자의 행위가 고려될 수 있고, 궁극적으로 가처분 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영업비밀의 특정과 관련하여서도 정직하지 못한 행위를 중요한 판단 근거로 보고 있다.

영업비밀 특정과 정직하지 못한 행위

영업비밀은 특허와 달리 공시제도가 없고, 그 성격상 영업비밀의 소유자는 영업비밀을 소송과정에서 공개할 경우 그 자체로 비밀성을 해칠 수 있지만, 영업비밀의 침해자는 영업비밀이 특정되지 않으면 적절한 방어권을 행사하기 힘들기 때문에 소송에서 영업비밀의 특정은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영업비밀침해금지를 명하기 위해서는 그 영업비밀이 특정되어야 할 것이지만, 상당한 정도의 기술력과 노하우를 가지고 경쟁사로 전직하여 종전의 업무와 동일,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를 상대로 영업비밀침해금지를 구하는 경우 사용자가 주장하는 영업비밀이 영업비밀로서의 요건을 갖추었는지와 영업비밀로서 특정이 되었는지 등을 판단함에 있어서는, 사용자가 주장하는 영업비밀 자체의 내용뿐만 아니라 근로자의 근무기간, 담당업무, 직책, 영업비밀에의 접근 가능성, 전직한 회사에서 담당하는 업무의 내용과 성격, 사용자와 근로자가 전직한 회사와의 관계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라고 판시하며 영업비밀의 특정의 정도에 대해 다소 완화된 입장을 보인 판례(대법원 2003. 7. 16. 자 2002마4380 결정)가 있으나, 본 사례와 같이 영업비밀의 특정에서 당사자의 정직하지 못한 행동을 중요한 판단요소로 고려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법, 영업비밀 특정 완화

그러나 최근 기술분쟁은 여러 나라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되며, 그 결과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경향에 비추어 볼 때, 앞서 살펴본 사례는 우리나라에서도 향후 충분히 이용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Dr Joanna Thurston(Withers & Rogers LLP) · 김성은 변리사(김앤장 법률사무소)

*Dr Joanna Thurston은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두고 있는 유럽계 IP 로펌인 Withers & Rogers LLP에 재직 중인 파트너 변호사로, 생명공학 및 화학 그룹에서 특허 제반 실무와 법률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고등교육 분야에서도 활약하며 홈 케어 그룹을 이끌고 있으며, 유러머니 계열의 'MIP IP Stars'에서 2021년 'Patent Star'로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