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에 거는 기대 크다"
"대법원이 법률의 합목적적 해석을 통해 차별과 혐오를 넘어 대립하는 가치가 화해하는 평화와 공존의 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모든 힘을 다하겠다."
오경미(52) 신임 대법관이 9월 17일 취임, 6년의 임기를 시작했다. 오 대법관은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12번째 대법관이자 마지막 대법관으로, 코로나19 때문에 취임식은 열지 않고, 이날 취임사만 배포했다. 오 대법관이 취임하면서 노정희, 민유숙, 박정화 대법관과 함께 사상 최대인 4명의 여성 대법관이 대법원을 구성하게 되었다.
여성 대법관 4명으로 늘어
오 대법관은 취임사에서 "사람들은 지금을 일러 확증편향의 시대라고 하는 상황"이라며 "이런 때일수록 상충된 가치가 공존할 수 있는 평화의 지점에 대한 국민의 갈망은 더욱 간절하고 대법원에 거는 기대는 클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이어 '진리를 찾기 위해서는 서로 대립하는 것들을 화해시키고 결합시켜야 한다. 적대적인 깃발 아래 모인 양쪽이 서로 치고받는 과정을 거쳐야 진리에 이를 수 있다'라고 갈파한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인용하며, "대법원의 사명은 서로 다른 의견의 제시를 허용하고 경청과 토론을 거쳐 반성하고 포용하는 자세를 통해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오 대법관은 9월 15일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모두발언을 통해 "기성세대의 가치와 새로운 세대의 가치가 충돌하고 서로 다른 의견에 대한 혐오표현이 법적 분쟁으로 이어지며 디지털 공간에서 발생하는 신종 범죄가 일상의 평온을 위협하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법원은 판결을 통해 공동체의 가치를 회복하고 다양한 의견이 공존할 수 있는 평화의 지점을 발견해야 하는 과제를 부여받고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또 "부족한 제가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은 여성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다양성과 다원성을 반영하고 다수결의 원칙만으로는 보호받지 못하는 소수자와 약자를 보호하라는 국민의 요구가 고려된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진만 전 대법원장 가장 존경
오 대법관이 가장 존경하는 대법원장은 3, 4대 대법원장인 조진만 전 대법원장. 오 대법관은 "해방 직후 우리 근대 사법체제가 형성되던 과정에서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 등 체제를 완비하여 민주적 근대 사법제도의 기틀을 다지신 분"이라고 조 전 대법원장을 평가하고, "모든 반대에도 불구하고 판결문 가로쓰기를 강하게 추진하셔서 아주 일찍이 국민을 위한 한글화 그리고 가로쓰기 체제를 정착시킨 분"이라고 기렸다.
국회 인사청문회 기록을 토대로 오 대법관이 사법의 주요 이슈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요약해 소개한다.
◇사법 불신 이유=전통적으로는 오랜 기간 전관예우에 관한 유전무죄, 전관예우에 관한 우려와 불신이 장기간 계속됐다. 최근에는 사회가 점점 가치관 대립 상황에 들어서면서 법원에 예민한 사건들이 많이 계류되고, 법원에서 판사님들이 양심에 따라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면서 판결을 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마는 그 내용의 유불리에 따라서 많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또 그 비판의 가치, 법원의 정치적 중립성에 의문을 많이 품고 계시는 것 같다.
◇상고제도 개선=현재 상고제도의 개선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듣고 있다. 많은 안들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상고제도 개선은 너무나 시급하면서도 또 너무나 어렵다. 상고허가제와 상고법원제도, 대법관 증원 세 가지 안이 다 장단점이 있어서 그것 중의 무엇이 가장 국민을 위한 상고법원을 만들 수 있는 안인지 확신을 가질 수가 없다. 다만 확신하는 것은-이건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마는-그래도 대법원은 최고의 법률해석 법원으로서 정책법원의 역할을 상실할 정도의 해체는 안 된다, 전원합의체 판결이 유지될 정도의 어떤 정책법원의 기능성은 유지시켜야 된다.
◇여성 대법관 수=남성이든 여성이든 대법원에 몇 명이 적절하다 이런 것은 구체적으로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오랜 기간 열악한 처지에 있다 보니 대법원에서도 여성의 수가 매우 적었고, 그로 인해서 여성의 목소리가 대법원 판결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면이 있지만 앞으로는 여성의 지위가 이제 동등하게 향상되어서 많은 부분에서 성평등이 대법원 구성에도 충실히 반영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사법 독립=사법부의 독립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우리 사회의 자유민주질서 그리고 삼권분립이라는 그런 큰 틀을 유지하기 위해서 요구되는 것이고 법관을 위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차별금지법=현재 헌법상에 평등의 원칙을 선언하고 있지만 개별적인 법에서 많이 하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차별금지법에서 영역을 명확하게 잘 심의해서 원칙적인, 원론적인 차별금지법의 어떤 법안을 국회가 만들고 그것이 사회에서 어떤 기업에 대한, 기업 활동의 제한이나 여러 가지 다른 부작용을 많은 분들이 우려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을 불식시켜 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성범죄 2차 가해=일반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권력형 성범죄의 양형에 있어서 엄정해야 함은 틀림이 없고, 또한 2차 가해 문제가 크게 문제되고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관해서 법원은 더욱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동의 간음죄=비동의 간음죄 문제는 현재 성폭력 범죄의 여러 가지 개정안 중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 중의 하나라고 알고 있다. 큰 틀에서는 현재 강간죄에서 말하고 있는 폭행 · 협박 범위가 대법원에서 그걸 최협의로 한정해서 해석하고 있고 그게 쉽게 바뀌기는 어려운, 현재 현행 형법하에서는 변경하기는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여성 피해자들이 발생하고 있는 문제가 있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서 현재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 명시적으로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에 관해서 처벌 범위를 확장하는 논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근본적으로 그 방향에 공감하고 있다.
◇양형기준=아직도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새로운 유형의 전통적 성범죄에서는 꾸준히 양형기준이 개정되고 국민의 의견을 반영해 왔다고 생각하는데 예를 들면 디지털 성범죄나 혹은 권력형 성범죄 이런 것들은, 최근에 새로 이슈가 되는 성범죄들은 아무래도 법원의 양형이 사법부의 보수성이라고 할까 그런 것이 있기 때문에 빨리 못 따라가는 것 같다. 그런 부분에 관해서 더욱 정비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촉법소년=소년, 어린 청소년들의, 특히 14세 미만까지 포함해서 어떤 흉포한 범죄가 사회적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전보다 많이 생기면서 촉법소년의 나이를 ‘낮춰야 한다’ 이런 얘기가 있는 것을 보고 생각을 해 보았다. 오래전이긴 합니다마는 2002년경에 소년재판을 1년간 한 적이 있다. 그 이후로 소년법이 많이 개정이 되어서 촉법소년 위 단계, 소년법 적용 단계의 소년들에 대한 보호처분이 많이 개선되기는 하였습니다만 사실 어떤 문제 상황에 놓인, 가정적으로나 본인의 소행으로나 문제 상황에 놓인 소년을 행정기관 혹은 사법기관이 바르게 인도한다는 것이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특히 촉법소년 14세 미만자의 경우에는 아무리 흉포한 범죄를 저지르는 내용이 나타나도 아이의 흉포는 사회가 흉포한 것에 대한 반영이지 그 아이의 책임으로 바로 묻는 것은 너무 사회가 가혹하다, 사회가 흉포하기 때문에 그 반영으로써 어린 소년들이 흉포함에 일찍이 빠져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책임을, 아직 14세 미만 초등학생인 그 소년들에게 결과만을 가지고 그것을 형사처벌해서 전과자로 만든다거나 낙인을 찍는 것이 과연 어른이 할 일인가에 관해서는 다시 한 번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한다. 그렇다고 그걸 마냥 방치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어떤 소년법 체계나 혹은 촉법소년이라 하더라도 거기에 따른, 그 소년을 선도할 수 있는 어떤 방안을, 아예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보다 좀 더 하는 어떤 것들을 고민해 봐야 한다 이런 생각이다.
◇디지털 성범죄 근절방안=다크웹 등 디지털을 통해서 확산되는 성폭력범죄의 특성으로서 무한 확대, 무한 유포로 인해서 피해자들이 겪는 2차 피해의 고통이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그런 위험에 처해진다는 점이 있다. ‘디지털 장례식’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로 한 번 본인의 어떤 파일이나 동영상이 웹사이트에 올려지는 순간 그것이 어디까지 퍼질지 모르기 때문에 그 당해 피해 여성이 겪는 공포와 평생 느껴야 할 부담감은 정말 어마한 것 같다. 그 부분에 관해서 아주 심도 있는 고통 해결 방법을 모색해야 된다는 그런 생각이 있다.
◇직권남용죄=직권남용죄 재판을 해 보니까 그 요건 사실이 직무범위 내일 것을 요구하고 있어서 직무범위가 아닌 경우에는 무죄판결이 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국민들 법감정으로 볼 때, 평균적 감정으로 볼 때 오히려 더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 아니냐라고 평가받는 일들이 오히려 직무범위 바깥이기 때문에 무죄가 선고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그 부분에 관해서 국민 법감정에 맞는 어떤 처벌의 기준을 새로이 정립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