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집에 없는 틈을 타 유부녀인 내연녀의 집에 드나들었더라도 주거침입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공동거주자 중 한 명의 현실적인 승낙을 받고 들어가 주거의 평온을 해쳤다고 볼 수 없어 무죄라는 것인데, 간통죄가 폐지된 마당에 주거침입죄로도 처벌할 수 없다는 판단인 셈이다.
대법원 전원합의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9월 9일 간통을 목적으로 유부녀인 내연녀 B씨가 열어 준 현관 출입문을 통해 B씨 부부의 집에 3차례 들어갔다가 주거침입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상고심(2020도12630)에서 검사의 상고를 기각,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주거침입죄의 보호법익은 사적 생활관계에 있어서 사실상 누리고 있는 주거의 평온, 즉 '사실상 주거의 평온'으로서, 주거를 점유할 법적 권한이 없더라도 사실상의 권한이 있는 거주자가 주거에서 누리는 사실적 지배 · 관리관계가 평온하게 유지되는 상태를 말한다"며 "단순히 주거에 들어가는 행위 자체가 거주자의 의사에 반한다는 거주자의 주관적 사정만으로 바로 침입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주거침입죄의 구성요건적 행위인 '침입'은 주거침입죄의 보호법익과의 관계에서 해석하여야 하므로, 침입이란 거주자가 주거에서 누리는 사실상의 평온상태를 해치는 행위태양으로 주거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고, 침입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출입 당시 객관적ㆍ외형적으로 드러난 행위 태양을 기준으로 판단함이 원칙"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와 함께 공동거주자 중 주거 내에 현재하는 거주자의 현실적인 승낙을 받아 통상적인 출입방법에 따라 주거에 출입하였는데도 부재중인 다른 거주자의 추정적 의사에 반한다는 사정만으로 주거침입죄가 성립한다는 취지로 판단한 대법원 1984. 6. 26. 선고 83도685 판결을 비롯하여 같은 취지의 종전 판결들을 이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 내에서 모두 변경하기로 했다.
1심 재판부는 혐의를 인정해 A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가 "피고인이 피해자의 일시 부재중에 피해자의 처와 혼외 성관계를 가질 목적으로 피해자와 피해자의 처가 공동으로 생활하는 주거에 들어간 사실이 인정되나, 피고인이 위 주거에 들어갈 당시 피해자의 처로부터 승낙을 받았기 때문에 피고인이 위 주거의 사실상 평온상태를 해할 수 있는 행위태양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어서 주거에 침입한 것으로 볼 수 없고, 설령 피고인의 주거 출입이 부재중인 다른 거주자인 피해자의 추정적 의사에 반하는 것이 명백하더라도 그것이 사실상 주거의 평온을 보호 법익으로 하는 주거침입죄의 성립 여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하자 검사가 상고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