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재] "시 · 소설 인용한 수능시험 문제, 시험 종료 후 인터넷 게시 저작권 침해"
[지재] "시 · 소설 인용한 수능시험 문제, 시험 종료 후 인터넷 게시 저작권 침해"
  • 기사출고 2021.08.26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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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 "시험 목적 정당한 범위 초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시, 소설 등 문학작품이나 미술작품을 대학수학능력시험 등의 시험문제 출제에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시험이 종료된 후 해당 작품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시 등이 포함된 시험문제를 인터넷에 게시한 것은 저작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4부(재판장 이광만 부장판사)는 8월 19일 한국문학예술저작권협회가 저작권 침해라며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의 항소심(2020나2045644)에서 "피고는 원고의 허락 없이 원고가 신탁받은 저작물을 이용하여 출제한 시험문제를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시함으로써 원고의 전송권을 침해하였다"고 판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1심을 취소하고, "피고는 원고에게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저작권자들로부터 저작물의 복사와 전송권을 신탁받아 이를 관리하면서 저작물사용료를 징수하고 이를 신탁자들에게 분배하는 업무 등을 하는 한국문학예술저작권협회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한국문학예술저작권협회가 관리하고 있는 저작물 153개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지문과 참고자료 등으로 인용한 고입선발고사, 대학수학능력시험 등의 문제지를 협회의 허락 없이 평가원 웹사이트에 게시하여 저작권자의 전송권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냈으나 1심에서 패소하자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저작권법 제32조에 따라) 시험문제에 저작물을 자유이용할 수 있는 범위는 응시자의 학습능력과 지식 등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하기 위한 시험의 목적에 필요한 범위에 한정된다고 보아야 하므로, 해당 시험이 종료된 후에 저작권자의 동의 없이 시험문제를 공개하는 것도 해당 시험의 목적에 필요한 범위 즉, 해당 시험문제에 대한 이의신청 등 검증 과정을 거쳐 정당한 채점과 성적을 제공하는 데 필요한 제한적 범위 내에서만 허용되어야 한다"고 전제하고, "그렇지 않고 시험 종료 후 시험문제의 비밀성을 유지할 필요가 없게 되고 해당 시험의 목적 달성에 절차상 필요한 과정이 종료된 경우에까지 저작물의 자유이용을 허용하게 되면, 위 규정에서 정한 시험을 위한 정당한 범위를 넘어 저작물에 대한 학습 내지 교육, 나아가 감상 등 저작물에 대한 수요를 대체하는 효과까지 발생할 여지가 있어 위 규정의 취지를 벗어나게 된다"고 밝혔다. 저작권법 32조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학교의 입학시험이나 그 밖에 학식 및 기능에 관한 시험 또는 검정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그 목적을 위하여 정당한 범위에서 공표된 저작물을 복제 ‧ 배포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었으나, 2020년 2월 4일 저작권법 개정으로 공중송신도 할 수 있다는 내용이 추가되어 시행되고 있다.

이어 "(피고의) 게시행위는 해당 시험의 출제와 성적 제공까지 전체적인 과정이 완료된 후에 수년 동안 기간의 제한 없이 해당 시험 응시자 외의 불특정 다수인에게 시험에 이용된 저작물을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전송하는 것이므로, 시험의 목적에 필요한 정당한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할 것이어서, 공중송신이 추가된 현행 저작권법 제32조에 의하더라도 위 규정에 의해 허용되는 행위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는 이 사건 저작물이 이용된 평가문제를 당초 저작물 이용의 목적이었던 해당 시험에 필요한 범위를 벗어나 시험의 전체 과정이 종료된 후에도 장기간 해당 시험 응시자 외의 불특정 다수인이 언제든지 원하면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상태로 두는 게시행위를 하였고, 이에 대하여 피고는 공중이 평가문제를 학습하여 각종 시험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하고 시험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고 그중 수행평가 문항자료집의 경우 각급 학교 교사들로 하여금 교수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교육과정과 교습방법을 개선 ·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고 주장하고 있다"며 "그렇다면 이 사건 게시행위는 저작물을 국민들에게 학습 내지 교육을 위한 자료로 제공하는 결과가 되는 것인데, 피고는 구 저작권법 제25조 제2항에 의해 수업이나 수업지원 목적에 필요한 범위에서 공표된 저작물을 전송할 수 있는 교육기관이나 교육지원기관이 아니고,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피고의 설립 목적상 피고가 직접 국민에게 학습자료 내지 교육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그 업무 범위에 포함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이 게시행위는 저작물을 인터넷상에서 장기간 지속적으로 노출시킨 것이므로, 인터넷의 강한 전파성과 이용의 편리성을 감안하면, 오프라인 시장에서 저작물이 제공된 것에 비해 저작물을 학습자료로 이용하는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더 클 것으로 보이는 점, ▲저작물이 다운로드된 횟수는 저작물별로 수천 건에서 수만 건에 이르고,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이용된 저작물의 경우에는 수십만 건에 이르는 점, ▲이 사건 저작물은 어문저작물과 미술저작물 등 전체 153건 중 절반 이상이 허구적 저작물로서 문학적, 예술적 가치가 상당한 작품들이 많고, 이 저작물 중 어문저작물 중 운문 11개와 미술저작물의 경우 저작물의 전체가 그대로 평가 문제에 지문 등으로 이용된 점, ▲고입선발고사, 대학수학능력시험 등 평가문제의 지문 등으로 이용된 저작물이 부종적 성질을 가지는 관계에 있다고 보기 어렵고 그 양적 ‧ 질적 비중이 결코 작다고 볼 수 없는 점, ▲저작물을 저작권법 제28조에 정해진 공표된 저작물의 인용이나 구 저작권법 제35조의3에 정해진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에 이용할 경우에는 그 출처를 명시해야 하는데(저작권법 제37조), 저작물 153건 중 38건 정도의 저작물에 관하여 그 출처를 명시하지 않고 게시행위를 함으로써, 출처가 표시되지 않은 저작물이 인터넷을 통해 불특정 다수인에게 장기간 계속적으로 노출되도록 한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의 게시행위는 저작권법 제28조 또는 구 저작권법 제35조의3에 의해 허용되는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법무법인 로고스가 항소심에서 한국문학예술저작권협회를 대리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법무법인 바른이 대리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