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술 취한 승객 요구로 한밤중 자동차전용도로 갓길에 내려줬다가 사망…택시기사 무죄
[형사] 술 취한 승객 요구로 한밤중 자동차전용도로 갓길에 내려줬다가 사망…택시기사 무죄
  • 기사출고 2021.05.02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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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법] "부조 상태 인식 인정 어려워"

술에 취한 승객이 요구한다고 한밤중 자동차전용도로 갓길에 승객을 내려주었다가 이 승객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택시기사가 유기치사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무죄를 선고받았다.

소나타 택시를 운전하는 택시기사 A(67)씨는 2019년 4월 19일 오전 0시쯤 울주군 청량읍에 있는 자동차전용도로 갓길 부근에 이르러 술에 취한 손님 B(27)씨가 하차를 요구하면서 달리는 택시의 차량 문을 열려고 하자 갓길에 택시를 세워 B씨를 내려주고 아무런 조치 없이 그대로 가버려, B씨가 약 30분간 방향감각을 잃고 자동차전용도로를 헤매다가 같은 날 오전 0시 30분쯤 하차지점으로부터 약 600m 떨어진 자동차전용도로 2차로를 따라 걸어가다가 스포티지 승용차에 치여 사망케 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자동차전용도로는 자동차만 통행하는 곳으로 사람의 통행이 불가능하며 당시는 자정에 가까운 야간이고 가로등이나 다른 불빛이 없어 시야가 매우 불량한 관계로 교통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을 예견할 수 있었다"며 A씨를 유기치사 혐의로 기소했다. A씨는 B씨가 하차한 후 약 4초간 하차 지점에서 정차하여 택시의 후사경을 통해 B씨가 화물차 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본 뒤 택시를 운전하여 현장을 이탈하였으며, B씨를 친 스포티지 운전자는 제한속도를 초과하여 진행한 과실로 B씨를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는 이유로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치사)죄로 벌금 1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울산지법 형사12부(재판장 황운서 부장판사)는 그러나 4월 23일 "비록 택시기사인 피고인이 야간에 자동차전용도로에서 승객인 피해자가 하차하게 하고 별다른 조치 없이 현장을 떠났다고 하더라도,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이 당시 피해자가 술에 취하여 부조를 요하는 상태에 있었음을 인식하였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되었다고 할 수 없다"며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2020고합222).

재판부는 "비록 피해자는 택시에 탑승하여 피고인에게 목적지를 '울산대학교 앞'이나 '율리', '덕신' 등으로 말하여 특정한 정차장소까지 적시한 것은 아니지만, 택시 운행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는 구체적으로 목적지를 밝혔다고 볼 수 있고, 특히 율리 공영차고지 앞 사거리에 이르러서는 '좌회전하여 덕신 쪽으로 가달라'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보여 택시에서 하차하기 4~5분 전에도 자신의 위치와 목적지의 방향, 도로 진행방법 등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바, 목적지를 두 차례 변경했다는 점만으로 피해자가 만취로 비정상적인 정신상태에 있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은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을 때부터 이 법정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일관되게 '택시가 커브길을 앞두고 서행하며 화물차가 주차된 갓길 부근에 이르자 피해자가 내려달라는 의사를 거듭 표시하면서 차문을 열려는 듯한 행동(당시 운행속도와 구간에 비추어 이는 달리는 차안에서 갑자기 뛰어내릴 듯한 비정상적인 행동의 정도에 이른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요청대로 택시가 정차하면 즉시 하차할 태세를 표시한 정도였던 것으로 보인다)을 하였고, 피해자가 화물차의 운전기사라서 그곳을 최종목적지로 삼은 것으로 생각하고 화물차를 약간 지나쳐 정차하였는데, 그 즉시 피해자는 미리 준비한 지폐(만원짜리 지폐 2장)를 택시요금으로 주고 내려 화물차 쪽으로 걸어갔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는바, 위와 같은 진술은 객관적 증거로 밝혀진 출발 및 정차시간, 운행경로와 정차장소 등에도 부합하고 그 신빙성을 배척할만한 자료가 달리 없다"고 지적하고, "비록 야간에 자동차전용도로에서 승객을 하차하게 하는 것이 드문 일이기는 하나, 당시 피해자가 하차한 갓길은 그 폭이 5m로 편도 2개 차로의 폭을 합한 만큼의 공간이어서 평소에도 대형 화물차 등 차량이 거의 상시적으로 주차되어 있는 장소로 다른 구간의 갓길에 비하여 그 위험성이 상당히 적어 보이고, 당시 실제로 화물차가 주차되어 있었고 피해자가 마지막 목적지 방향을 말하면서 정차 위치를 특정하지 않았던(보통은 도로의 갓길까지 특정하여 목적지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정 등 피고인이 위 장소를 피해자가 선택한 최종적인 목적지라고 생각할만한 나름의 근거도 있었다"고 밝혔다. 재판부에 따르면, A씨는 오랜 세월 택시기사로 일하며 화물차 운전기사를 태워 같은 장소에 하차시켜 준 경험도 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승객의 요구대로 택시를 운행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택시기사로서, 딱히 비정상적인 정신적, 신체적 상태에 있어 보이지 않는 승객이, 비정상적이고 돌발적인 행위만 하지 않는다면 위험성이 크지 않아 정차가 불가능하거나 부적절하다고 보기 어려운 장소에 이르러 택시요금을 지급하면서 운행계약의 종료를 강하게 요구하는 상황에서, 그 장소가 자동차전용도로의 일부라는 이유만으로 그 요구를 묵살하고 운행을 계속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며 "피고인이, 당시 심야에 인적이 없는 상황에서 하차 이후 젊은 승객의 일정이나 행위에 간섭하였다가 그로부터 당할 봉변의 가능성을 생각하여 피해자가 화물차로 향하는 모습을 확인하고 현장을 이탈하였다는 취지로 한 변소내용도 이해하지 못할 바 아니다"고 덧붙였다.

대법원 판결(2007도3952 판결 등)에 따르면, 유기죄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행위자가 형법 제271조 제1항이 정한 바에 따라 '노유, 질병 기타 사정으로 인하여 부조를 요하는 자를 보호할 만한 법률상 또는 계약상 의무 있는 자'에 해당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요부조자에 대한 보호책임의 발생원인이 된 사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에 기한 부조의무를 해태한다는 의식이 있음을 요한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