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위안부 소송, 이번엔 국가면제 인정
[Focus] 위안부 소송, 이번엔 국가면제 인정
  • 기사출고 2021.04.23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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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J 판결, 대법 전합 판결따라 '소 각하' 판결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재판장 김정곤 부장판사)가 1월 8일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위자료 1억원씩의 청구소송(2016가합505092)에서 국제관습법상 국가면제론을 받아들이지 않고 일본 정부에 1인당 1억원씩의 위자료 지급을 명하는 판결을 내린 지 3개월여가 지난 4월 21일 같은 서울중앙지법의 민사15부(재판장 민성철 부장판사)가 국가면제론을 받아들여 원고들의 소를 각하하는 정반대의 판결을 내렸다. 민사15부는 당초 1월 15일 판결을 선고할 예정이었으나, 1월 11일 변론재개를 결정, 이때부터 판결 결과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이번 판결의 원고들은 곽 모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6인의 일부 본인과 사망한 경우 상속인 등 20명. 원고들은 제한적 면제론, 즉 외국의 비주권적 행위에 대하여는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주권적 행위에 대하여는 국가면제를 인정하는 법리를 전제로, 이러한 국가면제에 관한 국제관습법을 전제로 일본 정부에 대해 국가면제가 인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원고들의 주장을 조목조목 비판하며 국가면제를 인정하고, "외국인 일본 정부를 상대로 그 주권적 행위에 대하여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서울중앙지법 재판부가 3개월 전 같은 법원에서 선고된 판결과 달리 국제법상 국가면제 이론을 적용해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을 각하했다. 사진은 경기도 광주시의 나눔의집에 세워져 있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흉상(사진 제공=나눔의 집)
◇서울중앙지법 재판부가 3개월 전 같은 법원에서 선고된 판결과 달리 국제법상 국가면제 이론을 적용해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을 각하했다. 사진은 경기도 광주시의 나눔의집에 세워져 있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흉상(사진 제공=나눔의 집)

상소될 경우 상급심의 판단이 주목되는 가운데 민사15부가 민사34부와 정반대로 국가면제를 인정한 이유를 판결문을 토대로 상세히 분석했다.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고 일본 정부에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민사34부의 판결에 대해 일본 정부가 항소하지 않아 판결은 그대로 확정되었으나, 민사15부 판결이 나온 후 일본 정부는 "이번 판결이 주권면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을 인정했다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재판부는 먼저 국가면제에 관한 현 시점의 국제관습법으로 독일 정부와 이탈리아 정부 사이의 국제사법재판소(ICJ) 판결을 소개했다. 이탈리아 법원이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고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에 체포되어 독일의 군수공장에서 강제노역을 한 이탈리아 국적의 페리니(Luigi Ferrini)가 낸 소송에서 독일 정부에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고, 2차 대전 중 독일군의 민간인 살해 등 행위에 관하여 그 유족이 그리스 법원에 독일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내 승소한 디스토모 판결에 기해 이 판결의 원고가 이탈리아 영토에 있는 독일 정부 소유 재산(Villa Vigoni)에 대해 강제집행 승인을 신청하고 이탈리아 법원이 이를 승인한 것과 관련, 독일 국가면제에 관한 국제법을 위반하였다고 주장하며 이탈리아를 ICJ에 제소한 사건이다.

ICJ, 독일에 대한 국가면제 인정

이 사건에서 ICJ는 2012. 2. 3. 재판관 15인 중 12:3의 다수의견으로 이탈리아의 주장을 모두 배척하고, 독일에 대한 국가면제가 인정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ICJ 다수의견은, 이탈리아가 주장하는 '무력 분쟁 과정에 법정지국의 영토 내에서 외국의 군대 또는 그와 협력하는 외국의 국가기관에 의하여 이루어진 행위', '강행법규 위반으로 인한 심각한 인권 침해 행위'에 관하여 국가면제를 부정하는 것이 각국의 입법 판결 등에 의하여 일반적인 관행에 이를 정도로 뒷받침된다고 볼 수 없고, 오히려 대다수 국가의 법원은 이러한 사안에 대하여도 국가면제를 인정하고 있다고 보았으며, '원고들에게 다른 권리구제수단이 없어서, 독일을 상대로 이탈리아 법원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원고들의 최후의 권리구제수단이 되므로 독일에 대하여 국가면제가 인정되어서는 아니된다'는 이탈리아의 주장에 대해서도, "외국을 상대로 자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최후 수단'인지 여부가 외국에 대한 국가면제 인정 여부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받아들이지 않았다.

민사15부는 이어 "ICJ 판결의 다수의견은, '법정지국의 영토 내에서 무력 분쟁 과정에서 외국의 군대 또는 그와 협력하는 외국의 국가기관에 의하여 이루어진 행위'에 대하여는 여전히 국가면제가 인정된다고 판단하였다"며 "위안부 사건에서 문제 된 피고의 행위 중 위안부 차출행위 부분은, 피고의 불법적인 식민지 지배로 일시 피고가 지배하였던 대한민국 영토 내에서, 피고의 중 · 일 전쟁 및 태평양 전쟁 중 무력 분쟁 시기에, 병력의 전투력 보존 등을 위한 군사적 목적에서, 피고 군대의 요청에 따른 총독부, 경찰 등 군대와 협력하는 기관에 의하여 이루어진 행위로 ICJ 다수의견 법리의 요건을 충족한다"고 밝혔다. 또 "원고들은 당시 대한민국은 피고의 교전 상대국이 아니었고, 한반도는 전선에서 제외되어 무력 분쟁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지지 아니하였으므로 위 법리가 적용될 수 없다고 주장하나, ICJ 판결 다수의견이 위와 같은 행위에 관하여 국가면제를 인정한 취지는, 단순히 무력 분쟁 과정에서 예측 불가능한 손해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①무력 분쟁은 주권 행사로서의 성격이 매우 강한 행위로서, 국가면제의 인정 근거 중 주권 존중의 요청이 가장 강한 영역이고, ②무력 분쟁이 발생하면, 평시 국제법이 아니라 전시 국제법이 적용되기 때문"이라며 "원고들도 피고 국민이 아닌 이상, 전시 국제법이 보호하는 민간인의 범위에서 제외된다고 볼 수 없고, 따라서 이와 다른 전제에 선 원고들의 주장은 이유 없고, 이 사건도 ICJ 판결 다수의견의 법리가 제시한 요건을 충족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결국 현 시점에서의 국제관습법에 관하여 ICJ의 명시적 판단이 담긴 ICJ 판결의 다수의견이 판단한 '무력 분쟁 중 법정지국 영토 내 불법행위'의 요건을 충족하므로, 피고에 대하여 국가면제가 인정되고, 대법원 1998. 12. 17. 선고 97다39216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선언한 바와 같이 국가의 주권적 행위는 다른 국가의 재판권으로부터 면제되는 것인데, 제2차 세계대전 수행 과정에서 피고 군대와 행정기관을 동원하여 이루어진 피고의 행위는 주권적 행위라고 보아야 하므로 피고에 대하여 국가면제가 인정된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대법원 전원합의부는 97다39216 판결에서, "국제관습법에 의하면 국가의 주권적 행위는 다른 국가의 재판권으로부터 면제되는 것이 원칙이라 할 것이나, 국가의 사법적(私法的) 행위까지 다른 국가의 재판권으로부터 면제된다는 것이 오늘날의 국제법이나 국제관례라고 할 수 없다. 외국의 사법적 행위에 대하여는 당해 국가를 피고로 하여 우리나라 법원이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시, 제한적 면제론의 입장에 있다.

재판부는 피고의 행위는 강행법규를 위반하여 중대한 인권침해를 초래한 것으로서 '주권적 행위'로 볼 수 없다는 원고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어느 국가의 주권 행사가 강행규범에 위반했다면, 그 행위는 위법한 주권 행사가 될 뿐이지, 그 행위의 주권적 행위로서의 성격을 상실하는 것은 아니다"며 받아들이지 않고, 피고에게 국가면제를 인정하는 것은 대한민국 헌법질서에 반하므로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고들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법원으로서는 이 사건에서 한국 법원이 피고에 대하여 재판권을 갖는지 여부에 관하여, 한국 헌법과 법률 또는 이와 동일한 효력을 갖는 국제 관습법에 따라 판단할 수밖에 없으므로, 현재의 규범에 의하면 외국인 피고를 상대로 그 주권적 행위에 대하여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고, 이러한 결과가 한국 헌법에 반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2015년 한 · 일 합의 존속 유효

재판부는 특히 이와 관련,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 행사로 볼 수 있는 2015. 12. 28. 한 · 일 합의에 의하여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대체적인 권리구제수단'이 존재한다며 위 합의는 현재도 대한민국과 피고 사이에 유효하게 존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원고들은 "일본 법률 제10조가 피고 영토 내 불법행위로 인한 인신 손해 등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에 관하여 외국에 대한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아니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며 상호주의에 따라 피고에 대한 국가면제가 인정되어서는 안 된다고도 주장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국가면제에 관한 상호주의 적용이 국제사회에서 확립된 관행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국제관습법은 국제사회에서 어떠한 관행이 일반적인 관행으로 자리 잡아 법적 확신에 의하여 뒷받침될 때 이에 동의하지 아니하는 국가에 대하여도 구속력을 갖는 것으로서, 일부 국가가 이에 동의하지 아니한다는 사정만으로 당연히 그 규범적 구속력을 상실하지 아니하므로, 구체적인 사건에서 문제 된 상대 외국이 그러한 국제관습법에 동의하지 아니하는 국가라는 사정만으로 법정지국에 대한 국제관습법의 구속력이 상실된다거나 또는 국제관습법과는 다른 상대 외국의 법률에 따라 국가면제를 인정하여야 한다고 볼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유효한 국가면제에 관한 국제관습법과 이에 관한 대법원 판례의 법리에 따르면, 외국인 피고를 상대로 그 주권적 해위에 대하여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 재판부의 결론이다. 재판부는 소송비용도 원고들이 부담한다고 판결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