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위조 사실 쉽게 알아볼 수 있으면 공문서위조죄 불성립"
[형사] "위조 사실 쉽게 알아볼 수 있으면 공문서위조죄 불성립"
  • 기사출고 2021.03.18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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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일반인 기준으로 판단"

평균수준의 사리분별력을 갖는 사람이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살펴보면 위조 사실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면 공문서위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제주도에 있는 콘도미니엄의 수분양자인 중국 국적의 A씨는 콘도미니엄을 분양한 회사가 콘도미니엄 분양과 관련하여 계약 내용을 정확히 고지하지 않았고 시공품질이나 부대시설이 당초 설명과 다르며 관리비 사용내역을 공개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일부 입주민들을 모아 B위원회를 구성하여 대표로 선출된 뒤, 2016년 6월 B위원회가 정부 기관에서 실체를 인정받아 직인이 등록된 단체라는 점을 꾸미기 위해, 주민센터에서 가져온 행정용 봉투에 미리 제작하여 둔 위원회의 한자 직인과 한글 직인을 날인한 다음 주민센터에서 발급받은 자신의 인감증명서 중앙에 있는 용도 공란 부분에 이를 오려 붙이는 방법으로 인감증명서를 위조한 혐의(공문서위조)로 기소됐다. A씨는 이와 같이 위조한 인감증명서를 휴대전화로 촬영한 사진 파일을 위원회에 가입한 수분양자들이 참여하는 위챗 메신저 단체대화방에 게재하여 행사한 혐의(위조공문서행사)로도 기소됐다.

1심에 이어 항소심 재판부는 "행사의 상대방이 대부분 중국인이어서 국내에서 국문으로 작성된 공문서의 외관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문서의 외관이 다소 조악하다고 하더라도 이를 진정한 공문서로 오인할 가능성이 큰 점 등의 사정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작성한 인감증명서는 공문서로서의 외관을 갖추었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공문서위조와 위조공문서행사 유죄를 인정하고, 술을 마셔 수영장에 입장할 수 없다고 하자 소리를 지르고 현관 유리문을 발로 차는 등 소란을 부리며 서귀포시에 있는 수영장의 시설관리 업무를 방해한 혐의 등과 함께 징역 6월과 벌금 15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A씨의 상고로 열린 상고심(2019도8443)에서 대법원 제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12월 24일 원심을 깨고, 공문서위조 · 동행사 혐의는 무죄라는 취지로 사건을 제주지법으로 되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일반인으로 하여금 공무원 또는 공무소의 권한 내에서 작성된 문서라고 믿을 수 있는 형식과 외관을 구비한 문서를 작성하면 공문서위조죄가 성립하지만, 평균수준의 사리분별력을 갖는 사람이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살펴보면 공무원 또는 공무소의 권한 내에서 작성된 것이 아님을 쉽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공문서로서의 형식과 외관을 갖추지 못한 경우에는 공문서위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전제하고, "위조문서행사죄에 있어서 행사라 함은 위조된 문서를 진정한 문서인 것처럼 그 문서의 효용방법에 따라 이를 사용하는 것을 말하고, 위조된 문서를 진정한 문서인 것처럼 사용하는 한 그 행사의 방법에 제한이 없으므로 위조된 문서를 스캐너 등을 통해 이미지화한 다음 이를 전송하여 컴퓨터 화면상에서 보게 하는 경우도 행사에 해당하지만, 이는 문서의 형태로 위조가 완성된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공문서로서의 형식과 외관을 갖춘 문서에 해당하지 않아 공문서위조죄가 성립하지 않는 경우에는 위조공문서행사죄도 성립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또 "위조 여부, 즉 공문서의 형식과 외관을 갖추었는지 여부는 피고인이 만든 문서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며, 공문서위조죄의 보호법익은 공문서의 진정에 대한 공공의 신용이므로 공문서로서의 형식과 외관을 갖추었는지 여부는 평균수준의 사리분별력을 갖는 일반인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고, 피고인이 행사의 상대방으로 구체적으로 예정한 사람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A씨가 오려 붙인) 인감증명서의 용도란은 인감증명서의 다른 부분과 재질과 색깔이 다른 종이가 붙어 있음이 눈에 띄고, 다른 부분의 글자색은 모두 검정색인 반면 오려 붙인 부분의 글자색은 파란색이며, 활자체도 다른 형태이고, 인감증명서의 피고인 인감은 검정색인 반면 피고인이 용도란에 날인한 한자 직인과 한글 직인은 모두 붉은 색"이라며 "위와 같이 피고인이 만든 문서는 공무원 또는 공무소가 B위원회를 등록된 단체라거나 피고인이 위 단체의 대표임을 증명하기 위해 작성한 문서라고 보기 어렵고, 평균수준의 사리분별력을 갖는 사람이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살펴보면 위 사실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만든 문서가 공문서의 외관과 형식을 갖추었다고 인정하기 어려워 공문서위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어 "피고인이 만든 문서가 공문서로서의 외관과 형식을 갖추지 못하여 공문서위조죄가 성립한다고 보기 어려운 이상, 이를 사진촬영하여 그 파일을 메신저 단체대화방에 게재한 행위가 위조공문서행사죄에 해당한다고 할 수도 없다"고 판시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