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통신] 이란의 한국케미호 나포
[중동통신] 이란의 한국케미호 나포
  • 기사출고 2021.02.01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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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결과 발표 직후 조 바이든 당선자는 이란 핵협정(JCPOA) 복원을 공약했다. 그러나 실제로 대이란 경제제재가 해제되고 핵협정이 복원되기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작년 11월 27일 이스라엘이 개입된 암살시도라고 추측되는 사고로 이란의 핵과학자가 사망했고, 이란 최고지도자가 보복의지를 천명하자마자 바그다드에서 미국 대사관에 대한 로켓탄 공격이 있었으며, 이에 미국은 전략폭격기와 핵잠수함을 페르시아만 인근에 띄웠다. 1월 4일 이란은 우라늄 농축도를 더욱 올리겠다고 발표하면서 한국케미호를 나포했다.

◇배지영 변호사
◇배지영 변호사

한국케미호의 나포가 이란이 주장하는 해양오염 관련 기술적 문제 때문인지, 한국내 동결자금의 반환을 위한 압박인지, 그도 아니면 미국과 이란 간의 보다 거시적인 관계를 염두에 둔 전략적인 시도인지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진심은 감추라고 있는 것이다

이란인의 언어로부터 그 진정한 의도를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 이란의 핵개발 이슈가 가시화되던 15년 전 뉴욕타임즈는, "서양의 언어는 80%가 지시적이지만, 이란의 언어는 80%가 암시적"이라는 기사를 낸 적이 있다. 터로프(상대방을 높이고 자신을 낮추는 이란의 빈말문화)를 비롯하여 진정한 의도를 드러내지 않는 이란의 문화는, 잦은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목숨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삶의 방식이자 이슬람 내 소수세력으로서 신앙을 숨겨야 했던 종교적 유래를 가진다고 설명하였다. 또한 이러한 이란 문화가 자신의 패를 내보이지 않는 기술이 중요한 외교의 세계에서 협상의 우위를 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분석을 덧붙였다. 실제로 이러한 이란의 협상력을 바탕으로 2015년에 JCPOA가 타결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오랫동안 고립되어 있기도 했다

2018년 이후 궁극적으로 JCPOA가 무력화된 것은 이란의 잘못이 아니다. 아쉬운 점은, 미국이 탈퇴하기 전에도 JCPOA는 이란(및 그와 교역하고자 했던 미국 이외의 국가들)이 기대했던 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Secondary Sanctions이 해제되면 미국 외 국가들과 이란 간의 족쇄가 풀릴 것이란 예상과 달리, Primary Sanctions이 미국을 넘어 다른 국가들의 이란과의 거래를 제한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행일 이후 드러났다.

미국이 이러한 상황을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 그리고 이란이 이러한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그러나 진실은 언제나 드러난 것의 이면에 따로 존재한다는 이란식 사고방식이, JCPOA의 문자화 과정에서 당사자들간의 의도를 명확히 현출하고 적용시키는 메커니즘을 소홀히 하게 만든 측면도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게다가 이란은 오랜 기간 동안 국제무대에서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영위하지 못했다.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이란은 줄곧 국제적 제재의 대상이었고, 그 기간 동안 이란 내부의 사람들이 일반적인 국제금융 및 국제거래 관행을 습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JCPOA가 적용되는 구체적인 메카니즘을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물론 당사국인 유럽 국가들도 사전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모두가 사전에는 잡아내기 어려운 복잡한 이슈였을 수도 있다). 필자와 교류했던 이란의 유능한 경제/법률 전문가들도 제재의 작용 국면을 피상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계약이나 법령상의 문구를 천착하여 이를 정비하고자 하는 노력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는 성향도 이란이 JCPOA의 작동방식을 잘못 예상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이란의 법령들은 오래되고 추상적이며 시기와 담당자에 따라 다르게 운영되는 경우가 많아 그 적용결과가 어떨지 예측하기가 어렵다(소위 반드시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다). 이란 헌법상 모든 실정법의 근원인 이슬람법은, 법적인 안정성이나 예측가능성보다는 구체적 정의를 실현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음을 자랑한다. 결국 법령의 문구가 아니라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의지가 올바른 판결에 도달하는 데 중요하다.

이란 사람들도 계약서에 의거해 거래를 하기는 하나, 길고 복잡한 계약서를 작성하는 경우는 드물다. 한국케미호와 관련한 이란 정부 인사의 발언 중, 미국 제재의 현실적 벽이 아무리 높다고 하더라도 한국이 정치적 의지만 있다면 한국 내 이란자금을 풀어줄 수 있다는 내용이 이와 유사한 맥락일 듯도 하다.

그래서 이란이 한국에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필자는 2015년부터 줄곧 이란 관련 업무에 관여해왔고, 3년간은 이란에 거주하면서 JCPOA와 운명을 같이했다. 초강대국의 정상들이 서명하고 여러 겹의 안전장치를 둘렀다고 자랑했던 협정에 중대한 이행상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법적으로 무효화되고 더 강한 제재가 다시 도입되기까지, 필자 주변의 현명한 지인들이 고민하며 내놓았던 정치적 예상들은 큰 틀에서 빗나갔다. 그 경험으로 인해, 필자가 정치전문가가 아니기도 하지만, 나름대로나마 핵협정의 운명을 예측해 보겠다는 야심찬 포부도 없다. 다만,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간의 사건들이 이렇게 예상 밖으로 흘러오게 된 것은 위와 같은 좀 생뚱맞은 이유들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1월 4일 이란 혁명수비대에 의해 나포된 한국케미호(사진 제공=타이쿤쉽핑)
◇1월 4일 이란 혁명수비대에 의해 나포된 한국케미호(사진 제공=타이쿤쉽핑)

한국케미호 사태를 둘러싼, 아니 그 상당히 이전부터 계속되어 왔던 이란 정부의 한국에 대한 공격적인 언사 이면의 진심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미국과의 관계를 염두에 둔 전략적인 포석이라는 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

한국 정부의 그간의 태도에 진심으로 서운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란의 성에는 차지 않았을지언정 한국 정부가 아예 손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란 측이 한국 정부에 대놓고 여러 번 경고 메시지를 보냈음에도 한국 정부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는 비난도 있으나, 그 메시지들에 어떠한 속마음이 숨겨져 있는지 읽어내기도 쉽지 않거니와 적극적으로 대응했다고 사태가 크게 달라졌을 것인지도 좀 의문이다.

한국케미호 사건 이후 이란 정부의 기본적인 레토릭은 "한국이 이란인의 음식과 약을 사는 데 쓸 돈을 빼앗았다"는 것인데,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이란이 한국 내 동결 자금으로 백신을 확보하는 방안을 미국과 협의해 이미 미 재무부에서 특별승인을 받았다고 한다. 유럽과 일본은 이란으로 송금을 하는데 한국은 왜 못하느냐는 타박은 수도 없이 들었고, 그 이유에 대해서도 역시 수도 없이 설명했으나 변명으로 치부되었다(이번 한국케미호 나포 국면에서 이란 중앙은행 총재가 이를 다시 한 번 언급했다). 어떤 식의 대응을 했더라도, 미국의 극적인 태세전환이 없는 한, 유사한 사태가 발생했을 것이라는 예상도 충분히 가능하다.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에 맞추어 이란 외무장관이 22일 미국의 새 행정부에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부과된 대이란 제재를 조건 없이 해제하라고 요구했다. 그 이전엔 제재로 인한 이란의 손해를 배상하라는 주장도 수차례 했다. 한국에 대해서는 동결자금에 대한 이자를 지급하라고도 했고, 동결자금으로 (한국 정부의 주장에 의하면 이란이 먼저 요청했다고 하는) 앰뷸런스를 구입하는 것은 거부한다고 했다.

이중 어느 것이 그냥 던져 본 카드이고, 어느 것이 끝까지 들고 갈 카드인지 두고 봐야 알 일이다. 어쩌면 모두 버리고 바닥에 있는 다른 카드를 집어 다시 시작할 지도 모른다. 나포된 선원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며, 더불어 이번 기회에 한국에 동결된 이란 자금을 적절한 목적으로 사용할 방안을 양국이 모색하고, 더 나아가 이란이 미국과 새로운 핵협상의 물고까지 틀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서, 우리를 고생시킨 보답도 이란이 서운치 않게 하기를 기대해 본다.

배지영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 jiyoung.bae@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