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 심야에 검은 옷 피해자에 전치 6주 뺑소니…몰랐으면 무죄
[교통] 심야에 검은 옷 피해자에 전치 6주 뺑소니…몰랐으면 무죄
  • 기사출고 2020.05.22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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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동부지원] "전조등 안 켠 채 통화중…몰랐을 가능성 상당"

심야에 보행자를 치는 사고를 냈으나 사고를 낸 줄 모르고 지나쳤다. 뺑소니로 처벌할 수 있을까.

부산지법 동부지원 이덕환 판사는 4월 17일 뺑소니 즉, 특가법상 도주치상 혐의로 기소된 A(여)씨에게 이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고, 나머지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만 남는데,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했다며 공소기각 판결했다(2019고정356).

A씨는 2019년 1월 4일 자정 무렵 SM5 승용차를 운전하여 부산 해운대구의 주택가 이면도로를 달리던 중 차량 조수석 측면으로 길 가던 B(여 · 59)씨의 허벅지를 치고 그대로 달아난 혐의로 기소됐다. 쓰러진 B씨는 어깨 쇄골부위가 골절되는 전치 6주의 부상을 입었다. A씨는 B씨에게 사과하고 합의를 하였지만, 사고발생 사실을 전혀 몰랐다며 뺑소니 혐의를 극구 부인하며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 판사는 "사고 당시 촬영된 CCTV 영상 등에 의하면 피해자는 피고인 차량 진행방향 우측에 주차된 차량 앞에서 검은 옷을 입고 걸어가고 있었고 당시 피고인의 차량은 전조등을 켜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피고인은 피해자를 보지 못하였을 가능성이 있다"며 "운전자가 교통사고 발생사실을 인지한 경우, 차량을 잠시 멈추거나 속도를 줄이는 것이 일반적인데,  사고 당시 피고인의 차량은 피해자를 충격한 후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그대로 진행하였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은 사고 당시 건강 및 정신상태가 정상적이지 않았고 전화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고를 인지하지 못했다고 변소하는데, 실제로 사고가 발생하기 전인 2019. 1. 1.부터 2019. 1. 3.까지 피고인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음이 인정되고, 사고 즈음에 피고인이 김 모씨와 수차례 통화한 것으로 보이는바, 이러한 사정은 피고인의 변소에 부합한다"며 "피고인의 비정상적인 건강상태, 전화 통화 등으로 인해 피고인이 사고를 인지하지 못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A씨는 사고 직후 주거지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후 차량 앞을 확인하는 행위를 했고, A씨는 이에 대해 주차장 앞에 있던 폐가구에 차량이 부딪혔는지 확인하려 하였다고 주장했다.

이 판사는 "위 주차장 앞에는 실제로 폐가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피고인이 위와 같이 차량 앞을 확인한 시간은 몇 초에 불과하여 사고와 관련한 차량 상태를 확인하기에는 너무 짧은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의 변소가 사실일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보았다.

이 판사는 "당시 피고인이 음주나 무면허 상태에 있다고 볼 정황도 없고, 종합보험에 가입되어 있어 사고에 대한 보험처리도 가능한 상황이었으므로, 피고인이 도주할 이유를 상정하기도 어렵다"며 "피고인이 당시 사고의 발생사실을 몰랐을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A씨를 변호한 법률구조공단의 강청현 변호사는 "한부모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고 건강마저 좋지 않은 한 여성이 억울하게 뺑소니범으로 몰려 오랜기간 수사와 재판을 받아야 했다"며 "뺑소니범은 강력하게 처벌해야 하지만 억울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했다.

리걸타임즈 이은재 기자(eunjae@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