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개인과 기업 모두 활동이 많이 움츠러들었지만 회사들의 정기주주총회 시즌은 어김없이 왔고, 대다수의 상장회사들이 예전과 다름없이 3월 중에 집중적으로 정기주주총회를 개최하였다. 2020년도 정기주주총회의 주요 특징이나 쟁점을 2회에 걸쳐서 다루어 보고자 한다.
1. 전자투표제 활성화
지난호 글에서 예측한대로, 전자투표제의 이용이 예년에 비하여 크게 늘어난 반면, 정부의 다중모임 자제권고에 따라 주주총회 실제 참석자는 크게 줄었다고 한다.
968개사에서 전자투표 이용
보도에 의하면 전자투표제를 이용한 회사는 968개사로 지난해보다 314개사 늘어났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CJ, 포스코 등 많은 대기업이 전자투표제를 채택했다.
실무적으로 전자투표는 회사들이 전자투표관리기관과 계약을 맺고, 주주들은 전자투표관리기관이 제공하는 플랫폼을 통해 본인 인증 절차를 거쳐 의결권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국내 전자투표 플랫폼은 예탁결제원의 K-eVote가 사실상 독점해오고 있었으나, 최근 민간 증권사들도 전자투표 플랫폼 시장에 진입하여 플랫폼 V(미래에셋대우), 온라인 주총장(삼성증권) 등을 출시하든 등 전자투표 플랫폼이 예전보다 다양해지고 있다. 예탁결제원과 민간 증권사들의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상장사 입장에서는 서비스 품질 향상과 수수료 인하 등의 혜택을 얻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간편인증방법도 도입
뿐만 아니라 전자투표 행사 환경의 개선을 위하여, 전자투표시스템에서 본인 인증 시 공인인증서 외에 지문인증으로도 인증이 가능한 간편인증방법이 도입되었고, 일부 증권사에서는 예탁결제원과 업무 협약을 맺어 증권사 트레이딩 시스템을 통하여 예탁결제원 홈페이지에 접속하지 않고도 바로 전자투표 가능 종목을 조회하고 전자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서비스를 개시하기도 하였다.
아직까지는 전자투표제가 보편화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운데, 한 언론 보도에 의하면 전자투표를 이용한 주주는 1%에도 미치지 못했고, 주식 수로는 4.8%에 불과했다고 한다. 올해 주주총회에서 전자투표제의 이용이 늘어난 것은 물론 코로나19의 영향이 가장 크겠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전자투표제가 더욱 활성화되어 소수주주의 의결권 행사 기회가 더욱 보장될 수 있도록 문화가 개선되길 기대해본다.
한편 전자투표제에서 더 나아가 온라인(전자) 주주총회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그간 전자주주총회는 과도한 비용과 의사 운영의 어려움, 보안 등의 문제로 자주 논의되지는 않았다. 전자주주총회는 이미 서구에서는 많이 이용되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터키에서는 전자주주총회가 의무화되어 있다고 한다), 각종 화상회의와 온라인 강의 등 이른바 언택트(untact) 트렌드가 발 빠르게 자리잡아가고 있는 만큼 코로나19 시대 이후로는 더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2. 사외이사 임기제한 제도의 도입
사외이사가 한 회사 또는 계열회사에 장기간 재직할 수 없도록 하는 사외이사 임기제한 제도가 올해부터 시행되었다. 개정 상법 시행령에 따르면 "해당 상장회사에서 6년을 초과하여 사외이사로 재직했거나 해당 상장회사 또는 그 계열회사에서 각각 재직한 기간을 더하면 9년을 초과하여 사외이사로 재직한 자"는 상장회사 사외이사의 결격사유에 해당되어 직을 상실한다(상법 시행령 제34조 제5항 7호). 나아가 임원 후보자에 대한 충실한 검증기반 마련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주주총회 소집통지 시 후보자의 최근 5년 이내의 체납사실, 부실기업의 임원으로 재직한 적이 있는지 여부, 법령상 결격사유 유무를 함께 기재하도록 했다(상법 시행령 제31조 제3항).
본 시행령은 시행일인 2020년 1월 29일 이후 선임하는 사외이사부터 적용되기 때문에, 올해 정기주주총회에서 임기가 만료되는 사외이사들은 위 6년 또는 9년 요건에 해당하는 경우 재선임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에 상장회사들은 3월 정기주주총회 시즌에 앞서 신규 선임할 사외이사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고 한다. 주주총회 2주 전까지는 새로운 후보자를 발굴하여 자격 검증을 마치고 소집통지서에 기재해야 하는데, 유예기간 없이 즉시 시행령이 1월 29일자로 시행됨에 따라 회사에 주어진 시간이 1달 반으로 촉박하게 된 것이다.
718개 사외이사 자리 새로 생겨
본 시행령이 유예기간 없이 바로 적용됨에 따라 상장사 556개에서 718개의 사외이사 자리가 새로 생겨났다고 하는데, 실무에서는 사외이사 인력풀의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일부 기업은 장기 연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하여 사외이사의 과반수를 교체하였으며,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의 대규모 상장회사 중에서는 사외이사 전부가 교체된 사례도 있다고 한다.
위 개정 상법 시행령은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상의 금융회사 사외이사에 대한 제한을 동일하게 가져온 것인데(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제6조), 금융질서 보호를 위해 엄격한 감독이 요구되는 금융회사와 달리 일반 상장회사에 대해서까지 획일적으로 이러한 규제를 적용할 필요성이 과연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볼 문제라고 여겨진다.
장기 연임한 사외이사의 경우 경영진으로부터의 독립성 유지가 어렵다는 비판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업의 사적 자치와 사외이사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아닌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경영학계에서는 사외이사의 재직기간이 어느 정도 길어야 그 효과가 긍정적이라고 한다. 특히 사외이사의 재직기간이 7~18년일 때 그 가치가 가장 높다는 연구도 있다고 한다. 필자 개인의 경험으로는, 법률가가 사외이사인 경우, 그 개인이 특출난 사람이 아닌 다음에는 최소한 4~5년은 사외이사로 재직해야 그 회사의 비즈니스나 현황, 주된 문제점 등에 좀 익숙해지는 것 같다.
참고로 한 연구소에서 올해 30대 그룹 소속 상장기업의 사외이사 선임 안건을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후보자의 현직 분포에는 법무법인과 회계법인에 소속된 사람이 27.2%, 교수가 42.2%, 기업인이 11.6%의 비중을 차지했다고 한다. 2019년 현직 분포가 법무법인과 회계법인에 소속된 사람 25.7%, 교수 34.6%, 기업인19.6%의 비중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기업인의 비중이 낮아지고 법무 · 회계 · 교수 등 비기업인의 선임이 증가하는 추세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추세하에서 사외이사의 선임 주기를 단축시키는 본 시행령은 비즈니스에 익숙하지 않은 일부 사외이사가 본인이 가진 능력을 십분 발휘하는 데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게 되는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물론 오죽하면 법령으로 임기를 제한하려고까지 할까 하는 점에 생각이 미치면, 위와 같은 제한을 강제하고자 하는 규제당국의 입장도 조금은 이해는 된다.
3. 역대 최대 감사 선임 부결
(1) 현황
코로나19 사태로 소액주주의 주주총회 참석률이 크게 줄어들면서, 올해 정기주주총회 시즌은 역대 최대의 감사 선임 안건 부결을 기록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와 코스닥협회에 의하면, 12월 결산 상장회사 2029곳(코스피 754개사 · 코스닥 1275개사) 중 올해 주주총회에서 의결 정족수 미달로 안건이 부결된 회사는 총 340개사(16.8%)로 집계됐다고 한다. 이중 감사(위원)선임 안건이 315건으로 92.6%를 차지했다.
감사 선임 315건 부결
법률 또는 정관에 정한 감사의 수를 결한 경우, 임기의 만료 또는 사임으로 퇴임한 감사는 새로 선임된 감사가 취임할 때까지 감사의 권리와 의무를 지기 때문에(상법 제386조, 제415조), 감사 선임에 실패한 회사들은 기존 감사가 직무를 계속하여 수행한다. 선임이 불발되어 계속하여 직무를 수행하는 감사들을 두고 우스갯소리로 '종신 감사'라는 얘기가 나오기도 한다.
감사 선임 안건이 가장 빈번히 부결되는 이유는 아래에서 설명하는 이른바 감사(감사위원 포함) 선임에 대한 3%룰 때문이다. 감사 선임에 실패한 경우 기존 감사는 해임되지 않는 이상 계속하여 직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새로운 인재 영입을 기대하였던 회사로서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
감사 선임이 거듭하여 부결될 경우 매번 새로운 후보를 찾는 데에도 많은 비용이 소요될 것이다. 또한 상장회사의 경우, 감사위원회 구성에 결원이 발생하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될 수 있고 상장폐지의 위험이 발생한다. (다만, 결원이 발생한 사유가 주주총회 정족수 미달로 발생한 경우라면 전자투표제도 도입, 의결권대리행사 권유, 기관투자자 등에 의결권 행사 요청 등 주주총회 성립을 위한 조치를 한 경우에는 관리종목으로 지정되지 않는다(유가증권시장 상장규정 제47조, 코스닥시장 상장규정 제28조). 이에 따라 대다수 상장회사들은 위 조치를 이행함으로써 부결로 인한 위험을 줄이고 있다.)
(2) 감사 선임 시 3%룰의 법리
의결권 없는 주식을 제외한 발행주식총수의 3%를 초과하는 수의 주식을 가진 주주는 그 초과하는 주식에 관하여 감사 선임 시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한다(상법 제409조). 예를 들어,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 총수의 30%를 가진 최대주주와 16%를 가진 2대주주가 있더라도, 감사 선임 시에는 각각 동일하게 3%만을 행사할 수 있다. 상장회사의 경우 감사 또는 사외이사가 아닌 감사위원회 선임 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합산하여 3% 초과 여부가 판단된다(상법 제542조의12 제3항). 최근 사업연도 말 현재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의 상장회사의 주주는 사외이사인 감사위원회위원을 선임할 때 3% 초과 주식에 대하여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한다(상법 제542조의12 제4항).
발행주식총수 4분의 1 찬성 있어야
이때 감사 선임 안건이 부결에 이르게 되는 이유는 정족수의 부족 때문이다. 감사 선임 안건이 통과되려면 발행주식총수 4분의 1의 찬성 및 출석주식수 과반의 찬성이 요구되는데,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높고 소액주주의 참여가 적을수록 위 발행주식총수의 4분의 1의 찬성의 요건을 만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발행주식총수가 100주인 상장회사에서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이 63주, 소액주주가 37주를 보유한 회사를 가정해보자.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은 전원 참석, 소액주주는 5주가 전원 참석하여 감사 선임 안건에 대해서 찬성했다. 3%룰에 따라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은 3%인 3주까지만 의결권 행사가 가능하며, 발행주식총수는 3% 초과 주식을 제외한 40주로 조정되기 때문에(3주+37주) 10주 이상이 찬성하여야 안건이 가결된다. 본 사례에서는 최대주주 측과 소액주주 합계 8주만이 찬성하였으므로 감사 선임 안건은 부결되게 된다.
(3) 감사 선임 시 의결권 계산에 관한 최근 판례
참고로 2011년 개정된 현행 상법 조항은 3% 초과 주식에 대하여는 위 보통결의의 요건에 관하여 출석 주식수에는 산입하지 아니한다는 규정을 두면서, 발행주식수에는 그러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상법 제371조). 규정을 그대로 따르면 발행주식총수에는 3% 초과 주식이 산입되게 되는데, 예컨대 어느 최대주주가 발행주식총수의 78%를 초과하여 소유하는 경우, 3%를 제외한 나머지 75% 이상의 주식에 대하여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어 '발행주식총수 4분의 1의 찬성'이라는 요건의 충족 자체가 원천 불가하게 된다. 이에 최근 판례는 감사 선임 시 3% 초과 주식은 상법 제371조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발행주식총수에 산입되지 않는다는 해석을 내림으로써 위 제371조의 개정 당시부터 학계가 지적하였던 입법 오류를 해결한 바 있다(대법원 2016. 8. 17. 선고 2016다222996판결).
경제단체들, 의결정족수 완화 등 요구
그러나 판례가 일부 완화된 해석을 내려 실무가의 부담을 덜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3%룰에 의한 안건부결의 사례는 당분간 계속되어 축적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경제단체들은 3% 의결권 제한 자체의 폐지, 의결정족수의 완화 또는 2017년 폐지된 섀도보팅제도(의결권 미행사 주식에 대해 한국예탁결제원이 주총에참석한 의결권 행사 주식의 찬반 비율로 의결권을 행사해 주는 제도)의 부활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지배주주를 견제하고 소수주주의 의결권 행사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도입한 3%룰은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선임 부결 사태를 매년 발생시키는 주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궁극적으로는 소수주주의 보호와 회사실무상 어려움 간의 합의점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최영익 변호사(법무법인 넥서스, yichoi@nexuslaw.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