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타임즈 칼럼] 핸드백 형태 모방을 통한 부정경쟁행위의 성립
[리걸타임즈 칼럼] 핸드백 형태 모방을 통한 부정경쟁행위의 성립
  • 기사출고 2020.03.06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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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표 사용 안 했어도 부정경쟁행위 구성"

최근 온라인 상에서는 유명 브랜드 제품의 형태만을 모방하여 판매하면서 "*** st(style의 약자)" 등의 광고문구를 사용하는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다. 타인의 유명 브랜드 자체를 무단 사용하는 행위도 여전히 만연하고 있으나, 부정경쟁행위의 유형이 날로 다양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예를 들어 어린이 블록 완구로 유명한 L사의 제품을 모방한 수많은 제품들도 각자 고유의 브랜드를 사용하면서도 온라인 상에서 "중국 L**" 등의 검색어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권리자들은 이처럼 교묘하고 다양한 수법의 무상편승행위에 대해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부정경쟁방지법") 등을 바탕으로 철저히 스스로의 권리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브랜드 아닌 제품 형태만 모방

이번에 소개하는 사례(서울중앙지법 2019. 12. 20 . 선고 2019가합514066 판결) 역시 브랜드가 아닌 제품의 형태만을 모방한 제품을 온라인상에서 판매한 피고에 대해 원고가 부정경쟁행위의 금지를 구한 사안이다. 피고는 명품 업체인 원고의 주지 · 저명한 상품표지인 여성용 핸드백의 형태만을 모방한 제품을 온라인상에서 광고, 판매하였고, 이에 대해 원고는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가목, 다목, 카목을 근거로 금지 청구를 하였다.

◇김동원 변호사
◇김동원 변호사

원고의 핸드백은 인기가 매우 높은 반면 소량만이 제작되어, 소비자들이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한참을 기다려야 겨우 구입할 수 있는 품목이었다. 피고는 정작 원고의 상표는 제품에 전혀 부착하지 않고 원고 제품의 형태만을 모방한 핸드백 제품을 판매하였다.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원고 제품과 피고 제품은 사실상 동일한 형태를 지니고 있었는데, 구체적으로는 다이아몬드 퀼팅 패턴, 잠금장치 결합 부분, 전면과 후면 상단부에 위치하고 금속 링으로 마감 처리된 4개의 구멍, 핸드백 줄의 형태까지도 모두 동일하였다. 피고 역시 자신이 원고 제품의 디자인을 모방하였음을 다투지 않았으나, 로고만 사용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였다고 주장했다.

피고는 자신의 제품을 50만원이 넘지 않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원고 제품의 가격은 이보다 10배 이상 높다)에 판매함으로써 수 년간 영업상 이익을 얻고 있었다. 특히 피고는 원고 제품이 다양한 색상으로 판매되고 있음을 보고 자신의 제품 역시 여러 색상으로 구성하여 판매하였다. 결국 이 사건에서는 원고 제품의 형태 자체가 부정경쟁방지법에서 말하는 주지 · 저명 상품표지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주된 쟁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주지 · 저명 상품표지 여부가 쟁점

이 문제와 관련하여 대법원에서는 일찍이 "어떠한 특정 상품의 형태 자체가 장기간 계속적, 독점적, 배타적으로 사용되거나 지속적인 선전 광고 등에 의하여 그 형태가 갖는 차별적 특징 또는 미감이 거래자 또는 수요자에게 특정한 품질을 가지는 특정 출처의 상품임을 연상시킬 정도로 개별화되기에 이른 경우, 또는 어떤 상품의 형태와 모양이 상품에 독특한 개성을 부여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경우라면, 상품의 형태 자체에 대해서도 자타상품의 식별기능이 생기게 된다"고 설시하였다(대법원 2004. 11. 11. 선고 2002다18152 판결 등).

최근 제3자가 정식 연태고량주 병 형태와 유사한 병에 중국에서 수입한 고량주를 담아 판매한 사례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고량주 병 형태의 상품표지성을 인정하면서 "널리 인식된 고량주 병세트와 구성 및 디자인이 유사한 술병에 고량주가 담긴 제품을 수입, 판매하는 행위는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가목의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하기도 하였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9. 5. 30. 선고 2018가합 504499 판결).

나아가 대법원 2012.12.13. 선고 2011도6797 판결에서는 "비록 상품의 품질과 가격, 판매장소, 판매방법이나 광고 등 판매 당시의 구체적 사정 때문에 그 당시 구매자는 상품의 출처를 혼동하지 아니하였다고 하더라도, 구매자로부터 상품을 양수하거나 구매자가 지니고 있는 상품을 본 제3자가 그 상품에 부착된 상품표지 때문에 상품의 출처를 혼동할 우려가 있는 등 일반 수요자의 관점에서 상품의 출처에 관한 혼동의 우려가 있다면 그러한 상품표지를 사용하거나 그 상품표지를 사용한 상품을 판매하는 등의 행위는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가목 소정의 '타인의 상품과 혼동하게 하는 행위'에 해당한다"라고 설시하여, 소위 '구매 후 혼동'을 혼동의 한 유형으로 인정하였다. 이는 오리지널 제품과 혼동되는 짝퉁 상품을 판매하면서도 가격이 싸다는 이유 등을 들어 혼동 가능성이 없다고 하는 주장을 배척하기 위한 법리라고 할 수 있다. 이 사례에서도 피고 제품을 직접 구매한 사람들은 그것이 원고 제품이 아니라고 인식할 수 있겠지만, 위 구매자들이 소지하고 있는 피고 제품을 본 제3자는 이를 원고 제품으로 혼동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원고는, 수요자들이 자사 핸드백의 형태와 외관만을 보더라도 쉽게 그 제품의 출처를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그 형태 자체가 '상품의 출처표지'로서 기능할 수 있을 정도로 개별화 · 구체화된 식별력 있는 표지라고 주장하였다. 실제로 원고의 핸드백은 1955년 출시된 이래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60년 이상 판매되었고, 국내에서도 약 30년 전부터 판매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도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베스트셀러였다. 원고가 제출한 소비자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더라도, 전체 응답자 중 무려 70.6%(여성들로 한정하면 79.6%)가 원고 핸드백의 형태 또는 외관을 인지하고 있다고 답하였고, 56.6%는 그 형태만을 보고도 특정 브랜드의 제품으로 인식된다고 답하였다.

70.6%가 특정 브랜드 제품으로 인식

이러한 원고의 주장에 대해 법원에서는, 원고 제품의 독특한 디자인적 특성, 장기간에 걸친 계속적 제조, 판매 사실, 거래자들의 인식 등에 비추어 보았을 때 원고의 제품 형태는 출처표시기능과 아울러 주지성을 획득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피고 제품은 원고 제품과 패턴, 덮개 및 잠금잠치의 모양, 가방줄의 재질, 형태, 가방줄과 가방의 이음 부분인 구멍의 위치 및 개수, 가방 뒷면에 부착된 주머니의 모양 등이 매우 유사하여, 출처표시기능과 주지성을 획득한 원고 제품 형태가 갖는 모든 특징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므로, 피고가 피고 제품을 판매하는 행위는 원고 제품과 혼동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함으로써 원고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였다.

본 판결은, 제품 형태 자체가 주지성을 획득하고 출처표시 기능을 하고 있다면 이를 모방한 제품을 판매함으로써 제품출처에 대한 혼동 가능성을 초래하는 행위는 (설령 구체적인 브랜드 자체를 도용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부정경쟁행위를 구성할 수 있다는 기존의 법리를 재확인하면서, 특히 온라인 시장에 만연하고 있는 유명 제품들의 형태 모방행위에 대해 경종을 울린 사례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김동원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 dwkim@kimch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