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투자업등록을 하지 않은 사람과 맺은 투자일임계약도 유효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금융투자업등록을 하지 않은 투자일임업을 금지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규정은 강행규정이 아닌 단속규정에 불과하다는 취지다.
대법원 제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6월 13일 금융투자업등록을 하지 않은 이 모씨와 투자일임계약을 맺었던 김 모씨가 "투자일임계약은 무효이므로 부당이득금을 돌려달라"며 이씨를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2018다258562)에서 이같이 판시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확정했다.
김씨는 2012년 2월경 투자자문회사인 싱가포르 법인을 운영하는 이씨와, 김씨가 금융기관에 외환거래계좌를 개설하여 돈을 입금하면 이씨가 김씨로부터 투자를 일임받아 이를 운용하고 거기서 발생하는 수익 50%씩을 나누어 가지기로 하는 내용의 약정을 체결하고, 2012년 2∼3월 유진투자선물 3개 계좌(유진계좌)를 개설하고 미화 1,113,605.17 달러를, 같은해 7월 신한금융투자 계좌(신한계좌)를 개설하고 177,935.94 달러를, 두 달 후인 9월 하나대투증권 계좌(하나대투계좌)를 개설하고 600,000 달러를 입금한 후 각 계좌의 운용에 필요한 아이디, 비밀번호, 공인인증서를 이씨에게 전달하거나 알려주었다.
이씨는 계좌에 입금된 돈을 외환거래에 투자하여 2012년 2월부터 2013년 9월까지는 20억원이 넘는 투자 수익을 내었는데, 김씨와 이씨는 이 기간에 투자 수익이 발생할 때마다 이를 정산하여 수익의 50%씩 나누어 가졌다. 2013년 9월 중순까지 수익금으로 나누어 가진 금액은 각자 최소한 11억여원 이상씩이었다.
그런데 2013년 9월 말부터 이씨가 운영하던 계좌에 투자 손실이 발생하기 시작하자, 이씨가 2014년 3월 김씨에게 손실보전조로 9만 달러를 지급했으나, 김씨가 "이씨가 자본시장법에 따라 금융투자업등록을 하지 않아 이씨와 맺은 투자일임 계약이 무효이니 이씨가 받은 이익금에서 9만 달러를 뺀 금액을 부당이득으로 반환하라"며 일부청구로 1억 5000만원의 지급을 구하는 소송을 냈다. 이씨나 이씨의 싱가포르 법인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에 따른 금융투자업등록을 하지 않았다. 자본시장법 17조는 "누구든지 이 법에 따른 금융투자업등록(변경등록 포함)을 하지 아니하고는 투자자문업 또는 투자일임업을 영위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그러나 "자본시장법 17조가 금융투자업등록을 하지 않은 투자일임업을 금지하는 취지는 고객인 투자자를 보호하고 금융투자업을 건전하게 육성하고자 함에 있는바, 이 규정에 위반하여 체결한 투자일임계약 자체가 사법상의 효력까지도 부인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현저히 반사회성, 반도덕성을 지닌 것이라고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행위의 사법상의 효력을 부인하여야만 비로소 입법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볼 수 없고, 오히려 이 규정을 효력규정으로 보아 이에 위반한 행위를 일률적으로 무효라고 할 경우 거래 상대방과 사이에 법적 안정성을 심히 해하게 되는 부당한 결과가 초래되므로, 이 규정은 강행규정이 아니라 단속규정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전제하고, "같은 취지에서 자본시장법이 투자일임업의 미등록 영업자를 형사처벌하는 외에 미등록 영업자와 투자자 사이의 투자일임계약의 사법상 효력까지 부인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유로, (원고와 피고가 맺은) 투자일임 약정이 자본시장법이 금지하는 미등록 영업행위로서 무효라는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약정이 자본시장법이 금지하는 미등록 영업행위로서 무효임을 전제로 한 원고의 부당이득반환청구를 배척한 것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다만 "원고가 피고에게 손실분담 약정에 따라 지급을 구하는 각 계좌에 대한 손실분담금 채권은 채권액이 미국 달러화로 지정된 외화채권임이 분명하고, 원고가 이를 우리나라 통화로 환산하여 청구하고 있으므로, 외화채권인 미화 164,543.04 달러에 대하여 원심 변론종결 당시의 외국환시세를 기준일로 삼아 우리나라 통화로 환산한 금액의 지급을 명해야 한다"며 "그런데도 원심이 이와 달리 각 계좌의 거래종결로 손실이 확정된 때를 기준으로 삼아 피고에게 그 당시의 환율로 환산한 금액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한 것은 잘못"이라고 밝히고, 김씨가 예비적으로 청구한, 손실분담 약정에 기한 약정금 청구 부분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 김씨는 항소심에서 청구를 확장해 이씨는 수령한 수익금 전부를 반환하라며 일부청구로 4억여원을 요구하고, 예비적으로 손실분담 약정에 따라 자신이 입은 손실 중 50%에 해당하는 456,670.955 달러를 지급하라는 청구 등을 추가했다. 이씨의 일임투자로 인하여 손실이 발생한 후인 2014년 3월 무렵 이씨는 김씨에게 신한계좌 거래에 대하여는 원금 손실 전부를, 하나대투계좌 거래에 대하여는 원금 손실의 50%를 보전하여 주기로 약정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씨가 2014년 3월 무렵 김씨와 맺은 손실분담 약정에 따라 김씨에게 신한금융투자 계좌와 하나대투증권 계좌에 대한 손실분담금 합계 254,543.04 달러 중 김씨가 공제를 자인하는 9만 달러를 제외한 나머지 미화 164,543.04 달러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하고, 각 계좌의 거래종결로 손실이 확정된 2014년 7월 4일을 기준시로 삼아 미화 164,543.04달러에 대하여 그 당시의 미국 달러화 매매기준율인 1,009.74원을 적용한 1억 66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