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상륙 Arnold & Porter, 게임체인저 될까?
한국 상륙 Arnold & Porter, 게임체인저 될까?
  • 기사출고 2019.06.07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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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론스타가 하나금융지주를 상대로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해 약 1조 600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ICC(국제상업회의소) 중재에서 하나금융지주가 전부 방어한 승소 판정 소식이 알려진 5월 15일. 기자는 아놀드앤포터(Arnold & Porter Kaye Scholer) 서울사무소의 변호사들을 만나고 있었다. 지난 2월 서울사무소를 오픈한 아놀드앤포터의 한국시장 전략을 취재하기 위해 시간을 잡은 것인데,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진 결과가 되었다. 서울사무소 대표를 맡고 있는 제임스 리 캘리포니아주 변호사는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나금융 상대 론스타 청구 전부 막아내

"서울사무소를 연 지 얼마 안 지나 이렇게 완벽한 승소 판정을 받게 되어 너무 기쁩니다.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낸 ISD(투자자-국가 분쟁)와 함께 아놀드앤포터에서 하나금융지주와 한국 정부를 위해 다각도로 전략을 짜 대응해 온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아놀드앤포터 서울사무소를 이끌고 있는 제임스 리 캘리포니아주 변호사
◇아놀드앤포터 서울사무소를 이끌고 있는 제임스 리 캘리포니아주 변호사

아놀드앤포터는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낸 ISD 사건에서도 한국 정부 측 대리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전통의 미국 로펌으로, 지난 2월의 서울사무소 개설이 그런 점에서도 안팎의 높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가장 최근에 서울사무소를 오픈하며 서울에 사무소를 둔 29개의 외국 로펌 중 한 곳이 된 아놀드앤포터의 한국 전략은 무엇일까. 25년 넘게 소송 변호사로 활동하며 분쟁해결 전문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제임스 리와 국제중재와 통상 전문의 김준희 변호사, M&A 등 회사법 자문과 함께 특히 PE(사모펀드) 자문에서 높은 경쟁력을 자랑하는 김경석 변호사 등 3명의 파트너와의 공동 인터뷰를 통해 100년의 역사가 쌓인, 한국 업무만 30년 넘게 해 왔다는 아놀드앤포터의 경쟁력을 추적했다.

제임스 리, 김준희, 김경석 파트너 상주

"미국의 뉴욕에선 월가의 수많은 로펌 중에서도 왁텔 립튼(Wachtell Lipton)과 크라바스(Cravath Swaine & Moore)를 최고로 꼽는데, 워싱턴의 왁텔, 크라바스와 같은 로펌이 아놀드앤포터입니다."

김준희 변호사는 100년의 전통이 쌓인 아놀드앤포터의 높은 경쟁력부터 강조했다. 실제로 워싱턴에 본사가 있는 아놀드앤포터는 미국 정부의 규제와 조사에 대한 대응, 복잡한 소송 · 중재 등의 분야에서 이름이 높은 미국의 최고 수준(top notch)의 로펌 중 한 곳으로,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허용되는 대관(對官) 로비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임스 리 서울사무소 대표는 또 한국팀의 가동, 한국 업무의 수행도 다른 어느 미국 로펌보다도 빨랐다고 역설했다. 그는 "80년대 초반부터 김석한 변호사가 워싱턴 사무소에서 한국팀을 이끌었다"며 "삼성전자를 대리해 흑백 TV에 대한 반덤핑 사건을 시작으로, 칼라 TV, 반도체 반덤핑 사건을 처리하고, 이후에도 포철 등의 반덤핑 케이스는 물론 여러 한국 기업을 대리해 수많은 사건을 해결한 곳이 아놀드앤포터"라고 거듭 힘주어 말했다. 김석한 변호사는 이후 미국의 다른 대형 로펌으로 옮겨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매니징파트너로 활약한 후 다시 아놀드앤포터로 돌아와 워싱턴 사무소에서 후배들과 함께 한국 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사실 론스타가 하나금융지주를 상대로 낸 1조 6000억원의 ICC 중재에서 하나금융 측을 맡아 100% 방어하고,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된 첫 ISD 사건인 론스타가 낸 ISD에서 한국 정부의 대리인으로 선정된 것만 보아도 아놀드앤포터의 높은 전문성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아놀드앤포터는 한국 정부가 관련된 첫 중재사건인, 1984년 총기를 만드는 회사로 유명한 미국의 콜트(Colt)사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제기한 중재사건에서도 한국 정부를 대리해 합의로 해결한 적이 있다.

김경석 변호사가 그동안 워싱턴 본사를 중심으로 한국계 변호사들이 수행해 온 아놀드앤포터 한국팀의 면면을 소개했다. 그는 크게 김석한 변호사가 이끄는 대정부 로비팀과 이수미 변호사가 관장하는 미 정부의 제재와 규제(regulatory), 컴플라이언스 업무, 김석한 변호사와 함께 박재홍 변호사가 실무를 많이 챙기는 통상 분야, 박진석 변호사 등이 포진한 IP 소송팀을 먼저 꼽았다. 여기에 워싱턴 사무소의 국제중재팀과 소송팀, 상하이 사무소 등의 전문가들이 가세해 ISD와 국제중재, 미국내 소송 등을 수행한다는 설명.

워싱턴에도 한국계 파트너 4명

새로 증원된 서울사무소의 3명의 파트너를 포함해 한국계 파트너만 7명이 포진한 곳이 아놀드앤포터로, 제임스 리는 "한국 업무를 가장 먼저 수행했을 뿐만 아니라 영미 로펌 중 한국팀의 규모가 가장 크고 업무도 다양하게 가장 많이 성공적으로 수행해 온 로펌 중 한 곳이 아놀드앤포터라고 하면 틀리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제 이처럼 높은 경쟁력을 갖춘 아놀드앤포터에 법률자문을 구하면서 시차를 계산해가며 태평양 건너 워싱턴에 연락을 취하지 않아도 된다. 세 달 전 서울사무소가 설립인가를 받아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특히 아놀드앤포터의 서울사무소는 시작부터 각기 분야가 다른, 중량감이 돋보이는 파트너 3명의 진용으로 출발, 서울에 나와 있는 영미 로펌들은 물론 한국 로펌들 사이에서도 적지 않은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김준희 워싱턴 DC 변호사
◇김준희 워싱턴 DC 변호사

-먼저 서울사무소를 개설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서울사무소 개설을 알리는 보도자료에도 명시되어 있는데, 서울에 사무소를 두고 변호사가 상주함으로써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클라이언트를 지원하게 된 데 가장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클라이언트에 대한 자문 및 지원, 서비스가 한층 강화될 것입니다."(제임스 리 변호사)

아놀드앤포터의 알렉산더(Richard M. Alexander) 회장도 3월 초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서울사무소 오픈을 발표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 한국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장이고, 우리는 미국법을 포함한 해외 법률자문을 구하는 많은 클라이언트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서울사무소를 통해 현지에서 실시간으로 일하는 팀과 아놀드앤포터의 다른 변호사들의 전문성을 활용하여 클라이언트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될 것(We are pleased to announce the opening of our Seoul office. Korea is an important market for our firm. We have close ties to many clients who turn to us for advice on US and other international legal matters. The new office will enable us to better serve our clients with a team of lawyers providing on-the-ground support in real time and leveraging the expertise of other lawyers throughout the Firm)"이라고 말했다.

알렉산더 회장, 'on-the-ground support' 강조

-온더그라운드(on-the-ground) 서비스가 강조되고 있는데, 서울에 사무소를 두고 있는 다른 영미 로펌들도 현장 서비스를 중시해서 서울에 변호사가 상주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구체적으로 어떤 변호사들이 나와 있는가를 따져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마케팅 차원에서 변호사 한두 명이 나와서 미국 본토의 변호사들과 연락하며 업무를 도와주는 정도라면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또 클라이언트들도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그런 로펌이 있다면 점점 인정을 덜 해주고 있다고 봅니다. 한국의 법률시장이 열린지 7년이 지나고 있는데, 한국의 클라이언트 회사들이 외부 로펌을 이용하는 수준도 점점 세련되어져서 어떤 사건이 터지거나 자문의 필요가 있을 때 바로바로 전문성을 가지고 도와줄 수 있는 그런 변호사, 외국 로펌을 찾는다고 생각합니다. 클라이언트의 그러한 기대를 맞추는 로펌과 맞출 수 없는 로펌 사이에 차이가 점점 더 나게 되겠죠. 아놀드앤포터는 클라이언트의 그러한 기대를 충족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전문성을 가지고 이번에 서울사무소를 연 것입니다."(김경석 변호사)

청구기각 방법 등 20장짜리 메모 제공

제임스 리는 이와 관련, "최근 미국에서 소송을 당한 한국 대기업 관계자들이 자문을 요청, 서울사무소에서 곧바로 A에서 Z까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으로 어떤 것들이 있고, 현재 상태에서 원고 측의 청구를 기각시키는 방법, 승소 가능성 등을 구체적으로 분석한 20장짜리 메모를 작성해 제공했다"며 "아놀드앤포터 서울사무소에선 이런 자문과 대응이 가능하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고 거들었다.

◇김경석 뉴욕주 변호사
◇김경석 뉴욕주 변호사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 업무를 수행해왔지만, 서울사무소 개설은 상대적으로 늦었다. 서울에 사무소를 열었다가 철수한 곳을 빼면 미국 로펌 중 23번째, 외국 로펌 전체를 기준으로 보면 29번째에 해당된다.

"아놀드앤포터는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로펌이고, 해외사무소를 많이 두고 있지도 않습니다. 런던, 프랑크푸르트, 브뤼셀, 상하이 이렇게 4곳에 사무소를 운영하다가 이번에 서울사무소를 열었는데, 서울사무소 개설은 직전에 해외사무소를 연 지 15년만입니다. 그만큼 서울사무소, 한국시장을 중시한다는 거죠. 도쿄나 홍콩, 싱가포르에 사무소가 없는 것만 보아도 아놀드앤포터가 한국시장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김준희 변호사)

15년 만에 서울에 해외사무소 추가

제임스 리는 서울사무소 개설에, 30년 넘게 경험이 쌓인 아놀드앤포터의 한국 업무 수행의 완성체를 구축하는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과 워싱턴을 연계해 완벽한 원스톱 서비스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계 파트너가 주도하는 업무분야가 모두 7개로 늘어나게 되었는데, 이처럼 기업법무의 핵심분야를 한국계 파트너가 A에서 Z까지 다 하는 곳은 매우 드물다"고 말했다.

김준희 변호사도 "온더그라운드 서비스와 함께 궁극적으로는 서울에 있든, 미국에 있든 코리아팀 전체의 능력, 한국 클라이언트를 위해 그 로펌이 동원할 수 있는 전사적인 자원(resources)일 것"이라며 "아마 아놀드앤포터만큼 한국 관련 업무의 수행을 위해 많은 자원과 경험이 축적된 곳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놀드앤포터는 이번에 서울사무소를 개설하면서 워싱턴 사무소 등에서 활약하는 한국계 파트너를 서울로 보낸 게 아니라 다른 로펌 소속으로 이미 서울에 나와 활동하고 있는 한국계 변호사 3명을 스카우트해 투입했다. 일종의 용병을 뽑아 서울사무소 문을 연 셈인데, 이 점에서도 서울에 나와 있는 영미 로펌들 사이에 경계경보가 울렸다. 그러나 제임스 리는 좀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미국 로펌들 사이에선 중견변호사의 이동이 매우 빈번히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클라이언트에 필요한 업무수요를 찾아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시장에서 역량이 검증된 변호사를 찾아 투입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러한 중견변호사의 이동이 서울에서 전개된 결과로 보면 될 겁니다."

◇왼쪽부터 아놀드앤포터 서울사무소에 상주하는 김준희, 제임스 리, 김경석 변호사가 포즈를 취했다. 세 사람 다 전문분야가 다르다.
◇왼쪽부터 아놀드앤포터 서울사무소에 상주하는 김준희, 제임스 리, 김경석 변호사가 포즈를 취했다. 세 사람 다 전문분야가 다르다.

그는 오히려 "아놀드앤포터가 서울사무소를 개설하기 위해 그만큼 과감한 투자에 나선 것에 주목해야 한다"며 "서울에 사무소를 열려면 이 정도의 열의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강조했다.

임시로 서울파이낸스센터에 자리를 잡은 아놀드앤포터 서울사무소엔 이미 자문을 타진하고 사건을 의뢰하는 한국 기업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ICC 분쟁 사건을 이미 한 건 수임한 가운데 또 다른 한국 기업으로부터도 ICC 중재에 관한 제안서 제출을 부탁받았으며, 한 케미칼 회사에선 새로운 통상 케이스가 갑자기 터졌다며 제안서를 보내달라고 요청해왔다고 한다.

ICC 중재, 크로스보더 M&A 수임

김경석 변호사가 이끄는 M&A 팀에서도 미국에 있는 공장을 인수하는 한국 대기업으로부터 M&A 딜을 진행해달라는 위임을 받아 본격적인 업무를 준비 중에 있다. 또 미국에 큰 투자를 한 대기업에선 미국에서의 로비 전략과 제안서를 요청, 워싱턴 사무소와 협력해 로비 전략에 대한 초안을 제공했다고 제임스 리 서울사무소 대표가 소개했다.

이 외에 미국에서 글로벌 SNS 기업으로부터 소송을 제기 당한 IT기업이 소송 대리를 요청하고, 미 국제무역위원회(ITC)에서의 제약 분쟁과 관련해서도 사건 의뢰를 받는 등 서둘러 어소시에이트 변호사를 투입해야 할 만큼 서울사무소에 다양한 소송과 자문 의뢰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ITC 분쟁, IP 소송도 의뢰 요청

제임스 리는 "30년 넘게 축적된 아놀드앤포터 한국팀의 높은 경쟁력과 한국 현지에서의 실질적인 자문을 강조하는 서울사무소의 현장 중시 전략을 고객들도 인정하는 것 같다"며 "성공적인 분쟁 해결과 거래 수행으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중량급의 파트너 3명으로 출발한 아놀드앤포터 서울사무소가 서울사무소 개설 7년을 맞는 영미 로펌들 사이에 게임체인저(game changer)가 될 것인지 많은 사람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켜보고 있다.

리걸타임즈 김진원 기자(jwkim@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