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상사로부터 성희롱을 당한 피해 여직원이 이 사건이 빌미가 되어 견책처분을 받고 새로운 업무에 배치되었다가 직무정지를 당한 후 대기발령을 받았다. 피해 여직원의 소송을 도운 동료직원도 정직 1주일의 징계를 받았다. 대법원은 회사가 상사의 성희롱에 대한 사용자책임과 함께 부당한 징계처분 등에 대한 불법행위책임도 져야 한다고 판결했다. 최근 '미투(Me Too)' 운동이 사회 전 부문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회사 측의 대응에 불법행위책임을 물은 판결이어 주목된다.
대법원 제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2월 22일 유부남인 직장상사로부터 성희롱을 당한 후 업무 재배치, 직무정지 · 대기발령 등의 불이익을 입은 르노삼성자동차 직원 A(40 · 여)씨가 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의 상고심(2016다202947)에서 사용자책임과 부당한 업무배치로 인한 불법행위책임만 인정해 "1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A씨에 대한 견책처분, 직무정지와 대기발령, A씨를 도운 동료직원에 대한 정직처분도 모두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 법무법인 여는이 원고를, 피고 측은 법무법인 아이앤에스가 대리했다.
2005년 8월 피고 회사에 입사한 A씨는 같은 팀의 팀장인 최 모씨로부터 2012년 4월에서 2013년 3월까지 약 1년간 성희롱을 당했다며 최씨에게는 3000만원의 손해배상을, 회사에 대해선 최씨의 성희롱에 대한 사용자책임과 대기발령 등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1억 2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최씨는 회사 카페에서 A씨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대화를 하던 중 야근을 해서 몸이 뻐근하다고 말하는 A씨에게 "내가 마사지를 잘하는데 몸에 아로마 오일을 쫙~ 발라서 전신마사지를 해줄 수 있다"고 말하고, 워크숍 술자리에서 A씨의 허벅지를 잡아 몸을 돌려 앉히면서 '나 좀 봐라'고 말하는 등 지속적으로 A씨에게 성희롱을 했다. 최씨는 A씨에게 '휴일에 집에 청소해주러 오겠다', '보고 있어도 그립다'는 등의 말을 하거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회사 측은 1심 재판이 진행되던 2013년 7월 A씨의 소송을 도운 동료직원에게 근무시간 위반을 이유로 정직 1주일의 징계처분을 내렸다. 이어 같은 해 9월에는 다른 동료직원에게 강압적으로 진술서를 작성하게 했다는 이유로 A씨에게 견책처분을 내렸다. 10월에는 A씨를 기존에 수행하던 전문업무에서 빼 교육 관련 업무 등 공통업무에 배치했고, 12월에는 A씨의 직무를 정지하고 대기발령했다. 가해자인 최씨는 정직 2주의 징계를 받았다.
1심은 성희롱 가해자인 최씨에 대해서만 1000만원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고, 회사에 대해선 아무런 책임도 인정하지 않았다.
항소심에서는 최씨가 항소를 포기해 회사에 대한 재판만 진행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회사의 사용자책임과 부당한 업무 재배치로 인한 불법행위책임만 인정해 1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반면 A씨에 대한 견책처분과 동료직원에 대한 정직처분, 직무정지와 대기발령은 직장 내 성희롱과 관련하여 사업주 등이 피해 근로자에게 해서는 안 되는 불리한 조치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이 부분에 대한 A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의 이러한 판단은 잘못이라며 성희롱 사건이 발단이 된 회사의 인사조치가 모두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대법원은 먼저 "남녀고용평등법은 직장 내 성희롱이 법적으로 금지되는 행위임을 명확히 하고 사업주에게 직장 내 성희롱에 관한 사전 예방의무와 사후 조치의무를 부과하고 있으며, 특히 사업주는 직장 내 성희롱과 관련하여 피해를 입은 근로자뿐만 아니라 성희롱 발생을 주장하는 근로자에게도 불리한 조치를 해서는 안 되고, 그 위반자는 형사처벌을 받는다는 명문의 규정을 두고 있다"고 전제하고, "사업주가 피해근로자등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조치를 한 경우에는 남녀고용평등법 14조 2항을 위반한 것으로서 민법 750조의 불법행위가 성립한다. 그러나 사업주의 피해근로자등에 대한 조치가 직장 내 성희롱 피해나 그와 관련된 문제 제기와 무관하다면 남녀고용평등법 14조 2항을 위반한 것이 아니며, 또한 사업주의 조치가 직장 내 성희롱과 별도의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도 위 조항 위반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사업주의 조치가 피해근로자등에 대한 불리한 조치로서 위법한 것인지 여부는 불리한 조치가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문제 제기 등과 근접한 시기에 있었는지, 불리한 조치를 한 경위와 과정, 불리한 조치를 하면서 사업주가 내세운 사유가 피해근로자등의 문제 제기 이전부터 존재하였던 것인지, 피해근로자등의 행위로 인한 타인의 권리나 이익 침해 정도와 불리한 조치로 피해근로자등이 입은 불이익 정도, 불리한 조치가 종전 관행이나 동종 사안과 비교하여 이례적이거나 차별적인 취급인지 여부, 불리한 조치에 대하여 피해근로자등이 구제신청 등을 한 경우에는 그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며 "직장 내 성희롱으로 인한 분쟁이 발생한 경우에 피해근로자등에 대한 불리한 조치가 성희롱과 관련성이 없거나 정당한 사유가 있다는 점에 대하여 사업주가 증명을 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남녀고용평등법 14조 2항은 "사업주는 직장 내 성희롱과 관련하여 피해를 입은 근로자 또는 성희롱 피해 발생을 주장하는 근로자(이하 '피해근로자등'이라 한다)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조치를 하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A씨에 대한 견책처분에 대해, "원고는 2013. 6. 11. 성희롱 가해자인 최씨와 그 사용자인 피고를 상대로 이 사건 소를 제기한 다음, 이 사건 직장 내 성희롱에 관하여 회사 내에 퍼져 있는 소문에 관한 증거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동료직원에게 진술서를 작성하게 하는 행위를 하였다"며 "견책처분은 직장 내 성희롱과 관련성이 있다고 볼 수 있고, 성희롱 피해나 그와 관련된 문제 제기와 무관하거나 정당한 사유에 근거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A씨에 대한 직무정지와 대기발령에 대해서도, "(직무정지와 대기발령의 이유가 된) 동료직원의 서류 반출에 가담했다는 쟁점 혐의는 그 근거가 매우 희박하고, 당시의 상황에서 원고의 근로 제공이 매우 부적당했다고 볼 만한 사정도 없으므로, 원고에 대한 대기발령 등의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피고의 원고에 대한 대기발령 등이 남녀고용평등법 14조 2항의 불리한 조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 원심 판결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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