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음주로 '필름 끊긴' 채 다른 방 투숙 여성 성폭행…심신장애 아니야"
[형사] "음주로 '필름 끊긴' 채 다른 방 투숙 여성 성폭행…심신장애 아니야"
  • 기사출고 2017.12.10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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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법] "주취감형 불가"
본인이 투숙한 모텔 방에서 약 15m 떨어진 다른 방에 홀로 투숙한 여성을 성폭행한 남성이 술에 만취한 상태에서 일어난 일이라며 감형 즉, 주취감형을 주장했으나,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2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청원을 하면서 '주취감형 폐지'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나온 판결이어 주목된다.

부산지법 형사6부(재판장 김동현 부장판사)는 2017년 12월 1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주거침입준강간)로 기소된 A(24)씨의 심신미약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3년, 성폭력 치료강의 40시간 수강을 선고했다.(2017고합446)

A씨는 2017년 7월 6일 오전 7시쯤 부산 부산진구에 있는 모텔에서 자신이 투숙하는 301호에서 나와 B(여 · 37)씨가 투숙하는 307호의 잠겨져 있지 않은 방문을 열고 그 안으로 침입한 후, 술에 취해 그곳 침대 위에서 잠을 자고 있는 B씨의 뒤로 다가가 속옷을 벗기고 간음한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가 점유하는 방실에 침입하고 피해자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피해자를 간음하였다"며 A씨의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A씨는 재판에서 "범행 당시 술에 만취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 및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이 사건이 발생하기 전 피고인이 범행 장소인 모텔 307호실에 들어가는 모습이 촬영된 CCTV 영상 캡처 사진에 의하면, 당시 피고인의 거동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 점을 알 수 있고, 피해자가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에 의하면 피고인은 범행 당시 피해자에게 '자세 바꿔봐', '똑바로 해봐', '잘 안들어가'라는 말을 하였고, 피해자가 놀라서 모텔방의 불을 켜자 자신이 투숙했던 방을 찾아가 옷을 입고 바로 다시 범행 장소로 돌아와 피해자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하는 등 피해자와 정상적으로 대화를 나누었다"고 지적하고, "범행 당시 피고인이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있었다고 보이지 않고, 설령 피고인이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음주로 인한 심신장애 상태에서 성폭력범죄를 범한 경우 법원은 형의 감면에 관한 형법 10조를 적용하지 아니할 수 있고(성폭력처벌법 20조), 피고인이 음주로 인한 주취상태를 자초한 이상 심신미약에 따른 형의 감경을 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또 "피고인이 모텔의 복도를 따라 본인이 투숙한 방에서 약 15m 떨어져 있는 피해자의 방까지 걸어간 후 침대에 누워있던 피해자의 속옷을 벗긴 뒤 피해자를 간음하였다는 것인데, 심신장애 상태에서 이와 같은 일련의 행위를 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피고인은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범행 당시의 상황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취지로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주취에 따른 일시적 기억상실증인 블랙아웃 증상(black-out, 속칭 '필름 끊김' 현상)에 불과한 것으로 보이고, 이와 같은 사정만으로 피고인이 심신장애 상태에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평소 음주로 인한 정신질환을 갖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범행 이전까지 이와 같은 질환으로 치료받은 적이 없을 뿐 아니라, 그 증상이 정신병과 동일한 정도의 병적인 상태에 이르렀다거나 이로 인하여 범행 당시 행위통제능력이 현저히 저하되었음을 인정할 자료도 없다"고 덧붙였다.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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