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지법] "상속재산 처분행위로 볼 수 없어"
남편이 죽은 후 상속포기 전에 남편의 신용카드 사용대금 결제를 위해 남편 계좌로 500만원을 이체했다가 남편 계좌로 결제에 충분한 돈이 새로 입금되자 남편 계좌에서 자신의 계좌로 다시 500만원을 이체했다. 이를 '상속재산에 대한 처분행위'로 볼 수 있을까. 법원은 '상속재산에 대한 처분행위'로 단정할 수 없어 상속포기는 그대로 유효하다고 판결했다. 민법 1026조 1호는 상속인이 상속재산에 대한 처분행위를 한 때에는 단순승인을 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서울중앙지법 6월 29일 하나은행이 "사망한 박 모씨에 대한 대출금채무 중 일부인 1억원을 갚으라"며 박씨의 부인인 김 모씨를 상대로 낸 소송(2015가단137990)에서 "상속재산에 대한 처분행위로 단정할 수 없으므로, 상속포기는 그대로 유효하다"고 판시, 하나은행의 청구를 기각했다.
2011년 12월 1일 사망한 박씨의 부인인 김씨와 두 자녀는 2012년 1월에, 박씨의 부모와 형제자매는 2012년 2월에 각각 상속포기를 했다.
상속개시 당시 박씨가 하나은행에 개설한 한도대출계좌의 잔고는 마이너스 3억 7000만원. 이 계좌는 박씨의 롯데신용카드 사용대금의 결제계좌로도 사용됐다. 김씨는 남편이 사망한 후인 2011년 12월 9일 아직 상속포기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남편의 신용카드 사용대금 결제를 위하여 자신의 신한은행 계좌에서 이 계좌로 500만원을 이체했다. 그런데 이후 이 계좌에 국민건강보험법 기타 사회보장 관련 법령상의 급여로 추측되는 790여만원이 입금되자, 김씨는 같은달 20일 이 계좌에서 자신의 신한은행 계좌로 다시 500만원을 이체했다. 다음날 계좌에서 박씨의 신용카드 사용대금 480여만원이 결제됐다. 이에 하나은행이 "김씨가 상속개시 후 상속포기 전 박씨의 계좌에서 자신의 계좌로 500만원을 이체했는바, 이는 상속재산에 대한 처분행위에 해당하여 민법 1026조 1호에 따라 단순승인이 간주된다"고 주장하며 김씨를 상대로 박씨의 대출금채무 중 일부인 1억원의 지급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민법 1026조 1호는 상속인이 상속재산을 처분한 후에 상속포기 또는 한정승인을 함으로써 상속채권자, 공동 또는 차순위 상속인, 상속인의 처분을 신뢰한 제3자를 해하게 되는 결과를 방지하기 위하여 그 상속인의 단순승인을 간주함으로써 이해관계인을 보호하기 위한 규정이고, 그 당연한 귀결로써 상속인이 상속재산을 보존 또는 관리한 데 불과한 경우에는 단순승인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며 "따라서 상속인의 어떠한 행위가 위 법조항이 정한 '상속재산에 대한 처분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우선적으로 그로써 발생하는 상속인의 이익과 이해관계인의 불이익을 형량하고, 그 밖에 그 행위에 이르기까지의 경위와 동기, 결과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이라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피고는 상속채무인 피상속인의 신용카드대금을 자신의 고유재산으로 결제하기 위하여 피상속인 명의의 계좌에 자신의 돈 500만원을 입금하였다가, 그 뒤 결제에 충분한 돈이 계좌로 새로 입금되자, 자신의 고유재산으로 상속채무를 결제하려던 당초의 의사를 철회하여 계좌에 입금하였던 돈을 회수함으로써 계좌의 잔고에서 피상속인의 신용카드대금이 결제되게 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그런데 만일 피고가 애초에 계좌에 500만원을 입금하지도 않았다면 신용카드대금은 결국 계좌의 잔고에서 결제되었을 것이므로, 이 사건과 같이 피고가 자신의 고유재산으로 피상속인의 신용카드대금을 결제하려던 의사를 철회하여 종전에 계좌에 입금하였던 돈을 인출한 경우와 꼭 같은 결과가 되고, 따라서 피고의 일련의 행위가 상속채권자나 공동 또는 차순위 상속인 등 이해관계인에게 해를 끼치게 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피고가 피상속인의 채무 중 즉 상속채무를 자신의 고유재산으로 변제하려던 의사를 나중에 철회하였다 하여 단순승인을 의제함으로써 상속채무에 대한 책임을 지운다면, 피고가 처음부터 자신이 고유재산으로 상속채무를 변제하려는 선량한 뜻을 품지도 않았던 경우에는 아무런 제한 없이 상속포기 또는 한정승인을 할 수 있었던 점과 견주어 보았을 때 형평에 어긋날뿐더러 정의롭지 못하고, 또한 이미 피상속인이 사망한 뒤에 상속인이 피상속인 명의의 계좌에 돈을 입금하였다 하여 그 돈까지 아울러 상속재산이 된다고 보기는 어려우니, 이를 회수한 것을 두고 '상속재산에 대한 처분행위'로 단정할 수도 없다"며 "따라서 피고가 2011년 12월 20일 계좌에서 500만원을 인출한 행위를 두고 민법 1026조 1호가 정한 '상속재산에 대한 처분행위'에 해당한다고는 볼 수 없고, 피고의 상속포기는 그대로 유효하다"고 판시했다. 김씨가 박씨의 피상속인으로 의제되는 것은 아니므로, 김씨에게 상속채무의 이행을 구하는 청구는 이유 없다는 것이다.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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