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한 리더십으로 구성원 역량 결집연수원 시절 명강의로 이름 날린 자유주의자
설립된 지 만 3년을 앞두고 있는 로펌 세한에 이름난 파트너들이 많지만, 유연한 리더십으로 강소 로펌 세한의 빠른 성장을 견인하고 있는 송영천 대표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세한 사람들은 존경의 마음을 담아 그를 '회장님'이라고 부른다.세한의 한 변호사는 "법원에서 고등부장까지 지낸 분이시지만 권위적이지 않고 젊은 변호사들과 잘 어울리신다"며 "송 대표가 다양한 경력의 변호사들이 모인 세한의 균형을 잡아주고, 높은 시너지를 구현해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핵심을 얼른 간파하고 요점을 빨리 캐치해 쉽게 정리하는 탁월한 능력을 갖춘 아주 스마트한 분"이라며 "일하시는 것을 보면 젋은 변호사들 이상으로 에너제틱하다"고 말했다.
26년간 법관 봉직
3년 전 손수 세한의 주춧돌을 놓은 송 대표는 26년간 각급 법원의 판사를 역임한 판사 출신 변호사로, 세한에서도 송무 분야를 이끌고 있다. 민, 형사, 행정소송 등에 두루 능하며, 특히 행정조장을 포함 2년 6개월간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활약한 데 이어 3년간 사법연수원에서 연수생들을 가르치며 명강의로 이름을 날렸다. 연수원에서 담당했던 강의는 민사재판실무와 행정재판실무. 그는 또 언론중재위원회 중재부장을 역임, 언론사건에도 밝고,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위원,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으로 활약하는 등 상사중재와 환경분쟁 해결에도 일가견이 있다.
사법연수원 교수를 거쳐 서울중앙지법 부장으로 옮긴 그는 2006년 고법부장으로 승진한 데 이어 이듬해 서울고법 부장으로 자리를 옮겨 대법관 자리에 한 걸음 더 다가섰으나, 2009년 법복을 벗고 변호사가 되었다. 대법관을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서 미련 없이 법복을 벗은 이유도 '자유가 그리워서'였다는 게 그의 설명. 당시 비서울대 출신 고등부장 3명 중 한 명이었던 그가 법원을 떠난다고 하자 서울대 출신의 한 동기생이 "대법관이 될 확률이 나보다 더 높은데 왜 나가려고 하느냐"고 만류했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송 대표는 단국대 법대 재학 때인 1981년 제2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판사를 그만 둔 이유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자유주의자'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송 대표는 법을 처음 공부하면서 익힌 자기책임의 원리, 자유의 소중한 가치를 통해 그런 생각이 박힌 것 같다고 말했다.
"법을 공부할 때도 자유가 기반인데 이것을 왜 이렇게 규제하려고 하느냐, 그러면 이런 폐해가 생기지 않느냐 이런 식으로 공부하면 논점도 분명해지고 재미있고 쉬워요. 반대로 동전의 양면이지만, 당위 즉 should be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놓치기 쉬운 게 많죠."
중, 일, 스페인어 등 5개 국어 구사
영어와 일본어는 물론 중국어도 잘하고 스페인어까지 구사하는 송 대표는 멕시코의 마추비추까지 다녀올 정도로 여행을 좋아한다. 쿠바가 미국과 수교하기 전인 지난해 2월엔 멕시코시티를 거쳐 쿠바의 아바나를 다녀왔다.
"6년 전 변호사를 시작하면서 변호사를 하게 되면 이런 자세로 해야 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지만 한 의뢰인이 판사티가 안 난다. 변호사로 굉장히 빨리 적응하는 것 같다고 할 때 기분이 좋았죠."
송 대표는 "개인변호사 생활도 해 보았지만 유능한 젊은 후배들과 함께 일하는 세한에서의 활동이 제일 나은 것 같다"고 세한에서의 활동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그는 공정거래위원회 국장을 역임한 송하성 경기대 교수가 형이고, 송영길 전 인천시장, 송경희 미래창조과학부 서기관 등이 동생인 전남 고흥의 수재 집안 출신이다. 장조카인 서울동부지법 송승환 판사를 포함 집안에 고시 합격자만 다섯 명, 장남인 송하성 교수가 쓴 단행본《송가네 공부법》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진원 기자(jwkim@lega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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