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기각과 법치주의
탄핵 기각과 법치주의
  • 기사출고 2004.05.18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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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달여를 끈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사건이 기각 결정으로 마무리됐다.

재판관들 사이에 의견이 갈렸듯 결정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도 제각각일 것이다.

그러나 입장을 떠나 이번 결정엔 간과해선 안 될 큰 교훈이 담겨있다.

그것은 법치주의의 확인이다.

김진원 기자
A4 용지로 50페이지가 넘는 적지 않은 분량의 결정문엔 다름아닌 법치의 구체적인 내용들이 녹아있다.

개개의 쟁점에 대한 헌재의 판단과 결론은 법치주의에 맞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해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문도 이런 추론이 가능하다고 본다.

이점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탄핵을 발의했던 국회 소추위원측 공통적으로 헌법재판소 결정에 승복하고, 이를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법치주의에의 승복이요, 이를 존중 실천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법치를 확인하고, 이를 실천하는 것 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다시 헌재 결정문을 들춰보자.

무엇이 법치인지 그 내용을 알아보는 것은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우선 헌재가 비록 대통령을 파면할 만큼 중대한 위반은 아니라고 했지만 법 위반이라고 설시한 부분은 법치의 관점에서 볼 때 대통령으로서는 보다 신중한 처사가 요청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헌재도 “법률을 존중하는 태도라고 볼 수 없다” “모든 공직자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대통령의 이러한 언행은 법률을 존중하고 준수해야 하는 다른 공직자의 의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국민 전반의 준법정신을 저해하는 효과를 가져오는 등 법치국가의 실현에 있어서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통령 스스로가 법을 존중하고 준수하지 않는다면, 다른 공직자는 물론, 국민 누구에게도 법의 준수를 요구할 수 없는 것이다”고 법의 이름으로 대통령을 준엄하게 꾸짓고 있다.

국회 소추위원측에 대한 헌재의 주문은 대통령에 대한 것 이상이다.

“대통령에 대한 파면결정을 정당화하는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판단에 뒤이은 “이 사건 심판 청구를 기각한다”는 결론이 곧 소추위원측의 잘못된 법적용을 확인하는 말이다.

청구인이 아니어서 직접적인 판단의 형식을 띄고 있지 않아서 그렇지 결론만 놓고 보면 소추위원측의 잘못이 더 크다고 해야 할 것이다.

탄핵의 사유가 되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의결정족수를 채웠으니 탄핵 소추에 흠이 없다고 한다면 정치적으로는 몰라도 법규범적인 측면에선 반법치적 발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탄핵심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가, 직무관련성이 없거나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이유없다”는 판단을 받은 여러 소추사유들을 포함시킨 것은 결과적으로 법적인 접근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평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양 당사자를 포함해 대다수의 국민이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고 도약의 계기를 모색하려고 하는 마당에 새삼 잘잘못을 가리자는 게 아니다.

승패를 떠나 결정문 속에 담겨 있는 법치주의의 속 뜻을 다시한번 되새겨 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말로만 그럴게 아니라 진정 법치가 한 단계 성숙하는 헌정사의 큰 획을 그어보자는 바람이다.

본지 편집국장(jwkim@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