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법학회 세미나 토론 열기"사적자치로 해결해야…거래관행도 주의 필요""우선변제권 확보 등 이익…은행이 부담해야"
은행 등이 대출고객에게 전가한 근저당권 설정비를 돌려달라는 반환청구소송이 집단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근저당권 설정비의 부담 주체와 관련된 법적 쟁점을 따져보는 세미나가 열려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지금까지 이와 관련해 나온 법원 판단은 "가산금리를 적용하는 방법 등으로 설정비 부담을 사실상 채무자인 고객에게 전가시킬 수 있도록 한 종전의 대출약관은 불공정약관"이라는 취지의 2011년 4월에 나온 서울고법 판결(2010누35571). 이후 한국소비자원, 금융소비자연맹, 민간 법무법인 등이 당사자를 모집해 경쟁적으로 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하고 있어 반환소송의 판결 결과에 초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미 대출을 받은 적이 있는 채무자 수만 명이 소송을 제기했으며, 은행 등이 패소할 경우 반환해야 할 설정비가 최대 10조원으로 추산된다는 분석 결과도 나오고 있다.
8월 24일 은행법학회(회장 고동원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가 서울 명동의 은행회관에서 개최한 세미나에서 경희대 로스쿨의 황남석 교수는 주제발표를 통해 "우리 민법은 근저당권 설정비용의 부담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 독일 민법보다는 프랑스 민법 내지 일본 민법에 가까운 구조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고, "따라서 우리나라의 경우도 프랑스 민법의 해석과 동일하게 근저당권 설정비용을 채무자가 부담하는 변제비용에 속하는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관련되는 여러 민법 규정의 체계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해석"이라고 주장했다. 또 "근저당권 설정비용의 부담문제는 근본적으로 당사자가 사적 자치에 의하여 처리하여야 할 사항으로서 설사 명문의 규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성질은 임의규정에 해당하므로 향후 형성될 거래관행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발표에 이어 진행된 토론에선 다양한 견해가 제기됐다.
전국은행연합회 소속의 이광진 변호사는 "금융소비자가 근저당권 설정비용의 반환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은행이 법률상 원인없이 이익을 취득해야 한다"고 전제하고, "근저당권 설정비용 부담주체에 대한 개별적 합의가 존재하고, 설령 개별합의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약관이 유효하며, 약관이 무효이더라도 상관습이 존재하고, 관습이 부존재하더라도 민법에 따른 변제비용이므로 채무자의 비용부담에 대해서는 법률상 원인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설령 법률상 원인이 부존재하더라도 근저당권 설정비용을 부담한 금융소비자에게 금융회사는 금리나 수수료 감면 등 유리한 대출조건을 적용하였으므로 금융회사가 이익을 취득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못박았다. 은행 등 대출기관이 근저당권 설정비를 반환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 로고스의 한혜진 변호사는 "민법, 인지세법, 지방세법, 법무사법 등 관련 법령의 규정 및 판례의 취지에 의할 때 근저당권 설정비용은 금융기관들이 전적으로 부담함이 마땅하다"는 상반된 해석을 내놓았다.
그녀는 특히 대출거래약정과 같은 유상계약의 특성에 주목하며, 수익자부담의 원칙에 의하더라도 채무자가 부담할 것이 아니라는 견해를 밝혔다. 즉, 유상계약에 있어서 계약에 따른 이익은 쌍방 당사자 모두에게 골고루 있다고 보아야 하고 그렇지 아니하다면 유상계약 자체가 성립될 수조차 없다는 것. 한 변호사는 "담보부 대출계약상의 채권자인 은행의 경우 근저당권 등 담보권 설정을 통해 우선변제권을 확보하게 된다는 점에서 채무자가 담보부 대출계약을 통해 얻을 수 있다는 이익들 못지않은 어떤 의미에서는 보다 더 큰 이익을 누리고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지적하고, "때문에 담보 대출에서 채무자만이 어떤 이익을 누리는 것은 결코 아니고 은행 또한 그에 상응하거나 그를 능가하는 반대이익을 향유하는 것이므로 이른바 수익자부담의 원칙도 이를 채무자에게만 적용하여 대출관련 부대비용을 채무자에게 부담시키는 근거로 삼을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또 "최근 은행권을 비롯한 금융권의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행태들이 문제가 되면서 금융소비자의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근저당권 설정비 문제도 이러한 개선 요구의 하나"라고 말했다. 이어 "오랫동안 근저당권의 문제를 현재의 법만으로 해석하고 보편적 상식이나 원칙 등에 대한 합리적 고려가 너무 부족했던 것이 원인이라고 본다. 물론 이것이 금융당국의 지원이나 협조, 묵인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보면 은행보다는 금융당국의 무능이 오늘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금융당국에 화살을 돌렸다.
경희대 로스쿨의 박훤일 교수는 "은행 상대 기획소송이 늘어날수록 은행은 다른 고객에게 추가비용을 떠넘길 수밖에 없을 것이고, 가계나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금융 혁신이나 서비스 개선은 요원해질 것"이라며, "이것은 은행도 은행고객들도 모두 피해자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은행고객들이 느끼는 대출 부대비용이 해마다 늘어나는 것에 대한 불만에서 문제가 비롯되었다면 일반고객들에게는 불편하기조차한 근저당권 제도를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냉정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서울고법 판결=근저당권 설정비 반환청구소송의 발단이 된 판결은 2011년 4월 6일 선고된 서울고법의 2010누35571 판결이다. 이 판결의 핵심 쟁점은 은행 등에서 대출을 받을 때 등록세, 법무사 수수료 등 근저당권 설정비용 등의 부담주체를 채권자인 은행으로 명시한 표준약관을 사용하라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사용권장처분의 적법 여부. 담당재판부인 서울고법 행정 6부(재판장 임종헌 부장판사)는 전국은행연합회와 16개 은행 등이 표준약관의 사용권장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공정위를 상대로 낸 청구를 기각하고, 사용권장처분은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판결 이유에서 "개정 전 표준약관은 대출거래에서 우월한 지위에 있는 은행이 그 지위를 이용하여 대출 관련 부대비용 중 은행이 부담하여야 할 비용까지 고객으로 하여금 부담하게 하거나 가산금리를 적용하는 방법 등으로 사실상 이를 고객에게 전가시킬 수 있도록 한 것이어서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불공정 약관조항이라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 대출 당사자들이 은행 등을 상대로 설정비 반환청구소송에 나서고 있는 것. 한국소비자원 등은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의 소별시효가 10년인 점을 감안, 2003년 1월 1일 이후 근저당을 통해 주택담보 대출을 받은 피해자를 상대로 소송참가 접수를 받고 있다. 서울고법의 이 판결은 현재 상고되어 대법원에 계류 중에 있다.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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