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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규 대법원장 서세 10주기 추념사 전문
"정치적 이해관계 따른 재판결과 과도한 비난 걱정"
2017-12-08 13:30:39
오늘 귀한 시간을 내어 뜻깊은 추모 행사에 함께 해주신 효암 선생의 유가족님과 존경하는 선후배 법관 여러분, 특강을 준비해주신 이헌환 교수님, 그리고 이 자리를 위해 애쓰신 모든 수고와 손길에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무엇보다 제가 오래전부터 마음 깊이 흠모하는 효암 이일규 전 대법원장님을 기리는 추념사를 오늘 여러분들 앞에서 올리게 되어 진심으로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여러 기록물과 자료를 정리하고 오늘 드릴 말씀을 준비하다 보니, 저로서는 감히 생각지 못할 강건함으로 사법민주화의 토대를 남기신 선생의 발자취를 만나 가슴이 뭉클하였습니다.

◇12월 1일 오전 대법원 2층 중앙홀에서 효암 이일규 제10대 대법원장의 서세 10주기 추념식이 열렸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추념사를 하고 있다.

지금부터 10년 전인 2007년 12월 6일 우리는 효암 선생의 법원장(法院葬)을 치렀습니다. 조금 전에 동영상에서 보신 것처럼, 선생은 서슬 퍼런 군사정권 시절에 계엄포고령 위반 등의 시국사건 재판에서 두려움 없이 소수의견을 내셨고, 사법부 독립과 민주화 요구의 흐름 속에 대한민국 제10대 대법원장에 취임하였습니다. 이후 법원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간섭을 배격하고, 적부심과 보석의 활용 확대 등 인권이 보장되는 재판제도를 위한 기본틀을 다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선생은 ‘재판의 독립은 타인이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라 법관 자신이 정립해야 한다’는 것이 당신의 지론임을 강조하시며 1990년 12월 대법원장의 정년을 맞이하여 퇴임하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29년 전 선생께서 대법원장에 취임하던 때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인터넷이며 스마트폰이며 인공지능이며 과학기술의 발전은 너무나 눈부시고, 양성 평등, 개인 존중, 다원주의, 웰빙과 힐링 등 새롭게 강조되는 가치관들로 사회도 문화도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오늘날 여전히 '재판의 독립' 내지 '법관의 독립'이라는 화두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직접적이고 직설적인 권력의 간섭이나 강압은 군사독재시대의 종국과 함께 자취를 감추었지만, 재판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또는 마치 그러한 영향력이 있는 듯이 가장하려는 시도들은 아직도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런지요.

때로는 여론이나 에스엔에스(SNS)를 가장하여, 때로는 이른바 전관예우 논란을 이용하여, 때로는 사법부 주요 정책 추진과도 연계하여 재판의 독립을 흔들려는 시도들입니다. 그리고 요즈음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재판결과를 과도하게 비난하는 일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헌법 정신과 법치주의의 이념에 어긋나는 것으로서 매우 걱정이 되는 행태라고 할 것입니다. 이러한 어지러운 상황에서 재판의 독립을 지켜내는 것이 대법원장의 첫째가는 임무임을 오늘 효암 선생님의 생애 앞에서 새삼 명료하게 깨닫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위축됨 없이, 법관이 오로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재판하도록 사법부 독립을 수호하는 것은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숭고한 사명입니다.

또한, 저는 이일규 대법원장께서는 그 강건한 성품과 언행일치의 모범으로 인해 사법부 내부, 특히 후배 법관들로부터 신뢰가 매우 높으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젊은 후배들에게 늘 자상하셨고, 대등한 동료 법관으로 존중해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선생을, 대법원장을 자랑스러워 하였습니다.

'사법부 내부로부터 법관의 독립'이 개혁 과제의 하나로 논의되는 지금, 저는 효암 선생이 더욱 그립습니다. 저와 같이 나이든 법관들과, 젊은 단독, 배석 판사님들 사이에는 몇십 년의 시간적 간극이 있고, 한 법원에 근무하는 법관의 숫자도 많아졌습니다. 제도적인 방안도 모색해야 하겠지만, 근본적으로 동료 법관으로서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중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어떤 부당한 압력도 선배들이 든든히 막아주리라 후배들이 그렇게 믿을 수 있고, 무엇보다 일선 재판장이 좋은 재판을 위해 고민할 때 소속 법원장과 법원행정처가 발 벗고 도와주리라 신뢰한다면, 어떠한 불신과 의혹도 더는 자리 잡기 어렵고, 효암 선생께서 계시던 때처럼 서로가 서로를 자랑스러워하는 사법부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런지요.

오늘 아침 효암 선생을 그리며 조용히 우리 모두 자기를 되돌아보았으면 합니다. 효암 선생께서 말씀하셨듯이, 사법부 독립을 뒷받침하는 가장 큰 힘은 그 어떤 타인의 조력이 아닌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임마뉴엘 칸트의 이야기처럼 '머리 위 하늘에 반짝이는 별'과 같이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리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좋겠습니다.

사법부 독립은 결국 국민들의 재판받을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기 위한 것이며, 개별 법관들이 자신의 역량을 모두 발휘하여 좋은 재판을 해나감으로써 법원이 국민들로부터 사랑과 신뢰를 받는 것만이 효암 선생님의 큰 뜻을 이어받는 길임이 분명합니다.

기본을 붙들고,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서 본연의 역할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비록 더딜 수는 있어도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올바른 그 길을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함께 걸어간다면, 효암 선생의 담대한 정신이 사법신뢰의 증진과 우리 사회에 법치주의 확산이라는 큰 결실로 국민 곁에 언제까지나 남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경건한 마음으로, 효암 선생의 생애와 강건하고 고결한 정신에 깊은 존경과 추모의 염을 바치면서 추념사를 마치고자 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2017. 12. 1.
대법원장 김 명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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