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탐방] 이화여대 로스쿨
"50년 전통 살려 차세대 여성지도자 육성 앞장" 여성 판,검사 1/3이 이대 출신…학계, NGO 진출 활발 젠더법, 생명의료법 연구 전통…특성화주제 선정 발전
2008-11-23 여은미
2002~2006년 5년간 사법시험 합격자 전국 법과대학 6위, 2007년 사시 합격 5위, 2008년 2월 치러진 50회 사시 1차 합격 4위. 이 대학이 어디일까. 이화여대 법과대학이다.
이화여대 법대가 무서운 기세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최근들어 해마다 사시 합격자 수가 늘어나며 전국 법과대학 중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특히 2003년 28명, 2004년 36명, 2005년 51명, 2006년 52명, 2007년 57명 등 해마다 사시 합격자 수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어 교수와 재학생, 졸업생 모두 매우 고무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1000명을 뽑는 사법시험에서 50명 조금 넘는 사시 합격자 수가 뭐 그리 대수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대 법대의 한 학년 입학정원은 200명. 입학정원만을 기준으로 치면, 매년 4분의 1 이상의 학생을 판, 검사, 변호사 등 법조인으로 배출한다는 의미있는 통계가 된다. 더구나 이들 50명이 넘는 합격자는 모두 여성이다. 해마다 이 만큼의 예비 여성법조인을 길러내고 있는 셈이다.
매년 입학정원 1/4 법조인 배출
이대 법대의 김문현 학장은 또 다른 통계자료를 제시했다. 2005~2007년 3년간의 사법연수원 입소인원 대비 판, 검사 임용비율이다. 이대 법대의 경우 3년간 모두 113명이 연수원에 입소해 그 중 42명이 판, 검사가 됐다. 임관율 37.2%. 전국 법과대학 중 1위다. 2위에 그친 서울대(23.4%) 보다 10%p 이상 차이가 난다.
사법시험 인원이 늘어나면서 판, 검사 임관은 사법연수생들에게 또 하나의 관문이 되고 있다. 상위 약 200등 이내에 들어야 하는 등 상당한 수준의 성적이 아니면, 판, 검사를 지망하더라도 임관을 보장할 수 없다. 매년 1월에 열리는 사법연수원 수료식에서의 풍경이다. 그러나 이대 법대는 여학생만을 뽑아 4분의 1 이상을 사시에 합격시킨데 이어 그 중 3분의 1 이상을 판, 검사로 배출해 내고 있는 것이다.
고시반 지도교수를 맡고 있는 송덕수 교수는 "학부 때부터 민법 등 기본법 과목을 중시하며, 법학교육의 기초를 튼튼히 다지도록 가르치고 있다"며, "시험만 잘 치도록 하는 게 아니라, 법학도로서 폭넓게 공부하도록 지도한 게 주효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내년 3월 문을 열 이화 법학전문대학원의 교과과정을 보면, 송 교수의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님을 잘 알 수 있다. 이화 로스쿨이 개설을 예정하고 있는 강좌는 모두 196개 강좌로, 예비인가가 난 전국 25개 로스쿨 중 가장 많은 과목의 개설을 준비하고 있다. 그만큼 법과목을 망라해서 탄탄하면서도 포괄적인 법학교육을 추구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자기설계전공제도 운영
이와함께 ▲기업법무 ▲공공정책법무 ▲국제법무 ▲공익법무 ▲시민생활법무 등 5개 전공과 특성화 분야인 젠더법 전공과 생명의료법 전공 등 다양한 전공제도를 두어 학생들의 깊이있는 연구를 유도하고 있다. 또 학생들 스스로 자신의 학부전공과 경험, 비전 등을 살려 전공을 설정할 수 있는 자기설계전공제도도 운영한다. 법대 교학부장인 오종근 교수는 "우리 사회의 법률수요를 겨냥해 기업법무 등 5개 전공 분야를 설정했다"며, "자기설계전공제도는 일종의 맞춤식 전공 설계를 지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특히 이대 로스쿨이 내건 젠더법과 생명의료법은 다른 로스쿨에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특성화 주제여서 더욱 주목된다. 이대 법대 관계자들은 "젠더법과 생명의료법은 이대가 전통적으로 뛰어난 분야"라며, "로스쿨에서 더욱 발전적으로 육성해 나갈 계획"이라고 의지를 다지고 있다.
젠더법의 경우 이미 2001년 설립된 젠더법학연구센터 등의 운영을 통해 성평등과 여성인권, 여성 노동자의 권리 등 여성 관련 법 분야의 연구와 전문성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는 게 이대 측의 설명이다. 또 생명의료법 분야도 보건복지부 지정 생명윤리정책연구센터와 대학원의 생명윤리정책 협동과정 등을 통해 뛰어난 연구역량을 확보하고 있다고 법학과장을 맡고 있는 석인선 교수가 설명했다. 이대에 부설된 생명윤리정책연구센터는 2007년 확대 개편됐다.
이화 로스쿨은 특성화 주제의 성공적인 수행을 위해 특성화 추진위, 특성화 평가위, 특성화 교육과정위를 구성해 운영할 계획이다. 또 ▲특성화된 교육방법론 ▲교육과 연구의 유기적 연계 ▲국내외 협력네트워크를 통한 전문가 양성이란 3대 핵심전략과 9대 실천과제 등을 정해 특성화 교육에 만전을 기한다는 복안을 세워놓고 있다.
여성민우회 등과 실무 협력관계
이대는 김&장 법률사무소, 법무법인 광장, 바른, 세종, 율촌 등 대형 로펌은 물론 법무법인 한강과 서로 법률사무소 등 의료소송으로 유명한 법률사무소와 서울 여성의 전화, 서울 법의학연구소, 한국가정법률상담소,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한국여성민우회, 을지병원, 이화여대 목동병원 등과 실무 프로그램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이화 로스쿨 학생들이 인턴십과 익스턴십 등을 통해 실무 수습에 나서게 될 협력기관으로, 젠더법과 생명의료법의 연구 지원을 위해 외연을 넓히고 나선 것임은 물론이다.
이화 로스쿨은 이런 교과과정을 통해 ▲국제경쟁력 있는 법률전문가 ▲헌신과 봉사의 자세로 공익성을 실천할 수 있는 법조인 ▲차세대 여성 지도자 양성을 교육목표로 내걸고 있다.
특히 법조인을 넘어 차세대를 이끌어 갈 여성 지도자를 양성하겠다고 교육목표에 명시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김문현 학장은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법조인의 양성이라는 로스쿨의 법령상 교육이념과 기독교와 진선미 정신에 바탕을 둔 여성의 인간화라는 이화대학의 교육이념을 발전적으로 종합한 결과"라고 풀이했다. 또 오수근 교수는 "로스쿨과 변호사 시험으로 압축되는 앞으로의 법학교육은 사법시험 시절과는 또 달라질 것"이라며, "사회 각 분야의 리더를 길러내는 게 로스쿨 교육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라고 의욕을 나타냈다.
요컨대 학부에서 다양한 전공을 익힌 로스쿨 학생들에게 법률가로서의 소양을 갖추도록 해 우리 사회를 이끌 미래의 여성 지도자를 양성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이대 법대 동문들이 법조계는 물론 법학계, 언론계, NGO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미 맹렬하게 활약하고 있는 것을 보면, 로스쿨에서의 이런 목표지향은 더욱 고무적인 발전방향으로 이해된다.
법조인 369명 배출
1950년까지 역사가 거슬러 올라가는 이대 법대는 50년 넘게 역사가 쌓이며 수많은 여성 인재를 배출해 왔다. 2007년 치러진 50회 사법시험까지 합격한 법조인 또는 예비법조인은 모두 369명. 여성 판, 검사의 3분의 1 가량이 이대 법대 출신이라고 한 관계자가 소개했다.
최초의 여성 헌법학자이자 여성특별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지낸 윤후정 이화여대 이사장, 노동법의 대가로 법학교육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로스쿨 개원 준비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신인령 교수, 여성 최초의 헌법재판관인 전효숙 전 헌법재판관, 여성 1호 법제처장인 김선욱 전 법제처장 등이 모두 이대 법대 출신들로, 법조계, 법학계에서 '최초의 여성'자리를 이대 동문들이 독차지하고 있다. 물론 이들은 '여성 1호'에 앞서 뛰어난 리더십과 전문성으로 각자의 분야에서 혁혁한 활약을 하고 있다.
여성 최초의 법조인인 이태영 전 한국가정법률상담소장도 이대 출신으로, 그는 이화여전 가사과를 나왔다. 당시 이화대학에 아직 법대가 생기기 전이어 이대 법대 졸업장을 받지 못했으나, 이 변호사는 나중에 이대 법대 학장을 역임했다. 이 때문에 이대 법대 출신으로 사법시험에 첫 합격한 법조인은 전효숙 전 재판관이 꼽힌다. 전 전 재판관은 모교의 교수가 돼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다.
첫 사시합격자 전효숙 전 재판관
이어 서울지법 부장판사를 역임한 이선희 변호사, 90년 사법시험에 수석합격한 김은미 변호사, 금덕희 청주지법 부장판사, 노정희 사법연수원 교수, 이혼 사건 전문으로 유명한 이명숙 변호사, 우라옥 특허법원 판사, TV 프로그램인 '솔로몬의 선택'에 고정 출연하고 있는 노정연 수원지검 검사,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검찰연구관을 역임한 최정숙 법무부 여성아동과장, 서울서부지검 검사를 역임한 최현희 변호사, 박소영 서울중앙지검 검사 등이 모두 이대 법대 출신으로, 재조와 재야 법조계에서 맹렬하게 우먼파워를 떨치고 있다.
이대 법대 출신들은 학계로도 많이 진출했다. 윤후정, 신인령 교수 외에 명지대 법대 학장을 역임한 김숙자 교수, 박은정, 정선주 서울대 법대 교수, 이대 법대의 최금숙, 석인선, 정현미, 최희경 교수, 안경옥 경희대 법대 교수, 엄순영 경상대 법대 교수, 김영희 상지대 법학과 교수, 안경희 국민대 법대 교수, 신은주 포항 한동대 법학과 교수, 김연미 전남대 법대 교수, 이유정 인하대 법대 교수, 이노흥 홍익대 법대 교수, 최성경 단국대 법대 교수, 박은정 인제대 법학과 교수 등이 일선 대학의 교수로 활약하며 후진 양성에 힘쏟고 있다.
오종근 교수는 "여성 법학교수 중에 이대 출신이 특히 많다"며, "로스쿨이 들어서도 이대 출신의 법학계 진출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대는 전문석사 학위를 수여하는 로스쿨 외에 현재의 법학석, 박사 과정을 그대로 운영하며, 실무 법조인 등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과정도 개설할 계획이다.
또 18대 국회의원이 돼 자유선진당 대변인으로 활약하고 있는 박선영 의원과 지난 3월 여성 최초로 1급 관리관이 돼 언론의 주목을 받은 장옥주 보건복지부 아동청소년 정책실장,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장 등이 이대 법대 출신으로, 이대 동문들은 법조계와 법학계를 떠나 사회 각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약하고 있다.
'100인 변호사단' 꾸려 지원
곽 소장은 30여년간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근무하며 이혼숙려제도 도입, 호주제 폐지 등 여성권익 향상에 앞장서 왔다. 이태영 변호사가 1956년 설립한 가정법률상담소엔 특히 이대 법대 출신이 많았다. 부소장을 역임한 차명희, 김숙자, 양정자씨 등이 모두 이대 법대 출신이다. 권성희, 안미영, 양정숙, 이명숙, 이유정, 최현희 변호사 등 이대 법대 출신 동문 변호사들은 '100인 변호사단'을 꾸려 가정법률사무소를 지원하고 있다. 사실상 이대 법대 출신들이 중심이 돼 가정법률상담소를 운영해 오고 있는 셈이다.
모교의 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김선욱 전 법제처장은 "여성 리더십의 3분의 2 이상이 여자 대학 출신이라는 분석이 있다"며, "여성 리더의 양성에 여자대학에서의 교육이 효과적이라는 측면이 없지 않다"고 강조했다. 남녀공학의 여학생과 여자대학의 여학생 사이에 차이가 없지 않다는 얘기로, 로스쿨을 개원하게 될 이대는 학부와 대학원에 법학, 의학, 공학 등 다양한 학과를 두고 있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성공한 여대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중차대한 교육을 담당할 로스쿨 교수진엔 37명의 전임교수와 15명의 겸임 · 초빙 교수 등 50명이 넘는 쟁쟁한 경력의 소유자들이 과목별로 포진하고 있다. 석좌교수인 이재상 교수는 형법학의 귄위자로, 얼마전 대한변협이 수여하는 제39회 한국법률문화상을 받았다. 또 노동법의 신인령, 법여성학의 권위자인 김선욱 전 법제처장, 전효숙 전 헌재 재판관 등 도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공법학회 회장인 김문현 학장은 헌법을 가르친다. 이어 민법의 송덕수 교수, 형법 및 법철학을 가르치는 장영민 교수, 공정거래위원인 경제법 분야의 양명조 교수, 조세법의 옥무석 교수와 김&장 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로 활약한 경력의 한만수 교수, 국제법 분야의 최원목 교수 등 국내 법학계에서 손꼽히는 교수들이 두텁게 포진하고 있다.
외교관, 전문의 출신 등 경력 다양
또 강동범(형법), 권복규(의학), 김병선(민법), 김상일(민사소송법), 김유환(행정법), 김현철(법철학), 박진아(지적재산권법), 서을오(법제사), 석인선(헌법), 오수근(상법), 오종근(민법), 이승욱(사회법), 정태윤(민법), 정현미(형법), 최경석(철학), 최금숙(민법), 최승원(행정법), 최희경(헌법) 교수 등 국내 최고 수준의 교수진을 확보하고 있다고 이대 법대 측이 소개했다. 실무경력을 가진 전임교수는 13명으로, 판, 검사와 헌법재판소 재판관, 헌법연구관, 법제연구관, 미국변호사, 외교관, 전문의 출신 등 다양한 경력을 자랑한다.
해외 대학과의 교류도 갈수록 활발해지고 있다. 미국의 일리노이대 로스쿨, 중국의 칭화대와 텐진대, 일본의 와세다대, 독일의 본(Bonn)대, 프랑스의 Universite Paul Cezanne Aix-MarseilleⅢ 대학 등이 이대 법대가 교류하고 있는 외국 대학이다. 이들 대학에 방문교수 등으로 다녀 온 교수들도 적지 않다.
로스쿨 예비인가에서 입학정원 100명을 배정받은 이대 법대는 제1, 제2 법학관과 법학전용기숙사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대 정문에 들어서 오른쪽 언덕을 올라가면 중앙도서관 바로 뒤가 법과대학이다. 특히 1999년 건립된 법학전용기숙사인 솟을관엔 각종 편의시설과 독서실, 세미나실 등 다른 기숙사와 차별화된 시설을 완비하고 있다고 이대 법대 관계자가 소개했다. 고시반 학생들이 입주해 솟을관을 사용하고 있다.
고시반 매일 밤 점호 유명
이대 고시반은 공휴일과 명절도 예외없이 매일 밤 점호를 실시하며, 외박할 땐 외박신고서를 작성해야 하는 등 엄격한 기숙사 관리로 유명하다. 졸업생도 입실고사에 합격하면 기숙사에서 생활할 수 있어 인기가 높다. 고시반은 로스쿨 개원 후에도 변호사시험 응시생 들을 대상으로 계속 운영된다.
대학 재단이 튼튼한 것으로 소문난 이대 로스쿨은 전체 재학생의 73% 이상을 대상으로 장학금을 지급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특히 사회적 취약계층 등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의 약 83%를 책정해 놓고 있다. 등록금 전액과 생활비가 지급되는 단혜선 장학금과 등록금 전액이 지원되는 김병순 장학금, 법학과 동창회 장학금, 윤후정 장학금, 이태영 장학금, 이기련 장학금 등 외부장학금도 적지 않다.
이대 법대는 2000년 8월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실시한 법학분야 평가에서 최우수대학으로 1위를 차지했다. 또 언론매체가 실시하는 법대 평가에서도 1위를 차지하는 등 명실상부한 한국 최고의 여성법률가의 산실로 평가받고 있다고 교수들이 소개했다.
1950년 한림원 법정학부로 시작해 96년 세계 최초의 여자법과대학으로 승격된 이대 법대는 내년 3월 여자 로스쿨 시대를 맞게 된다. 50명이 넘는 교수와 수많은 동문들은 법대 시절의 위상을 뛰어넘는 발전을 기대하고 있다.
글 김진원 기자(jwkim@legaltimes.co.kr) l 사진 지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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