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장손 몰래 사촌동생이 조상묘 발굴해 화장…분묘발굴 외 유골손괴죄도 유죄
[대법] "제사주재자 동의 없이 유골의 물리적 형상 변경 등 훼손"
제사주재자인 장손의 동의 없이 장손의 사촌동생이 조상의 묘를 발굴해 화장했다면 분묘발굴죄 외에 분묘발굴유골손괴죄도 유죄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항소심 재판부는 화장은 유골손괴가 아니라고 판단했으나 대법원은 장손의 동의를 받지 않은 물리적 형상 변경이어 유골손괴라고 보았다.
모자관계인 A(77 · 여)와 B(51)는 2020년 4월 충남 천안시에 있는 A 소유의 임야를 다른 사람에게 매도하면서 이 땅에 있던 B의 증조부모, 조부모 등의 분묘를 포크레인 등 중장비를 이용해 발굴하고, 장례업체 직원들에게 수습된 유골을 추모공원에서 화장한 후 안치하도록 했다. A, B는 그러나 이 과정에서 장손으로서 분묘를 관리하며 제사를 주재해온 큰아버지의 아들 C 등 큰아버지 자손들의 동의를 받지 않아 분묘발굴유골손괴 혐의로 기소됐다. A와 B는 또 C 등 큰아버지 자손들의 동의를 받지 않고 위 임야에 있는 C의 부친의 분묘를 파헤쳐 발굴한 혐의(분묘발굴)로도 기소됐다.
쟁점은 장손의 동의 없이 분묘발굴을 통해 수습된 유골을 화장한 것이 유골손괴에 해당하는지 여부.
1심 재판부는 분묘발굴과 분묘발굴유골손괴 혐의 모두 유죄로 인정했으나, 항소심 재판부가 "현행법상 적법한 장사의 방법인 화장 절차에 따라 종교적, 관습적 예를 갖추어 납골당에 유골들을 안치함으로써 제사와 공양의 대상으로 제공하였다면, 사실상으로나 감정상으로 유골을 본래의 사용 목적에 제공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분묘를 발굴하고 그곳에서 수습된 유골들을 손괴한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 분묘발굴유골손괴 혐의는 무죄라고 판결하자 검사가 상고했다.
대법원 제3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그러나 10월 8일 분묘발굴유골손괴 혐의도 유죄라는 취지로 사건을 대전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먼저 "형법 제161조가 규정한 유골손괴죄는 사자(死者)에 대한 사회적 풍속으로서의 종교적 감정 또는 종교적 평온을 보호법익으로 하는 것으로서, 사자에 대한 숭경의 감정을 해치는 위법한 물질적 손괴 행위를 그 대상으로 한다"며 "사자의 유체 · 유골에 대한 매장 · 관리 · 제사 · 공양 등은 그 제사주재자를 비롯한 유족들의 사자에 대한 경애 · 추모 등 감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고, 사자의 유체 · 유골은 제사주재자에게 승계되는 것이므로, 그에 관한 관리 및 처분은 종국적으로 제사주재자의 의사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대법원 2008. 11. 20. 선고 2007다27670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고 밝혔다. 대법원은 따라서 "제사주재자 또는 그로부터 정당하게 승낙을 얻은 자의 동의 없이 함부로 유골의 물리적 형상을 변경하는 등으로 훼손하는 것은 사자에 대한 경애 · 추모 등 사회적 풍속으로서의 종교적 감정 또는 종교적 평온을 해치는 '손괴'에 해당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 사건 분묘들에 매장된 사자들에 대한 제사주재자로서 그 분묘 및 유골들의 관리처분권자인 C의 동의 없이 피고인들이 이 사건 유골을 화장장에서 분쇄하여 훼손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이러한 사실을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유골에 대한 피고인들의 '손괴'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고 본 원심의 판단에는 형법 제161조의 '유골손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분묘발굴죄를 정한 형법 160조는 "분묘를 발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분묘발굴유골손괴죄는 형법 161조 1항에서 "시체, 유골, 유발 또는 관 속에 넣어 둔 물건을 손괴, 유기, 은닉 또는 영득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별도로 규정하고 있다. 이어 같은 조 2항에서 "분묘를 발굴하여 1항의 죄를 지은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